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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만 Jan 19. 2019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

어릴 때 봤던 '붉은 돼지'를 어른이 되어 다시 봤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의 '붉은 돼지'를 봤습니다.

제가 어릴 때...그러니까 청소년시절에 봤었던 일본 애니메이션입니다. 당시엔 감독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그림이 미래소년 코난 하고 비슷하네?'라는 생각으로 봤던 기억만 납니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선 일본 애니가 유행이었고 '봤냐, 안봤냐'가 나름 중요했던 시기였습니다. 유행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애쓰며 봤었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고 저에게 '붉은 돼지'라는 작품은 '예전에 내가 봤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붉은 돼지' DVD를 봤고 잠시의 망설임끝에 대여했습니다. 


청소년 시절 봤던 '붉은 돼지'와는 느낌이 완전 달랐습니다. 솔직히 '봤던 영화'라는 기억만 있었지 줄거리나 등장인물, 대사 등에 대해선 새로웠습니다. 사실 처음보는 것 같았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우익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이 글은 작품 자체로만 접근합니다.


이번에 붉은 돼지를 보며 감탄했던 대사들이 있습니다. 우선 소개합니다.


"좋은 녀석은 모두 죽지."


"돼지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


"파시스트가 되느니 차라리 돼지로 살겠네."


"돼지에게는 국가가 없네."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명대사 외에도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을 보게 되었는데요. 그것은 포르코(붉은 돼지) 비행기를 새로 만들 때 설계부터 만드는 모든 과정을, 어린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여성들이 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붉은 돼지'는 1992년 작품입니다. 2019년에 이 장면을 보고도 '우와..여성들이 비행기를 만드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어떤 의도로 이 장면을 표현했는지 궁금합니다. 여성들이 만든 비행기, 성능도, 디자인도 훌륭했습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을 약간 지나친 지점이고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가 주 장소입니다. 작품 포스트에 보면 "낭만을 꿈꾸는 로맨티스트"라고 되어 있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포르코는 '낭만적인 로맨티스트'가 아니라 전쟁 자체를 싫어하고 타인에게 짐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인간적인 부분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작품에선 원래 사람이었지만 마법에 걸려 돼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소중한 친구와 동료들을 잃었으며 더 이상 국가, 파시스트 라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공적들을 벌하고 현상금을 받으며 그 돈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이해하며 함께 사는, 국가 입장에선 없애야할 적이지만 민중들 사이에선 '비행실력이 뛰어난 이웃'일 뿐입니다. 


포르코 삶의 낙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와인한잔과 가끔식 걸려오는 전화, 라디오 소리, 그리고 오랜 친구 '지나'의 호텔에 가서 혼자 마시는 술한잔으로 보입니다. 필요 이상의 대인관계를 맺으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잃은 과거,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그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사실 아이들과 같이 보려고 빌린 애니메이션 입니다. 한참 보다보니 아이들은 곁에 없고 저 혼자 몰입해 있었습니다. 아동용 애니메이션 같이 보이진 않았습니다.(아이들과 보시기엔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인크레더블이나 몬스터 호텔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림체도 투박합니다. 스토리도 허황되어 보이나 메시지가 분명합니다.


뭐라 한마디로 딱! 말씀드리기는 어려우나,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참이나 앤딩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운이 남는 작품입니다.


주말입니다. 상황이 되신다면 이번 주말의 영화로 '붉은 돼지'를 추천드립니다.


투박한 애니메이션을 보며 몰입한 느낌은 오랜만입니다.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뭔가 고민하게 되는 대사였습니다. 


'붉은 돼지'의 뒷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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