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기 vs 배고프지 않기
인간성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기생충들 중에서
나는 비만보다 더 괴로움을 주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상상할 수도 없다
Of all the parasites that affect humanity I do not know of, nor I can imagine
any more than distressing than that of Obesity
- W. Banting
윌리엄 밴팅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1796년 경 태어났다고 하니까 200년도 더 전의 사람이다. 런던에서 사는 그의 집안은 장례식 사업을 했는데, 조지 3세, 4세와 같은 왕의 장례식을 할 정도로 유명했다나. 원래 뚱뚱한 편도 아니었고, 가족들도 비만인 사람이 없었는데, 30대 부터 서서히 살이 찌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말 서서히 살이 찌다가 62세에는 92kg에 이르렀다고. 아 참! 키는 165cm 정도였다고 하니, 체질량 지수 34kg/m2으로 비만에 해당되었다. 우리나라랑 서구인의 비만 기준이 좀 다르긴 한데, 우리나라 기준으로 하면 2단계 비만에서 3단계 비만(고도비만)으로 넘어가기 직전 수준이다. WHO에서 정한 기준으로는 35kgm/m2부터 2단계 비만이니까 1단계에서 2단계 넘어가기 직전이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그는 의사를 찾아간다. 첫번째 의사는 적게 먹는 다이어트를 권하고, 그 결과는 앞서 예상한 대로였다. 처음에는 체중이 좀 줄었지만, 결국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두번째 의사는 운동을 권한다. 템즈강에 배를 띄우고 계속 노를 저었다.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운동 후에 밀려드는 식욕을 이겨낼 수 없어서... 스파를 권했던 의사도 있었고...
이런 저런 의사를 찾아다니다 소호 스퀘어의 윌리엄 하비(혈액이 순환한다는 것을 발견한 1600년대의 윌리엄 하비와는 그냥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이다)라는 의사를 만난다. 그가 권한 것은 저탄수화물 식사였다. 하루에 4번 식사하고, 고기와 야채, 과일, 그리고 와인만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설탕, 사카린, 전분, 맥주, 우유, 버터를 최대한 먹지 않았다나. 그렇게 9개월 동안 16kg를 감량하고, 2년 후에는 22kg까지 감량한다. 그리고 드디어 1863년, '대중들에게 보내는 비만에 대한 편지(Letter on Corpulence, Addressed to the Public)'이라는 팜플렛을 만든다.
이것이 최초의 다이어트 서적이 된 셈. 결국은 요즘 유행하는 저탄고지와 비슷하다. 탄수화물 섭취를 최소화 하는 것.
심장내과 의사인 앳킨스 박사는 탄수화물을 극도로 제한하는 다이어트 방식을 발표한다. '다이어트 혁명(Diet Revolution)'이라는 책을 통해 앳킨스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70년대에 처음 나온 이 책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 나온 두 번째 책인 '앳킨스 박사의 뉴 다이어트 레볼루션(Dr. Atkins' New Diet Revolution)'에 이르러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레볼루션이라는 이름과 달리 탄수화물을 제한한다는 측면에서는 밴팅이 했던 방식과 큰 차이가 없다. 한국 사람의 경우 전체 섭취 칼로리의 70% 정도가 탄수화물이므로, 줄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이 70%의 대부분을 고기, 계란, 두부, 닭가슴살이나 생선과 같은 단백질로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라면이 대략 500kcal이라고 하면, 이걸 단백질이나 지방으로 대체하려면 계란 후라이 4.5개, 삶은 계란으로는 7개 정도에 해당한다. 한 끼야 이렇게 때울 수 있지만 몇 주씩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다. 먹는 재미로 사는데...
앳킨스 다이어트가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체중이 정말 줄었기 때문이다. 말한 것처럼 평소 먹던 칼로리의 대부분이 탄수화물이기 때문에, 탄수화물을 줄이면 사실 먹을 것이 많지 않을 뿐더러, 단백질이나 지방은 포만감이 커서 많이 먹을 수가 없다. 사장님이 고기사준다고 해서 몇 끼 굶고 나갔는데 너무 빨리 배가 불러서 억울했던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도 아이스크림이나 과일, 음료수 같은 당분이나 탄수화물은 술술 넘어간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영국의 한 트레이너가 하루 5800칼로리를 먹는 실험을 한다. 샘 펠덤(Sam Feltham)은 인스턴트 음식으로 5800칼로리를 3주간 먹으면서 체중 변화를 기록했다. 3주 후 그는 8kg 가까이 체중이 늘어있었다. 이번에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로 같은 칼로리를 섭취했다. 전체 칼로리의 10%정도만을 탄수화물로 했는데, 실제 체중은 1.3kg만 늘었고, 허리 둘레는 오히려 1인치가 감소했다. 많이 먹었는데도 체지방은 줄고, 근육이 늘어난 셈이다.
그 이유는 인슐린 때문이다. 다음에는 인슐린에 대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