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표현이 서툰 남자 특징 3가지
나는 감정 표현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물론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감정 표현을 했다. 적어도 내 기준엔. 문제는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제대로 못 했다는 점이다.
힘든 일을 겪고 스트레스를 받아 기분이 가라앉으면 무슨 일이 있었고 내 기분이 어떻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많이도 숨겼다. 완전히 말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100 만큼 힘들다고 치면 10 정도만 말했다. 조금이라도 더 말하면 나를 안 좋게 볼까 봐.
친구들에게는 더더욱 말을 못 했다. 그냥 술이나 마시면서 다른 얘기를 하며 웃고 넘겼다. 그리고 집에 오면 아쉬움과 함께 허무함을 느꼈다. 그렇게 스트레스는 쌓이고 쌓여서 무작위로 폭발했다. 별 일도 아닌 일에 불 같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했다.
한 가지 사례를 얘기하자면, 아버지가 내 방문을 꽉 닫지 않고 나간 거에 미친듯한 분노를 느낀 적이 있다. 아버지에게 화를 내진 않았지만 그대로 방 문을 닫고, “아!!!!!!!!!!”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책상을 주먹으로 여러 번 내리쳤다. 손이 아플 때까지 내려치니까 화가 조금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냐고 방에 다시 들어온 아버지에겐 당연히 “아무 일도 아니야.”
친구들이나 연인에게 짜증을 내는 빈도가 늘어났고, 스트레스 때문에 폭식이나 폭주가 늘어나던 올해 4월, 우연히 자조모임을 알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의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것도 자조모임 구성원들 덕분이다.
자조모임에 처음 참여했을 때가 기억난다. 정말 가까운 사람 몇 명만 알던 우리 집의 ‘파산’ 이야기를 했다. 완전히 처음 보는 분들 이어서 그랬을까? 마음 깊은 곳에 꾹꾹 눌러놨던 사건과 감정을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집안 얘기를 하는 게 쪽팔렸었다. 나 자체를 낮추는 것 같았고 사람들이 나를 안 좋게 볼 것 같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생활과 대학 생활을 할 때 ‘평범한’ 사람인 척 연기를 했다.
그런데 자조모임 구성원들은 나를 정말 평범한 사람으로 느끼게 해 줬다. 평범함을 넘어서 나도 꽤 괜찮은 사람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 이유는 내가 파산 얘기를 했을 때, “많이 힘들었겠어요.” “고생 정말 많이 했네요.” “그런 환경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오신 게 대단해요.”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말이 왜 그렇게 나를 슬프게 하면서 위로를 주는지, 그 말을 들을 때의 감정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그리고 ‘내가 힘들었던 게 정상이구나. 그럼에도 나 정말 잘 해왔구나.’ 라며 안심을 했다.
나의 어둡고 깊은 얘기를 마저 하고, 공감이 되는 다른 구성원들의 사연도 듣고, 서로 따뜻한 말을 해주고, 그렇게 나의 첫 자조모임이 끝났다. 속이 다 시원했다. 이렇게 다 얘기할 수 있는 걸 왜 몇 년 동안 꽁꽁 숨겨왔을까.
그 이후로 누구를 만나면 속 깊은 얘기를 자주 하게 됐다. 왜인지 모르게 가벼운 얘기보단 무겁고 진지한 얘기를 하는 게 좋아졌다. 내가 먼저 그러한 주제를 꺼내면 지인도 곧잘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자조모임에선 상대방의 이야기에 판단을 하지 않고 감정에 집중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지인의 얘기를 들어줄 때도 그 사람의 감정에 집중을 했더니, 공감이 훨씬 잘 됐고, 질문할 거리를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갔다. 나의 감정이 해소되는 건 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좋았다.
아마 나와 같은 이유로 무거운 얘기를 지인들에게 잘하지 못하는 독자분들이 많을 것 같다. 나의 대한 시선이 달라질 것 같고, 대화의 분위기를 망칠 것 같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방의 기분까지 침체되게 할까 봐 결국 혼자서만 끙끙 앓는..
물론 이러한 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말 못 하는 고민은 한두 개씩 가지고 있고 마음의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그렇기에 먼저 자신의 지친 마음을 보여주면 상대도 마음을 열 확률이 높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힘든 얘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면 자조모임에 참여해 보는 것을 권장한다.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꽉 막혔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