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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우 Jan 11. 2024

일곱 포기

우리 집엔 식물 일곱 포기가 있다. 일곱 명이라고 하자.

아이비 한 명, 스킨답서스 두 명, 개운죽 한 명, 무늬접란 한 명. 스파티필룸 두 명.


주변에 이들을 소개하면, 다소 당황한 눈빛으로 내게 이유를 되묻는다.

'식물과 거리가 먼 사람인 줄 알았는데'라는 표정이다.


아주 바쁜 날들이었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밤 열 한시에 집에 들어오는 날의 연속이었다.

노동 시간을 쪼개 생명력이 강한 식물을 검색해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

어느 날 현관문 앞에서 갈색 상자가 나를 기다렸다.


이들은 원플러스원이었고, 나는 마트에서 증정한 강아지와 금붕어를 떠올렸다.

환경이 바뀌면 몸살을 앓는다기에 일주일 정도를 식탁 위에 그대로 두었다.

삽과 돌은 둘이 살던 곳에서 가져오고 화분은 엄마에게 배양토는 친구에게 얻었다.


분갈이를 한 다음날, 졸다가 상사의 꾸지람을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꿈속을 헤맸다.

틈이 나는 대로 돌보았다. 흙이 말랐는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워 나무칫솔을 꽂아보았다.

분무기와 조리개를 구매해 이젠 흙이 파이지 않는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그러면 걔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나를 더 좋아할 것 같아.

너를 잃고서 흔적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너에게 가는 길을 만들어줄 것처럼.

중경삼림 엘피판에 바늘을 올리고, 첼시 부츠를 사고, 진은영 시집을 읽는다.


중경삼림 엘피판에 바늘을 올리고 첼시 부츠를 사고 진은영 시집을 읽는다

노력과 좌절이 층층이 얹혀 너를 토해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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