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미안 Oct 27. 2024

우리의 완생을 위하여

<미생>속 상식에 대하여

“우리는 아직  미생이야.”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미생’이란, 바둑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완벽하지 못한 집, 죽은 돌들을 의미한다. 이 죽은 돌들은 살리기 위해선 돌을 더 두어서 완생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니, 미생은 미완성의 불안정한 삶을 뜻한다고 할 수 있고, 오 상식 과장은 장그래에게 “우리는 다 미생이야”라고 말하며, 버텨내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한다. 이 장면은, <미생>의 명장면 중 하나인데, 이 말 뒤엔 생략된 문장이 있다. 그 말은 아마도 오상식의 용기가 부족한 문제로 생략되었을 것이다. 그가 생략해버린 그 말은, “우리,  완생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오상식은 무작정 후배에게 버텨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되었든 나의 팀에 소속된 이상. 우리 함께, 완생을 만들어보자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상식은 과거 자신의 실수로 부하직원 죽었다는 죄책감때문에, 그래에게 그런 말을 쉽게 하지 못했을 것이고, 실제로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오상식은 과거의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오상식의 마음은 그래와 함께 완생을 만들어가는 일에 기울어져 있다. 일례로, 그래의 완생을 위해 상식은 위험한 사업 건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도 자신이 이끌고 있는 영업3팀의 운명을 걸고 말이다. 곧 넷플릭스에서 내려갈 <미생>을 정주행하며, <미생>속 오상식의 모습을 보며 이중적인 감정을 느꼈다. 



좋은 사람들과 완생을 만들기 위해서

그는 워커홀릭이자, 부하직원들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자 영업3팀을 지지하는 그의 선택은 언제나 자신의 윗 사람들을 쳐내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 지점에서 나는 서늘한 감정을 느꼈다. 박과장의 요르단 자동차 수출 건에서 비리를 내부고발하면서, 결과적으로 그와 오랫동안 함께 했던 김 부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고. 전무가 추진하고 영업3팀에게로 인계된 중국 사업 건 역시 내부 조사 과정을 겪으며, 전무를 물러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화살은 오상식 본인에게로 쏟아졌다. 회사라는 거대한 이익집단은 이익에 반하는 인물들을 차근차근 정리했는데, 그건 오상식의 노력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었고, 버텨내는 삶의 중요성을 말해오던 오상식 마저도 회사라는 거대한 이익집단의 강요를 이겨내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자, 오상식이라는 큰 산을 잃은 그래 역시 회사를 떠나게 된다. 오상식은 자신의 팀은 물론, 좋은 사람들과 일터에서 완생을 이루고 싶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완생에 이르기 위한 과정에서, 그는 매번 큰 결단을 해야 하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그건 바로, 완생을 향해 잘못된 방식으로 수를 두고 있는 이들을 교정하는 작업들이다. 그리고, 이 작업에는 큰 지각변동이 따라온다. 새싹들이 가져가야 할 양분을 가져가는 오래된 거목들을 벌목해내는 일이다. 세대 교체가 필요한 것이다. 드라마 <미생>에선 잔인하게도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들의 완생을 돕기 위해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이들이 자리를 떠나게 된다. 아주 잔인하지만, 현실적인 결말이다. 박과장은 자신의 과오를 책임지고 물러났고, 영업팀 김부장은 관리 책임을 물어 자리를 떠나고, 전무는 자신만의 낡은 방식을 답습해왔고, 그 점을 이해받지 못해 회사에서 떠나고, 오상식은 의심과 불신의 댓가로 자리를 떠나게 된다. 물론, 이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은 저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떠나는 것인데, 드라마는 이런 장면을 다소 가혹하게 그들의 뒷모습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드라마 <미생>속 오상식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완생에 이르기 위해 애쓰는 과정은 어딘가 서늘한 감각을 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극적인 묘사고 비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엔 <미생>의 오상식을 보며, 그저 멋진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 저런 어른이 우리 주변에선 찾기 힘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더랬다. 하지만, 시간이 꽤나 지난 지금. 후임들이 생겼고, 나 역시 점차 기성旣成세대의 문턱에 서있는 요즘. 그래를 포함해서 그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완생에 이르기 위해 애쓰는 오상식의 모습에서 서늘한 감각을 느낀다. 기성이 신세대와 함께 완생에 이르기 위해선, 드라마 <미생>의 오상식이 짊어진 각오처럼 남다른 각오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필요하다면, 읍참마속을 하겠다는 각오로. 어떤 의미에선 절치부심의 각오로 과오를 끊어내야 하고, 별 수 없이 싸워야만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잘못된 과오를 바로 잡아야만 한다. 기성의 잘못은 기성이 바로 잡아야만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현실의 문제들은 기성이 오랜 시간 기성의 과오를 바로 잡지 못해 발생하고 있는, 시스템이 망쳐버린 결과로 엉망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이젠 우리의 차례다.

지금의 기성세대, 그러니까 민주화운동을 위해 투쟁했던 이 세대들은 지금은 그저 안온한 평화에 물들어 있고, 적당한 먹고사니즘에 타협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이제 싸울 힘을 잃었기에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그들중 대다수는 더이상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 잡을 힘도 의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바라본 기성세대들은 무사안일주의와 편의주의에 빠져있고, 과거 시민들을 권력의 수발로 부리려던 독재자에 맞서는 방법을 망각하고, 권력이 시민들을 부릴 때의 평온함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책임자들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먹고사니즘에 빠져 책임을 회피하기에 바쁘고, 평상시에는 권력의 뒤에 숨어 일선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자꾸만 어디론가 조용히 숨어지내려는 그들의 특성을 보건대, 이제 그들의 남은 숙원은 평온한 은퇴와 그 이후의 유유자적한 삶뿐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사회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협력을 통해서만 건강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구성원들이 서로를 향한 신뢰와 협력을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 없다.


그러니,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맞서는 방법을 잃어버린 그들을 대신해서. 부정에 대해서 분노하는 방법과 공감의 감정을 잃어버린 그들을 대신해서, 젊은 시절의 명석함을 잃어버린 그들을 대신해서. 소위 MZ라고 불리우는 차기 기성旣成세대에게 이제 이 시스템의 운명이 걸려있는 듯 하다. 우리가 지금 이 부정부패한 시스템에 눈을 돌리면,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이 사회에 뿌리 조차 내려보지 못하고 시들어갈 것이다. 우리 시대 신자유주의가 찬양하는 차가운 냉정함과 근대적 이성에서 벗어나, 시선은 냉정함을 유지하되, 뜨거운 감정으로 세계를 다시 봐야 할 때가 왔다. 뜨거운 감정과 차가운 이성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을 모두에게 지금 이 격려가 닿기를 바란다. 당신들의 투쟁은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고, 우리 사회 전체의 화해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서 다시 냉정한 시선으로, 그리고 뜨거운 감정으로 주변을 바라보자. 우리가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싸워야 할 차례다. 



- <미생>, TVN, 2014,

이전 22화 *“2%”를 향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