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만나는 아이들

by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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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교사 시절, 난 학생을 학생으로만 대했다. 이말은 곧, 학생은 학생, 나는 교사, 즉 교사가, 어른이 학생을 가르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니 학생과의 관계는 상하관계였다. 선생님이 수업을 하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데, 선생님이 지도하는 데, 어디 감히! 라는 입장이었다. 일반학교에 근무할 때에도 그랬다. 지금 돌아보면 믿기 힘들지만 난 초임 교사 시절, 체벌을 했었다. 무단결석하던 학생, 흡연하던 학생, 야자 빼고 도망갔던 학생들을 체벌했었다. 당시엔 학생 체벌이 당연하다고 여겼고 체벌이 교육의 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나는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아야지.'라며 때렸고 학생은 '선생님께 맞을 짓을 했지.'라고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경험을 했다.


한 학생이 나에게 맞고 일어서서 자리로 들어가는 데 나를 돌아보았는데 순간 아주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학생은 나에게 어떤 반항도, 표현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순간 이런 느낌을 받았다. '이런 일로 때리니 좋냐? 내가 맞아주니 니가 옳은 것 같냐?'


학생에게 화가 났다는 뜻이 아니다. 부끄러웠다. 왠지 그 학생이 나보다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난 학생을 체벌할 때마다 '이게 맞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학교에서 학생들과 생활하며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다가 대안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학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학생을 마냥 불쌍하게만 보던 시선이 내가 학생 삶 과정을 모르는데 동정해도 되나는 시선으로, 학생은 아무 잘못없다는 생각에서 학생도 잘못이 있을수 있다로, 학생과 선생은 '상하관계다.'에서 '같은 인간이다.'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다. 난 학생을 가르쳐야 할, 학생을 교정해야 할 대상에서 인간대 인간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인간대 인간으로 보게 되면서 나의 학교 생활은 더 재밌어졌다. 난 더이상 관용 넘치는 교사가 아니다. 학생의 모든 것을 품고 안고 기다리는 교사가 아니다. 학생의 언행으로 화가 나면 화를 냈고 학생에게 상처 받으면 상처 받았다고 말했으며, 학생에게 말실수를 하면 사과했고 학생이 대화상대를 원하면 대화상대가 되었다. 학생을 평가하는 채점자가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는 한 사람이 된 것이다. 물론 시험문제를 내고 생기부에 학생에 대해 기록하지만 이것을 무기로 삼아 학생을 대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것을 무기로 삼았던 적도 있었다.


학생을 바꾸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게 되며 나의 학교 생활 스트레스가 상당히 줄었다. 솔직히 말할까? 난 학생에게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는다.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다. 내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내가 어찌 한 학생의 인생을 예측하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그 학생의 인생이 완벽해질 것이라고 믿을 것인가? 신도 아닌데, 게다가 내 인생도 어찌 될 지 모르는 데 학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변화시키려고 한다는 말인가? 이 부분에서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난 단지 학생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견뎌가는 데 곁에서 같이 걷는 것 뿐이다. 도와달라 하면 도와주고 모른 척 해달라 하면 모른척 하게 되었다. 옳지 않은 일을 하면 절차대로 책임을 묻고 모두를 위해 옳은 행동을 하며 칭찬할 뿐이다. 학생을 동정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으며 바뀌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는다. 그 학생이 나를 만나는 동안 어찌 바뀔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설령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실패한 인생일 것인가?


수업도 바뀌었다. 이전엔 내가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했고 더 많이 알고 가르치는 것이 좋은 교사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니다. 내가 모든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대신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이 내 수업에 대해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학생이 공부에 대해 가지게 되는 흥미는 교사 지식의 양이 아니었다. 공부 흥미는 학생이 나를 좋아할때 생겼다. 나와 관계가 좋을 때 공부 흥미는 자연스레 생기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결국 내가 아는 지식 양보다 학생과 나의 관계가 공부에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


교사는 신이 아니다.

학생은 선이 아니다.

교사도 인간이고 학생도 인간이다.


나쁜 어른들이 나쁜 사회를 만들었고 선한 학생들이 나쁜 어른들 때문에 나빠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쁜 어른도 작년까진 청소년이었고 나쁜 어른도 학생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나쁜 어른이 된) 그 학생도 어찌보면 피해를 봤을 수도 있다. 그럼 사회 탓을 대체 어느시절까지 올라가야 할 것인가? 그 시작점을 알면 세상이, 학교가 달라지는가?


모르겠다. 난 단지 지금 학교가 중요하다. 지금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중요하다. 적어도 나를 만나는 학생이 인생이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딱! 그 정도로 아이들을 만난다. 학생에게 평생 가장 존경받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만큼 노력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를 만나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세상에 이런 생각으로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내가 100% 옳은 것이 아니고 100% 틀린 것도 아니구나.'만 알게 되면 좋겠다고 욕심낼 뿐이다.


내 생각이 완전 옳은 것 아니다. 난 단지 이렇게 살고 있다. 존경받는 교사는 택도 없다. 그냥, 학교에 내 말 들어주고 몰래 간식주고, 내 편인척 하는 선생님 한분 있다는 생각만 주고 싶다.


오해마시라. 난 좋은 교사가 아니다. 학생을 존중하기 위해 인간대 인간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학생을 만나는 것이 내가 편해서이다. 단지 이게 다이다. 그리고 이런 나를 만족한다. 그럼 되었다.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수록 실망하게 된다. 기대할 수록 미워하게 된다. 내 감정이 상하면 내가 상처받게 되고 상처받게 되면 학생이 싫어지게 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도 학생과 인간대 인간으로 만난다.


이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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