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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만 Mar 19. 2020

코로나19, 어떤 가족의 특별한 경험

할머님께서 달라지셨습니다.

지난 3월 10일, 신문에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23474

'어? 이 분? 어디에선가 뵌 분인데?'

생각해보니 SNS친구분께서 올리셨던 내용에 나오시는 분이셨습니다.


당시 글을 찾아봤습니다.


지난 2월의 마지막 날

친구이자 동반자인 할배를 하늘로 보내고, 코로나로 많은 사람 모이는것을 막아

할배의 마지막 모습도 지키지 못했고,

10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납골당을 찾아보지 못한 슬픔을 묻어두고 있는 할매의 어수선한 마음을
단숨에 빼앗아 집중하게 한 그것!
TV에서 방송되는 마스크 부족에 대한 어려운 소식을 듣더니
할 줄아는건 없어도 저건하겠다며 돋보기를 끼고 마스크 만들기 손바느질을 시작하시네요.
'할배 생각도 덜나고 시간 잘 가서 좋네' 하시면서 돋보기 너머로 주름진 웃음을 짓는 모습이
참 곱습니다 ♡♡
'잘 만들진 못하지만 만들어서 동네 할매들 나눠줄란다. 할매들이 마스크 사러 가지도 못할기고' 카시네요.
맘도 고운 김혜정여사 ^^.
그래요. 함 만들어 봅시다.
예쁘게 만들어서 이웃 할매들에게 나눔합시다. 할매의 예쁜 손길에 손주들이 손을 보탭니다.
참 따뜻한 봄날입니다 ♡

할머니를 도와 손마스크를 직접 만드는 가족분들
마스크를 직접 만드시는 김혜정 할머님

김혜정 할머님의 따님은 경상남도자원봉사센터에서 근무하시는 박팀장님이십니다. 저도 당시 그 글을 보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너무 이뻐요.^^"

댓글을 달 때만 해도 할머니와 박팀장님의 개인사에 대해선 몰랐었습니다.


얼마 후 박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샘님. 나눔할 수 있겠네요. 함 오이소~"


창원 간 김에 찾아뵈었습니다. 저희 아이들 것까지 준비해 주셨습니다. 보기만 해도 너무 이쁜 마스크였습니다.

박팀장님께서 나눔해 주신 면마스크

"우와 너무 이뻐요. 박팀장님 어머님께서 손재주가 좋으신 가 봐요."

박팀장은 뿌듯해 하시며 어머님의 일을 조심스레 꺼내셨습니다.


"올 2월에 아버지께서 떠나신 후, 어머니는 너무 불안해 하셨어요. 밤에 잠도 못 주무시고..식사도 못 하시고, 우울해 하셨지요. 우리 가족들도 어머니가 너무 걱정되었어요. 해서 어머니댁에 우리 애들과 제가 같이 생활하게 되었지요. 모두가 힘든 상황이었어요. 근데 어느 날 TV에서 경찰들이 마스크가 부족해서 제대로 못 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내도 해 볼까?'라고 하셨어요. 별 생각없이 답했죠. '엄마도 해 볼래? 같이 해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어머님이 달라지셨어요. 마스크를 만드시며 생활의 안정을 찾으셨어요. 밤에도 잘 주무시고 뭔가 뿌듯해 하시는 것 같아요. 할매가 2시간에 면마스크 한장을 만드시거든요. 저번에 40장 정도를 만들어서 20장은 동네에 임대아파트에 사시는 분들 나눠드리고 20장은 인근 파출소에 나눠드렸어요. 할매가 부끄러워 하며 전달했지요. 요즘 한글도 배우시는 데 직접 글을 적어서 전해드렸어요.

김혜정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시고 손글씨 적은 마스크들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받으시는 분들이 너무 고마워하시더라구요. 그 때 어머니께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셨나봐요. '아이가. 내가 도움이 되는 갑따. 저 분들이 고마워한다. 내가 이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더 만들어 보자.' 이제 어머니께 마스크 만드는 것은 삶의 목적이 된 것 같기도 해요. 너무 열심히 만드셔서 건강 상하실까봐 제가 말릴 정도예요. 하지만 어머니는 저 몰래 계속 만드세요.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딸아. 니가 왜 이렇게 밖에 돌아다니는지 이제 내가 알겄다. 니가 이런 좋은 일을 하고 다녔던 기네. 그래. 우리 딸. 장하다 장해.'

사실 소외계층에 면마스크라도 보급하자며 제가 개인적으로 천을 떼서 집으로 가져갔던 것이 이 일의 시작이었거든요.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기억하시고 말씀주신 거예요. 그 때. 얼마나 기분이 묘하던지..."


박팀장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사연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고맙고, 미안하고, 죄송하고, 또 고맙고...묘한 감정이었습니다.


"김샘. 이거 아이들 주고 사모님도 드리세요. 우리 할매가 또 나눠주는 걸 너무 좋아해요. 부탁하나만 드릴께요. 아이들 하고나서 사진 한장만 보내줘요. 할매가 좋아할 꺼예요."


집에 돌아가서 바로 인증샷을 찍어서 보내드렸습니다.

마스크 사연을 말해줬더니 딸아이가 직접 쓴 편지

답글이 왔습니다.

"할매의 삐뚤한 솜씨에도 감동해 주셔서 감사해요. 무지 좋아하시고, 자부심 뿜뿜 하시네요.^^ 오늘도 열심히 반짓고리를 잡고 계신다는 소식이^^"


저만 알아도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코로나가 우리 사회에 공포와 불신, 혐오를 조장하기도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더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김혜정 할머니께서는 마스크를 만들고 계십니다. 누군지도 모를 당신을 위해, 마스크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위해, 돋보기를 끼시고 떨리는 손으로 정성을 다해 마스크를 만들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정치가 어떻고 지역이 어떻고는 모르십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마스크가 필요하고 당신은 마스크를 만들수 있다는 것 뿐입니다.


저는 거창한 구호와 정보보다 이런 따뜻함이 좋습니다. 할머니의 마스크는 받은 지 며칠이 지났으나 아직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 귀한것을 감히 사용하기가 죄송스럽습니다. 


이 글을 쓰고 난 후 외출할 때 이 마스크를 하고 나갈겁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물어보면 자세히 말해줄 생각입니다. 이웃을 위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마스크 한장도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고.


코로나로 생활이 불편한 요즘이지만 덕분에 배려의 감동을 더 깊이 느낍니다.


김혜정 할머니의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할머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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