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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Jul 03. 2020

#5. 나는 상대를 절대 공감할 수 없다

'척'

V(시각형)
A(청각형)
K(체각형)


V, A, K 세 사람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고 있다.

한 사람은 울고, 한 사람은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다.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 않는다.

그때 세 사람의 반응이다.      

V : 한 사람은 울고 있고, 한 사람은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네. 슬픈 일이 있나 봐.
A : 저 사람은 왜 울지? 다른 사람은 뭐라고 하는 거지?
K : 어우, 나도 눈물 나. 훌쩍.     


V는 보이는 것으로 지레짐작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아는 V들은 대체로 넘겨짚기 달인이다.

A는 이유가 궁금하다. 앞뒤 맥락이 맞아야 이해가 된다. 우는 이유를 듣고도 맥락이 없으면 ‘그게 울 일인가?’ 의아하다.

나를 비롯하여 A들은 냉소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실 이미지도 냉하거나 표정이 딱딱하고 굳어 있다. 잘 웃지 않는다.

K는 즉시 감정에 푹 빠져든다. 이유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사실 두 사람의 상황은 이렇다.

우는 사람은 브런치 작가로 합격이 되어 기뻐서 울었다. 다른 한 사람은 그 소식을 듣고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고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직접 확인해 보면 간단하고 쉽다.

그런데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해석이 기준이다.

이런 일은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사실을 확인한 후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V : 어머, 난 슬픈 일인 줄 알았네. 축하해!
A : 울 일이 아니잖아. 기쁜 일인데 왜 울어? 웃어야지.
K : 정말 좋겠다! 그 마음 내가 알지. 흑...      


서로 아는 사람이라면 사실 확인하기도 편하겠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도 있다. 그 상황이 임팩트가 강할수록 뇌리에 오래 남는다. 내 기준대로 해석된 채 기억 속에 저장된다.

우리는 사실보다 왜곡을 저장한다.      


 

왜곡 현상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상태가 이 모양이니, 상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는 건 불가능하다. 해석과 판단과 지레짐작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사람은 정말 제각각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직접 세션을 하다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상대 몸속의 실핏줄까지 보이는 경험을 할 때 속이 울렁거려서 견딜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세세하게 알게 되는 느낌이다.

상대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처럼 소리에 예민한 사람은 과한 정보가 심적으로 힘이 든다.


     

외부 상황 -> A -> V -> K      


내가 작동하는 방식은 이렇다.

소리가 보인다. 그제야 느낀다.      

A도 세분화시키면 또 제각각이다.

-D(digital)에 관한 얘기는 일부러 뺐다. 이것까지 합치면 구조는 더욱 복잡해진다-




나는 상대를 절대 공감할 수 없다.

당연하다. 나는 상대의 사고 구조대로 살지 않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이해를 구한다.

공감이 안 되는데 어떻게 이해를 하나?

어떤 사람은 이런다.


"이해는 되는데 공감이 안 돼요."


이론으로는 알겠는데 감정적으로는 모르겠다. 유사한 말이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뭘까?

감정으로 안다는 건 또 뭘까?

이해와 공감은 전혀 다른 말인가?

공감과 이해는 연결된다.

공감이 먼저 작동되고, 이해가 그다음이다.


이해는 되는데 공감이 안 돼요, 의 말에 속지 마라.


이런 말을 들을 때 나의 느낌이다.


‘이해는 안 되지만 그것마저 안 하면 욕먹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거든요.’


V와 A가 공감이 떨어지는 이유는 정보에 의한 이해가 먼저고, 그걸 통해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V는 사람을 좋아하니 A 보단 나은 편에 속한다.    

  

외부 상황 -> V -> K -> (A)     


사람보다 일을 선호하는 A는 K의 반응 속도가 가장 늦다. A와 V를 처리하느라 K는 소외시킬 때가 많다.

일이란 건 감정보다 정보가 더 중요하다. 그럼에도 최종 결정은 무의식 속의 감정이 내린다.

의식적으로 아는 건 정보이기에 무의식적인 감정은 모르고 지나간다. 그리고 자신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해버린다.

그렇지 않다. 감정이 더디게 반응하거나 모르고 있을 뿐이다.


내 느낌, 감정을 들여다보면 좋겠다.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습관을 들이면 모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때는 반갑게 악수를 나누어라.

내가 나와 공감도 못하면서 상대와 공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진심으로 상대와 공감하고 싶은가?

그 사람이 하는 그대로 해보면 된다.

불가능하다고?

아주 작은 한 부분이라도 상대의 구조를 모델링하는 연습을 해보라.


공감은 상대를 이해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사고 구조를 그대로 따라해봄으로써 상대와 나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공감은 그때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된장을 안 먹어본 사람이 된장 맛을 어떻게 공감할까.

직접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는 이론은 어디서 주워들은 기억을 꺼내어 이해하는 ‘척’할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8g1M7nqLGg


http://m.nlpc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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