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아의 <끝>과 몇몇 곡들에 대한 잡문
#끝
권진아는 <끝>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권진아의 <끝>은 이별을 준비하는 남자친구가 이별의 이유를 여자에게 물으며 끝을 고하는 내용의 곡으로, 이 곡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았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작사와 담담한 어쿠스틱 사운드가 매력적인 곡으로, 확실히 겪어봤거나 그 감각을 정확히 공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노래라는 인상이다. 한 연인이 있다. 연인 중 남자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이별을 준비하는 남자는 여자에게 소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여자는 달라진 남자에게서 이 관계의 준비된 ‘끝’을 예감한다. 여자는 이별을 준비한 남자가 자신 앞에서 비겁해지는 모습을 본다. 헤어지고 싶잖아. 밀어내고 싶잖아. 왜 착한척 해. 여자는 알아본다. 너는 이별을 준비하고 오늘 나를 만난 거라고. 하지만, 아름다운 이별이란 없어서 너는 나에게 이별의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나는 네가 나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모습에, 그렇게 망가지는 모습에 마음이 아픈데. 너는 나를 기어이 망가트리려 하는구나.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끝낼게. 내가 망가질게. 그 편이 내가 덜 아프니까. 아직 너를 사랑하니까. 그래서, 권진아의 <끝>은 남자의 입장에선 끝<The end>이지만, 여자의 입장에선 아직 끝나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망가져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 끝나지 않는 마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떤 사랑은 너무도 강력해서, 온 생애동안 그 그림자가 드리워지기도 하는데, 아무리 남들이 나쁘다고 해도 도저히 끝낼 수 없는 마음들이 종종 있다.
#진심이었던사람만바보가돼
권진아의 <진심이었던 사람만 바보가 돼>는 <끝>과 바로 이어지는 인상을 준다. <끝>에서 끝내지 못한 여자의 마음은 오랫동안 여자를 괴롭혀온 게 분명해보인다. 그리고, 여자는 자신의 지난 지난했던 나날들을, 자신의 진심을 다한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그 끝에서 아마도 이런 결론을 내렸겠을 것이다. 사랑에 “진심을 다 하면 멍청한 걸까(Stupid love)”라는. 여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감각으로 이별을 준비하는 너의 마음을 믿지 않았다. 왜냐면 이별 앞에서 너는 정말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이별 앞에서 자신에게만 아름다운 이별을 하려는 너는 나를 어떻게든 망가트리려 했다. 그날 밤 나는 그렇게 위선적인 태도로 망가지는 너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아파서, 차라리 내가 악역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끝내지 못했고, 당신은 나를 끝냈다. 홀가분하게. 그날 밤에 여자는 공기마저도 미워할 정도로, 자신이 “끔찍하게 작아졌던” 밤으로 기억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부탁한다. 애틋한 인사는 하지 말아달라고. 떠나가는 너를 마음껏 미워하는 마음으로 이 사랑을 제발 끝낼 수 있게 해달라고.
#운이좋았지
<운이 좋았지>는 사랑이 끝나고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난후에 여자가 쓴 가사다. 가사 속 여자는 이미 지나간 어떤 한 시절의 한 사람을 너무 사랑했고, 사랑한만큼 아팠다. 진심을 다한 사랑이었던만큼, 추락했을 때의 낙차는 너무 컸다. 돌이켜보면, 일방향의 사랑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한없이 사랑한 날도” 애초에 없었다. 나의 진심은 어떤 답장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남들이 “그렇게 어려운 이별을 한다는데”, 나는 너의 “말 한마디로 끝날 수 있던 사랑을 했”었다. 너와 달리, 나는 “혼자서 울음을 삼킨 날도 정말” 많았다. 돌이켜보면, 너는 내게 어떤 후회도 여운도 남겨주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스스로 망가졌던 너를 생각한다. 덕분에 후회도 여운도 남지 않았다.
내 삶에서 나보다도 더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내게 전부였던 무언가가 있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너는 내 온 생애를 걸쳐 다신 보기 힘든 가장 큰 폭풍이었고, 이 폭풍이 그치면 아마 여자의 생에서 두 번 다시 더이상 같은 폭풍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앞으로도 그녀의 삶속에서 몇번의 크고 작은 비바람이 찾아오겠지만, “그많던 비바람과 다가올 눈보라도 이제는 봄바람이” 될 뿐이니까. <운이 좋았지>는 모진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는, 그리고 깜깜한 일방향의 터널을 통과해 드디어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가게 될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은, 이젠 “전부였”던 과거형이 되었고. 이젠 여자도 직감한다. 한때 전부였던 것을 이젠 놓아주는 것으로, 나는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젠 다시 나의 일상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끝>에서 차라리 내가 가겠다고 너에게 말했고, <진심이었던 사람만 바보가 돼>에선 애틋하게 말하지 말고 차라리 악역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운이 좋았지>에서는 화자는 ‘너’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나를 되찾기 위한 과정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너에게 할 말은 더이상 없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지> 속 여자는 나의 전부였던 사랑에게 나 자신을 빼앗겨 온(Ent-Eignis) 오랜 시간을 되찾는 과정 앞에 서있다. 관계의 끝에서 여자는 이제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기 위한 출발선에 선다. 여자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어제보다 더 단단해졌고, 어제만큼 오늘 더 어른이 되어있다. 그렇지만, 그게 너의 덕분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나에게 우연히 찾아 온 행운에게 고마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