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미안 Oct 21. 2024

*“2%”를 향하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속 수연에 대하여

어떤 조직이든 존재만으로도 분위기를 바꾸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이 같은 팀에 있을 때면,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축복이라고 느껴지기도 하는데, 참 고맙게도 지금 내 곁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면서 무겁고 비관적인 분위기를 걷어내는 사람. 마치 밤의 어둠을 걷어내는 햇빛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자기를 불태워서 온기를 전해주는 그 햇빛같은 사람이 고맙지만, 때때로는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마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봄날의 햇살” 최수연(하윤경 배우)을 보며 내 곁에 있는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짊어진 무게와 그 사람이 전해주는 온기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1.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제3의 침팬지>는 그 서문에서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적 유사성은 98%에 육박한다”는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찰스 다윈이 이미 <종의 기원>의 진화론을 통해 인간과 유인원류의 유전적 유사성을 들어 인간은 신이 선택하고 창조해낸 특별한 존재라는 기독교적 환상을 제거했다. 하지만, DNA의 유사성이 무려 98%에 이른다는 수치적인 결과값을 받아들이는 일은 적어도 내겐 굉장히 충격적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일이었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적 차이가 고작 2%라면, 그 2%의 차이로 이 지구에서 인간과 침팬지는 어떻게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 많은 학자들은 아주 작은 그 2%의 차이속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고 본다. 그 차이는 바로 인류가 갖고 있는 복잡한 사회적 능력이다. 


소통하고, 협력하고, 정치를 통해서 거대한 사회를 이룰 수 있었던 인간의 사회적 능력은 말그대로 현생 인류 사회가 있게 한 주요한 능력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의 ‘복잡한’ 사회적 능력이 현생 인류 사회와 문명의 건설과 유지를 가능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종들과 구별된 인류만의 ‘복잡한 사회적 능력’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 복잡한 사회적 능력을 하나하나 풀어 헤쳐 말하자면 굉장히 길고 방대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속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 보여준 복잡한 사회적 능력 중 ‘신념’에 대해서 짧게 몇 가지만 말해보기로 하자.



2. 어쩌면 “봄날의 햇살”보다 더 따뜻한 사람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어린 룰루 밀러에게 그의 아버지가 해준 말은 정확하다. 그의 아버지가 어린 룰루 밀러에게 해준 말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삶에 의미는 없단다. 삶은 필연적으로 혼돈을 향해 나아가고, 그렇기에 우리는 이 삶을 즐기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단다.” 아마도 룰루 밀러의 아버지는 이미 열역학 2 법칙, 엔트로피 법칙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폐쇄계에서는 엔트로피가 0인 상태에서 최대점의 상태로 천천히 이행된다. 이 폐쇄계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상, 결과적으로 엔트로피가 최대치에 이르게 되고, 엔트로피가 최대치일 때 세계는 혼돈, 무질서(Chaos) 상태가 된다. 이 무질서의 세계는 더 이상의 에너지가 발생하지 않는 ‘열 죽음 상태’로 진입한다. 이 과정은 지극히 냉정하고 기계적으로 이뤄진다. 이 세계에는 어떤 감정도 없다. 그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아득할 정도로 무수한 법칙과 변칙만으로 가득하다. 그런 것들로 우리의 세계, 우리가 ‘관측가능한’ 우주는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다. 


지구라는 작고 푸른 행성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기적도 지극히 냉정하고 기계적인 법칙과 변칙이 맞물리며 나타난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이 지구에 열에너지를 공급하며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준 태양의 열에너지, 비유하자면 “봄날의 햇살”이 이 지구에 열에너지를 전달하여 생명을 피워내는 현상들도 지극히 냉정한 우주적 법칙과 변칙이 맞물린 결과일 뿐이다. 봄날의 햇살은 겨울을 견뎌낸 새싹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주지만, 거목들의 그림자에 가려진 키가 작은 새싹들까지 두루 살피지는 못한다. 태양의 열에너지를 우리는 오랫동안 생명의 전령사 같은 것으로 생각해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저 우리 행성의 생명체들이 운 좋게 태양 열에너지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활용할 수 있었을 뿐이고, 그 에너지를 활용하지 못하는 생명들은 별 수 없이 시들어 갔다. 봄날의 햇살은 생각보다 무감정한 존재이며, 냉정한 존재인 셈이다.


반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봄날의 햇살” 최수연은 이 세계를 작동시키고 유지시키는 시스템처럼 무감정하지도 않고, 냉정한 사람도 아니다. 극중 수연은 영우라는 사회적 약자, 거목들의 그늘 아래에서 햇빛을 받지 못하는 작은 새싹들마저 챙겨주는 인물로, 약자를 챙겨주는 습성, 그건 감정을 갖고 있는 동물들이 보이는 행동인데, 수연은 단순히 자신과 친한 동족을 챙겨주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대세, 주류의 흐름에 맞서기까지 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따라서 맞서는 것, 이런 복잡한 사회적 능력은 오로지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특징으로 인류의 복잡한 사회적 능력을 감안했을 때, 영우가 극중 수연에게 “봄날의 햇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잘못됐다. 수연은 봄날의 햇살보다 더 뜨겁고 따뜻한 사람이다.



3. 포기하거나, 수정하거나, 지키던가.

봄날의 햇살로 불리는 수연은 드라마가 창조해낸 인물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인물의 깊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대세에 맞서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봄날의 햇살처럼 생명력과 활기를 주는 인물이 분명하고, 드라마에서도 수연을 그렇게 주변에 활기를 전달하는 밝은 인물로만 그려낸다. 하지만, 실제로 수연과 같은 인물들은 신념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에 기대어 자신을 헌신하고, 대세에 역행해서 투쟁하기까지 하는 그들은 어떤 의미에선 끝없이 자기 자신을 소진시킬 수밖에 없다. 신념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지켜가는 일을 계속해간다면, 종종 신념과 반대되는 현실 앞에서 자기 모순과 괴리감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 그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기모순과 괴리감을 뛰어넘고자 할 때 대체로 그들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현실은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종종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자신의 신념과 어긋난 현실을 받아들이거나(신념을 포기하거나), 자신이 지켜온 신념이 잘못되었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신념을 고치거나, 자신의 신념에 어긋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맞서던가.



4. *“2%”를 향하여

끝없이 고민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봄날의 햇살과 같지는 않지만, 봄날의 햇살을 닮기는 했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 끝없이 자기 자신을 소진시키며 발생하는 온기를 세계에 나눠준다. 태양처럼 무감정하게 온기를 퍼붓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신의 온기를 세계 곳곳에 직접 전달한다. 신념에 따라 그 온기를 세계 곳곳에 전달하는 그 능력은 사랑과 용기, 그리고 헌신의 감정을 필요로 한다. 단순한 유전자의 전달이라는 생명체에 입력된 명령체계를 벗어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서 세계에 맞서고 그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존재와 존재 가능성은, 인류를 침팬지와 구별할 수 있는 “2%”에 포함된 어떤 것이 분명할 것이다. 자기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소진되든, 세계 곳곳에 온기를 전달하기 위해 투쟁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내며. 당신들 덕분에 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었노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서이제 소설가의 단편소설, <0%를 향하여>의 제목을 오마주했다.


이전 21화 어떤 우정은 사랑을 닮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