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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만 Jan 19. 2019

(남자들은 모르는)동네 미용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파마를 하러 동네 미용실에 갔습니다.

한번씩 창원에 갑니다. 머리를 짜르기 위해서입니다. 집근처 미용실이 아니라 멀리 창원에 있는 미용실까지 가는 이유는? 동생이 하는 미용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도 짜르고 조카들도 보고 동생도 보기 위해, 한번씩 시간을 내어 갑니다.


오늘, 간만에 시간이 되어 동생 미용실에 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이들과 같이 놀러갔습니다. 아이들도 고모를 좋아합니다. 또래의 사촌친구들도 있고요.


고모 미용실에 가니 아이들은 역시 신나했습니다. 저희끼리 축구한다며 놀러 나갔습니다. 저는 미용실에서 동생과 손님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는 분들도 계셨지만 제가 딱히 나눌 말은 없었습니다. 해서 저는 폰과 책을 보고 있었지요. 저절로 귀는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고 가셨습니다. 당연히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저는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제 느낌상 분명히 처음 만나는 분들 같은 데 서로, 이야기가 너무 쉽게 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 들어오시면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안녕하세요. 전화부터 하시죠?"

"내 지금 오데 가야되는데, 뒷머리 조금만 손봐주라."

"네, 앉으이소."


와 계셨던 분들은 자연스레 대화를 계속 나눕니다.

"너거 신랑은 어떻노?"

"말도 마라. 우리 신랑은 화나면 입을 닫아삔다 아이가. 속 터진다 마."

"글나. 우리 신랑보다 낫네. 우리 신랑은 '내일 이야기 하자.'하고 입을 막아삔다. 근데 신기한게 뭔지 아나? 다음 날이 되면 꼭 내가 사과한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안 웃기나?"

아주머니들이 다 같이 크게 웃으십니다.


머리를 하러 앉아 계시는 분들도 말을 거드십니다.

"애들이 어릴때는 저도 많이 싸웠습니더. 근데 애들 크니깐 싸울 일도 없데."

"마 사는 거 다 똑같제. 의리로 사는 거제. 의리로."

또 다들 크게 웃으십니다.


동생은 머리하며 말을 듣고 맞장구 치며 이리저리 대화에 잘 어울립니다. '사업수단이 참 좋구나.'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손님들과(정확히 말하면 언니, 동생들과) 웃으며 즐겁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잘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이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혼자 남자였던 저는 대화에 끼기가 애매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듣기만 했습니다. 폰에 집중한 듯한 액션을 취했습니다만 가끔식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는 어려웠습니다. 어찌그리 모두들 만담꾼인지...즐거운 자리였습니다.


단순히 제 경험입니다. 남자들은 미용실에 머리만 자르러 갑니다. 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한 경우에는 스타일의 변화만 위해서 갑니다. 다른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미용사분과 머리 이외의 다른 이야기를 굳이 하려 하지 않습니다. 남자전용 미용실에 가면 해서 그런지 조용합니다. TV 소리가 없다면 어색할 지도 모릅니다.


여성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미용실은 달랐습니다. 

"얼마나 있어야 되노? 오래 걸리나?"

"한 30분? 좀 있다 오소. 아니면 앉아 있어도 돼고."

"그라모 앉아 있으꾸마."


자리에 앉자 마자 옆에 계신 분들과 금방 대화를 시작합니다. 대화 주제도 참 다양합니다. 부부싸움에서 시작하여 요리, 가족관계, 아이들, 다이어트, 쉽게 살 빼는 자신이 아는 방법, 살빼서 더 흉해진 친구들, 결론은 살 빼는 사람들은 독하기에 그런 사람과는 친구하면 안되는 이야기를 하며 다들 크게 웃었습니다.


4시간 정도 있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 편안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오늘 4분의 아주머니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깊이 알진 못하지만 다음에 만나면 쉽게 인사할 것 같습니다.^^


동네 미용실은 사랑방 같았습니다. 외모관리를 위해 모인 곳이지만 집의 대소사를 나눌 수 있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비슷한 처지의 분들끼리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동생은 가위질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의 마음까지 안아주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더. 그라몬 안되지예. 나도 화날라꼬 하네."

"언니, 잘했습니더. 그래, 그라면 되는기라."

"니도 그렇더나? 저번에 그 언니도 그랬다 아이가. 우짜겄노. 힘내자."


손은 손대로 바쁘고 입은 입대로 바쁘고 귀는 귀대로 열려있었습니다.


'미용사야 말로 멀티플레이어다. 손기술에 상담, 동네 정보,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빨리 꿰뚫고 대응하는 종합 아티스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앞으로 저도 미용실 갈 때마다 마음을 달리할 것입니다.


머리카락만 단정히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열린 마음으로 만나며 그분들의 대화에 끼여 보려 합니다. 집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하시며 집을 지키셨던 분들입니다. 그 분들에게 미용실은 머리하는 곳 이상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크게 웃고 함께 마음을 나누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일상속에 삶이 있습니다. 평범한 분들의 삶 속에 동네 미용실도 있습니다.


특별한 미용실도 존재이유가 있지만 오래된 동네 미용실도 역할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동네 미용실을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동네 미용실에는 우리들의, 우리 이웃들의 삶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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