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침묵의 살인자

by 김기덕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관리할 수 있다.

What gets measured, gets managed


- 피터 드러커



퀴즈. 혈압이 가장 높은 동물은? 정답은 기린이다. 기린의 혈압은 280/180mmHg이다. 긴 목을 지나 머리까지 혈액을 보내기 위해서다. 하늘로 쏘는 물총을 생각해보면 쉽다. 높이 보내려면 물총의 압력이 세야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기린의 심장은 60cm나 되고, 무게도 10kg에 이른다. 사람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크다. 혈압이 이렇게 높으면 기린은 모두 뇌출혈로 죽는 걸까? 게다가 초식동물이어서 술이나 소시지도 안 먹을 텐데..


100세인 연구는 보스턴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100세인의 특성을 알아보려는 연구를 했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게이오 대학 '백세종합연구센터'에서는 100세인 1500명을 조사했는데, 100세인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질병은 고혈압이었다. 전에 말한 것처럼, 60대의 10명 중 6명 이상이 고혈압이다. 환갑이 지나면 친구들 중에 혈압약을 먹는 친구가 더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100세를 사는 사람에게도 고혈압은 피할 수 없는 노화처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질병이다. 그 뒤를 잇는 것은 골절, 백내장, 심장질환 등이었다. 반대로 100세인에게 적었던 것은 당뇨병, 흡연자, 심한 저체중과 비만이었다고 한다. 이는 100세인에게 흔한 질병은 노화에 따라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부분이 있다면, 100세인에게 드물었던 건강 문제들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당뇨병에 대한 문헌들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변을 많이 보는 환자의 이야기라든지, 소변에 개미들이 모여드는 환자의 이야기들이 있다. 과자 부스러기 같은 거 흘리면 개미들이 모이는 것처럼 소변에 있는 당분 때문에 개미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혈압에 대한 기록은 그렇게 오래된 것들이 없다. 그 이유는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비슷한 모양의 혈압계는 거의 1900년을 조금 앞두고 나타났다. 여기에 청진기를 이용해서 이완기 혈압까지 잴 수 있게 된 것은 1900년이 지나서였다. 1911년에는 다른 원인 없이 혈압이 높은 사람들을 말하는 '본태성 고혈압(Essential Hypertension)'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고혈압이 질병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Came out of Clear Sky)'이라고 대통령 주치의가 말했다." 1945년 4월 13일, 미국의 어느 신문 헤드라인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날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 당시 그의 혈압은 300/190mmHg였다. 그로부터 몇 년 전에도 대통령의 혈압은 188/105mmHg로 기록이 되어있었고, 대통령의 주치의는 자연현상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기술했다. 지금이라면 놀랄 일이지만, 고혈압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었어도 별다른 대책이 없었을 것이다. 혈압약 다운 혈압약은 50년대에 들어서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1948년 미국 의회는 심혈관계 질환을 국가적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국가 심장 법률(National Heart Act)'을 만들고, 루스벨트에 이어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공공보건국( Public Health Service, PHS)에 국립 심장 폐 혈액 연구소(National Heart, Lung, and Blood Institute, NHLBI)를 설치하고, 국가 심장 자문위원회(National Advisory Heart Council)를 만들었다. 이 무렵 그 유명한 프레이밍험 심장 연구가 시작된다.


1948년 9월, 보스턴 근처에 약 3만 명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 프레이밍험에서 시작된 이 연구는 처음에 50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했고, 뒤이어 참가자의 자손들까지 연구가 이어져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처음 약 10년간의 관찰 결과 혈압이 160/95mmHg 이상이면 관상동맥질환 발생률이 4배 이상 상승한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1957년에 최초로 160/95mmHg를 고혈압의 기준을 제시했다. 1950년대에는 혈관이 좁아지고 막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노화로 모든 사람에게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도 노화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연구의 결과들을 분석하면서 이것이 생활습관이나 가족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요인들을 '위험 요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연구를 통해 '위험 요인'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그런 줄 알았던 심혈관계 질환이 흡연자에서 더 잘생겼다면 흡연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 요인'이 되는 셈이다. 고혈압의 기준도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심장질환이 더 잘생기기 시작하는 수치부터 고혈압으로 정의한 것이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많은 심혈관계 질환 위험 요인들을 찾아내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와 관련된 유전자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까지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잘 알려진 위험 요인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크게 조절할 수 없는 것과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조절할 수 없는 요인들로는 가족력, 나이, 성별, 인종, 그리고 만성 신장 질환 등이 있다. 부모님 혹은 가까운 친척에게 고혈압이 있는 경우라면 자신도 고혈압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이가 들수록 고혈압이 많아진다. 남녀의 차이도 있는데, 60대까지는 남성에서 더 많고, 70세 이후에는 여성에서 더 많다. 인종적으로 고혈압은 흑인에서 더 많고, 더 이른 나이에 고혈압이 발생한다. 히스패닉, 아시아인, 태평양 원주민, 미국 인디언, 알라스카인들도 백인에 비해 고혈압 유병률이 더 높다. 만성 신장 질환은 고혈압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고혈압이 신장의 손상을 더욱 촉진시킬 수 있다. 조절이 가능한 위험 요인으로는 운동 부족, 짜게 먹는 것을 포함한 나쁜 식습관, 과체중 또는 비만, 과다한 음주, 수면 무호흡증, 고콜레스테롤혈증, 당뇨병, 흡연, 스트레스 등이다.


의학적 진실은 일종의 유통기한이 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구 결과가 뒤집어지거나, 기준이 바뀌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또 국가나 인종에 따라 기준이 다른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구 집단의 성격이 바뀌기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고, 보다 정밀한 검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혹은 모르고 있던 사실이 질병의 발생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일단 고혈압의 경우 이어지는 연구들을 통해 고혈압의 기준이 더 낮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부터는 왜 고혈압을 치료해야 하는지, 어떤 생활습관이 중요한지 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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