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리의 <동그라미>
#동그라미
곡을 직접 쓰는 가수가 처음으로 직접 작사 작곡한 곡보다 진심어린 곡은 없다. 완성도에서 부족하더라도, 그 노래의 가사는 그 사람이 지향하는 바를 나타내고, 그 사람이 어떤 목소리로, 어떤 사운드로, 어떤 호흡과 속도로 노래를 부를 것인지 추측하게 한다. 물론, ‘첫 발매곡’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종종 나는 어떤 가수의 음악을 들으면 그 가수의 첫 곡을 상상해본다. 가수의 첫 발매곡이 아닌, 아주 최초의 곡을 말이다. 녹음실이 없어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고, 노트에는 첨삭 기호들로 가득한 가사들, 앳된 목소리, 가공되지 않은 어쿠스틱 사운드, 그리고 그저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정성을 다해 조심스럽게 부르는 그 마음 같은 것들이 느껴지는 최초의 곡. 아무리 유명한 가수라도 그런 최초의 곡을 찾아 듣기는 힘들다. 아마 가수 본인도 자신의 최초의 곡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을테고.
가수 최유리의 <동그라미>를 들으며 이 가수가 최초로 작곡한 노래가 궁금했는데, 당연히 가수의 최초의 곡을 내가 들을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가수 최유리의 첫 EP 《동그라미》에 수록된 곡 <동그라미>를 최초의 곡으로 상정하고 이에 대해서 말해보는 게 최선일 것이다. <동그라미>속 동그라미는 노래속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양이다. 이건 사랑일 수도 있고, 동경일 수도 있겠다. <동그라미>속 화자는 각지고 날선 세계를 살아가며 그들처럼 각지고 날 선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 화자가 어느날 만난, 모진 구석 하나 없는 다정한 사람은 화자로 하여금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볼까”라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만든다. 그렇다면 누군가와 같은 모양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간단하게, 합치되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너의 마음안에 나를 온전히 담아내고 싶다. 너의 안에 나의 모든 마음이 들어가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말이다. 너의 안에 가득 잠길 수만 있다면, 나의 각지고 날선 부분들을 모조리 부숴도 괜찮다. 최유리의 <동그라미>에는 모진 구석 하나 없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날이 커져가며, 어느덧 비록 모진 자신이라도 당신의 원 안에서 가득 잠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서툰 시절에 서툴게 던진 말 한마디는, 그 커다란 마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를 다시 “또” “이대로” “모진 사람”으로 남게 만든다.
그저 당신을 향한 마음 하나로 나는 내 세계를 깨트리고 당신에게 잠기고 싶었지만, 서툰 말 한마디로 그 일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다. 당신이 그렇게 내 세계에서 사라진 후.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없이 많은 당신을 닮은 사람들을 지나쳐도, 나는 계속해서 그들과 부딪히고 점점 더 날카로워지기만 할 뿐이다. 사라진 당신의 모습을 잊고 당당하게 서 있고 싶지만. 그래도 역시 난 당신처럼 여전히 동그라미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담담하게 담은 최유리의 <동그라미>. <동그라미>는 모진 구석 하나 없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원에 나의 원을 포개어 당신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담담하게 담았다.
모두가 자신의 잘남만을 말하고, 가벼운 사랑을 이야기할 때, 그저 나의 모든 것(■)을 당신의 세계에 온전히 맞게(○) 만들어, 당신의 세계에 흠뻑 잠기도록 만들고 싶다는 고백은 얼마나 결연한가. 누군가를 향한 결연한 마음과 진지한 마음이 찾기 힘든 시대에, 최유리의 <동그라미>는 그 결연함 하나만으로 지극한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