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심각할 수 있어요
지난 글 <당신의 방어기제는 문제가 될 수 있어요>에서 방어기제 자가진단 테스트와 방어기제의 종류를 분류해봤습니다. 방어기제의 성숙도는 4단계로 나뉘며, 단계가 올라갈수록 성숙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방어기제 중에서도 가장 성숙하지 않은 '1단계 병리적인 방어기제'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 원초아(id)를 위협할 정도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으로 외부의 자극을 부정하는 것이다. 억압과 함께 가장 원시적이고 질이 낮은 메커니즘으로 주로 어린이나 정서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고 하지만, 정말 충격적이고 큰일이 생겼을 때에 일반일들에게도 조건반사적으로 나타나는 방어기제이다.
문제는 이 방어기제가 '일상화'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부정을 하다 보면,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점점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갈 수 있다.
예시.
- 건강하게 살던 사람이 '암' 선고를 받았을 때 받아들이지 않는 것 (이 정도는 사실 흔하다)
-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했는데,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고 어딘가 살아 있다고 굳게 믿고 살아가는 것 (이 경우 기간이 길어지면 문제가 된다)
: 자기와 남들의 이미지, 자기와 남들에 대한 태도를 '전적으로 좋은 것'과 '전적으로 나쁜 것'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것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흑백논리로도 대표된다. 유아기 중 분리-개별화기에 쓰는 방어기제로 경계선 인격장애의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 복합적이고 애매한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예시.
환자가 의사에게 듣기 좋은 말을 들으면 "당신은 나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에요."라고 하지만 비판을 하면 "당신은 의사라는 권력을 이용하는 폭군이에요."라고 말하는 경우
: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갈등을 신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마비, 경련, 일시적 맹목 등
예시.
- 글쓰기에 심한 갈등을 느끼는 소설가의 팔이 마비되는 경우
- 고3이 공부하려고 앉기만 하면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되는 현상
: 현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현실에 맞게 정보를 왜곡해서 짜깁기를 함
예시.
-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딸을 딸이 아니라고 지속적으로 부인했던 행위
- 사귀었던 남자가 있지만 그 남자와 사귀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실제로 사귄 적이 없다고 믿게 되는 것
병리적인 방어기제 (Pathological Defense Mechanism)은 말 그대로 정신 질환을 유발할 정도의 방어기제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단계 1의 방어기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전부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방어기제가 발동되는 기간이 길어지거나 횟수가 많아지면 문제가 된다. 현재 상태보다 더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다면 스스로 인지하고 고치도록 노력해보자.
필자의 경우 '왜곡'의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가 설정해둔 결과값이 나오지 않으면 상황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가끔 있다. 특히 노력이나 애를 많이 쓴 경우에 그렇다.
스티브 잡스 또한 이러한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자신과 연인 사이에 있었던 딸을 수십 년간 부정했던 사례가 있다. 스티브 잡스가 가지고 있는 현실왜곡장 (Reailty Distortion Field)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강력한 현실 왜곡장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자신이 취약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어 주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렇게 '왜곡'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문제를 똑바로 볼 수 없게 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 시작한다.
비슷한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남편이 회사에서 사내 여직원과 외도를 한 것을 부인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수많은 부인들의 분노의 대상은 안타깝게도 사내 여직원이 된다.
남편과 여직원 둘 다 잘못한 것인데, 나를 사랑하고 자상했던 남편이자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불륜남'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나의 원초아가 용납을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 부정(내 남편이 날 두고 바람을 폈을 리가 없어)과 왜곡(순진무구한 내 남편을 저 여우 같은 X이 꼬신 거야)이라는 방어기제가 발동한다. 그리고 이것을 믿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질 뿐만 아니라 상황이 악화되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은 남편과 여직원이 쿵작이 맞은 것이다. 관계란 것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고 하루빨리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물론 매우 고통스럽고 힘들겠지만, 이러한 결단력과 인지능력이, 행복하고 자존감 높은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방어기제가 1단계에 머물러 있고 그 기간이 6개월 이상 되었다면, 하루빨리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