쉿!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엄마의 부재 속 우리들의 작은 일탈이야기
"여보, 나 1박 2일간 여행 다녀와도 돼?"
"응, 당연하지. 언제가는데?"
"1월 10일에서 11일까지, 11일 저녁 때 올 것 같아."
"그래. 잘 놀고와. 내가 애들이랑 잘 놀고 있을께."
며칠 전에 아내랑 이야기 했습니다. 간만에 여행을 간다고 합니다. 아내님에게 여행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잘 다녀오라하고 몰래 용돈 10만원을 봉투에 넣어 주었습니다.
드디어! 10일이 되었고 직장 다녀오니 아내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딸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엄마 오늘 아침 10시에 나갔어."
"그래? 엄마 여행간다고 했잖아. 우리 뭐하고 놀까?"
딸아이랑 하고 싶은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1. 요괴메카드 요괴볼 사기
2. 마트가기
3. 불닭 볶음면 먹기
4. 밤에 만화영화보고 늦게 자기
5. 밥, 먹고 싶은 것 먹기
우린 신나게 리스트를 짰고 하나씩 실행에 옮겼습니다.
오후 4시가 되었고 유치원에 꼬맹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오늘 엄마 없어. 해서 우리 지금 마트갈꺼야. 요괴 메카드 요괴볼 살꺼야."
"오늘 엄마 없어?"
"응 사고 싶은 요괴볼 있어?"
"응!"
"가자!!!"
우리 셋은 마트에 갔고 요괴볼과 불닭볶음면, 내일 도시락 반찬꺼리 등을 샀습니다.
저녁 때 집에 왔고 평소 제가 먹고 싶었던 훈제오리구이를 했습니다.
"아빠가 만든 요리는 정말 맛있어. 아빠 최고!!!"
제 생각이지만 아이들은 아빠 요리를 좋아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엄마는 건강식 요리를 하고 아빠는 안 건강식, 먹고 싶은 요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한 시간 정도 물놀이(목욕)를 했습니다. 불닭볶음면도 먹었습니다.
"아빠, 진짜 매워. 그래도 맛있어."
"아빠, 재밌어."
이제 우리들의 오늘 마지막 미션인 만화영화 보고 잠자기만 남았습니다. 아이들은 영화를 보러 갔고 저는 이제 설거지와 집정리, 내일 쌀 도시락 준비를 하면 됩니다. 아마 11시가 넘어야 잘 것 같습니다.
엄마 있을 때는 상상도 못할 스케줄입니다. 아빠랑 있을 때, 우리끼리 소박한 자유를 만끽합니다.
아내님도 아빠의 일탈(?)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자하신 아내님은 못본 척 해 주십니다.
"아빠랑 뭐하고 놀았어? 그랬어? 재밌었겠네."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전 개인적으로 아내님의 부재가 힘들지 않습니다. 아내님도 휴식이 필요하고 재미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엄마가 없는 날을 경험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님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으로 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물론 아내님께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집 걱정을 할까봐서 입니다. 대신 저녁 상은 사진 찍어 보내줬습니다. 최소한 아이들을 굶기고 있진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입니다.
집에서 즐거운 경험이 많은 아이들은 웃으며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교육은 아이들에게 의무와 약속만을 강요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충분한 자유와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민주적인 분위기를 집에서 경험해봐야 합니다.
제가 좋은 아빠라서가 아닙니다. 저는 다만 간단한 요리는 할 줄 알고, 아내님의 시간을 존중하며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내일 아내님이 돌아오십니다. 집에 오셨을 때 깨끗한 집과 깨끗한 주방, 웃는 아이들을 보며 환하게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내일 아침에 아이들 유치원, 학원 보내느라 바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간만에 아이들과 우리들만의 소중한 추억꺼리를 하나 더 만드는 기분입니다.
아내의 여행, 가족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엄마몰래 우리들의 일탈도 계속 될 것입니다.
"쉿!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이 작은 약속이 아빠와 아이들 관계를 돈독히 해 준다고 믿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아내님의 손바닥 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알고도 속아주는 아내님이 고마울 뿐입니다.
이 땅의 아빠들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