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야망이 한 스푼 더해지면
이 사람을 돌보느라 나 자신이 지워졌다
나는 더 이상 내 성격이 아니었고,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하지 않게 됐다
사회가 부여하는 '돌봄 제공자'라는 정체성과 개인이 느끼는 자아와의 관계에 대한 '캐어링 (carering)' 연구 참여자가 했던 말입니다.
아침엔 가족 구성원으로, 직장에선 직원으로, 친구들과 있을 땐 또 다른 모습... 우리는 모두 살아가면서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죠. 상황마다 달라지는 우리의 여러 얼굴들, 즉 '페르소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그리고 여러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 즉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진 사람들이 더 나은 심리적 적응을 보인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해서 우리의 전체 자아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회사에서는 실패한 팀장일지 몰라도, 집에서는 여전히 사랑받는 가족이고, 친구들에게는 신뢰받는 동료거든요.
이런 다양성은 회복력도 강화합니다. 한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다른 영역에서 긍정적인 경험과 지지를 얻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각 페르소나가 서로를 보완하며 더 풍성한 자아를 만들어가는 거죠.
다만, 돌봄의 페르소나는 다른 역할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치매를 앓는 부모를 돌보는 자녀, 장애를 가진 배우자와 함께하는 파트너...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돌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다른 모든 페르소나를 압도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를 '역할 몰입(Role Engulfment)'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런 현상은 번아웃으로도 이어집니다. 하나의 페르소나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면서 생기는 심각한 정서적 고갈이죠. 돌봄 제공자들이 자주 경험하는 이 번아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정체성의 상실과도 연결됩니다.
기업의 CEO들에게서도 이 돌봄의 페르소나가 극단적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회사를 넘어 사회 전체, 심지어 지구 전체를 '돌보겠다'는 거대한 페르소나를 구축하죠. 연구에 따르면 CEO의 96%가 번아웃을 경험하고, 주당 평균 52시간을 일합니다.
다만, 같은 '돌봄'이라도 CEO들은 가족 돌봄 제공자와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버팁니다.
첫째, 통제감의 차이입니다. 치매 부모를 돌보는 자녀는 상황을 바꿀 수 없습니다. 병의 진행을 막을 수도, 돌봄의 끝을 예측할 수도 없죠. 반면 CEO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감각을 유지합니다. 스웨덴의 한 연구에 따르면 CEO의 권한이 클수록 번아웃의 부정적 영향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둘째, 성취감이라는 연료가 있습니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맥클랜드의 이론에 따르면, CEO들은 대부분 '성취 욕구'가 극도로 높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도전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자극제예요. 적절히 어려우면서도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오히려 에너지를 얻습니다.
셋째, 의미의 확장입니다. WeWork의 애덤 뉴먼은 단순한 공유 오피스 사업을 '세계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미션'으로 포장했습니다. 프랑스 다논의 에마뉘엘 파베르 CEO는 회사 정관에 '지구와 자원을 보전한다'는 목표를 명시했죠. 이런 거대한 내러티브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더 큰 목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게 해줍니다.
일반적인 돌봄 제공자들은 번아웃이 오면 지쳐서 멈춥니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받아들이죠. 하지만 CEO들은 통제감과 성취감이라는 마약이 끊기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정반대로 행동합니다. 번아웃이 올수록 더 많은 일을 벌리고, 더 큰 목표를 세우며, 더 거대한 비전을 제시합니다.
번아웃에 빠진 CEO가 더 큰 목표를 세우면, 직원들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게 됩니다. "우리는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며 주 80시간 노동을 정당화하죠. 주주들에게는 "장기적 비전을 위해 단기 수익을 포기해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자신의 번아웃을 '더 큰 일'로 해결하려다 보니, 주변 사람들까지 동원하게 되는 겁니다. 그들의 시간, 에너지, 돈, 심지어 인생까지도 자신의 페르소나 유지를 위한 연료로 사용하죠.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페르소나 유지'의 사례입니다. <살면서 절대 엮이면 안되는 사람> 에서도 언급한 적 있었던 내용이죠. 자신의 페르소나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권리와 경계를 침해하는 병리적 돌봄 상태인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짜 필요한 돌봄과 페르소나를 유지하기 위한 병리적 돌봄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병리적 돌봄의 끝은,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듯 모든 것의 소멸이거든요.
회사는 무가치 상태로 추락하고, 수만 명의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투자자들도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됩니다. 이 뿐 아니라 CEO 자신도 본인의 신뢰, 추구해 온 목표과 의미, 나아가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병리적 돌봄을 자각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번아웃이 온 그들은 본인이 원하는 통제감과 성취감을 거대한 비전, 그리고 선한 의도로 포장해 그것을 내세웁니다.
애덤 뉴먼은 정말로 자신이 세계의 의식을 고양시키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직원들에게 극도의 헌신을 요구하면서도 "너희에게 의미 있는 삶을 선물하고 있다"고 했죠. 17억 달러를 챙기면서도 "더 큰 비전을 위해 필요한 자원"이라고 합리화했습니다.
Theranos의 엘리자베스 홈즈는 자신이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가짜 데이터를 만들고 투자자를 속였음에도, 법정에서 "나는 선한 의도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선의의 확신'이 무서운 이유는 자기 성찰을 완전히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악의를 가진 사람은 언젠가 죄책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의를 확신하는 사람은 절대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전이 없는 사람들", "단기적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 로 폄하하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여기에도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그 행동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니까요.
건강한 돌봄과 왜곡된 돌봄은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건강한 돌봄:
점진적 독립을 향한 방향성: 상대방이 궁극적으로 더 독립적이고 강해지도록 돕습니다
경계의 유연성: 필요할 때 물러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입니다
성공에 대한 진정한 기쁨: 돌봄을 받는 사람이 나아지거나 독립할 때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자기 의심의 건강함: "내가 정말 도움이 되고 있을까?"를 끊임없이 묻습니다
왜곡된 돌봄:
의존성의 심화: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이 더 무력해지고 의존적이 됩니다
외부 개입에 대한 거부: "나만이 이해한다"며 모든 대안을 차단합니다
위기의 연속: 한 문제가 해결되면 곧바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납니다
역할 상실에 대한 극도의 불안: 돌봄이 끝날 가능성만으로도 정체성의 위기를 느낍니다
건강한 돌봄을 위해 CEO들이 스스로 해야하는 질문은 간단합니다, "내가 정말 그들을 위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위하고 있는가?"
'태평성대(太平盛代)', 나라가 너무나 평화롭고 번영해서 특별한 영웅이나 구원자가 필요 없는 시대를 말하죠. 진정한 리더십의 최고 경지는 바로 이 태평성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이 없어도 조직이 건강하게 돌아가고, 구성원들이 스스로 성장하며, 시스템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상태. 노자는 이를 두고 "최고의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는지도 모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병리적 돌봄에 빠진 CEO들은 정반대를 추구합니다. 자신이 없으면 회사가 무너질 것처럼 시스템을 만들고, 모든 결정이 자신을 거쳐야 하도록 구조를 짜며, 직원들의 자율성을 억압합니다.
무의식적으로 태평성대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죠. 평화로운 시대에는 영웅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태평성대가 '리더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독재적/영웅적 리더가 필요 없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따라서 리더로서 중요한 것은 돌봄의 대상을 과도하게 확장하지 않고, 과하게 몰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부터도 늘상 경계하고 주의하는 부분인데요, 다음 글에서는 역할 몰입에서 벗어나 건강한 페르소나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적어보겠습니다.
여기까지 글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금방 또 만나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