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디션이 좋지 않은 게 벌써 두 달째다. 처음엔 목이 가서 기침이 나더니만 면역력 저하 탓인지 입가에 수포가 생겼다. 왼쪽이 나아가니 어젠 오른쪽이... ㅠ
허리도 아프고 계속 기력이 떨어져 병원에 갔더니 의사 쌤이 금지령을 내렸다. 뚜둥~!
커피
하루에 두 잔씩 꼬박 마시던 믹스커피.
아침에 일어나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몽롱한 정신을 깨우고, 달달한 커피 한잔에 피로감도 잊곤 했었다.
그런데 역류성 식도염 증상도 있으니 자극적인 음식을 삼가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속이 쓰리긴 해서 커피를 중단했다. 찬바람 부는 계절에 커피도 마음대로 못 마시니 울적하다. 커피 없는 인생이란 너무 낭만 없는 거 아닌가?
아프다는 건 낭만도 잃는 것일 게다. 아프면 서럽고 슬픈 게 커피를 못 마셔서 그런 것처럼 비약하게 되니 참.
지난주엔 못 참고 커피 끊은 지 한 달만에 커피를 탔다. 한 모금 마시는데, 윽!
'맛이 왜 이래?'
달달하던 커피가 텁텁해서 거부감이 확 든다.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아 결국 버리고 말았다. 커피 끊은 지 겨우 한 달 지났는데 그새 입맛이 변한 걸까?
커피 없으면 못 살던 내가 다른 사람인 양 느껴진다. 사랑하는 커피를 배신한 기분이다.
아, 나의 낭만이여!
술, 담배
"술, 담배 하세요?"
의사 쌤이 묻기에 고개를 저었다. 예전 같으면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의례적인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씁쓸했다.
"술, 담배 하시면 안 됩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강조하는 의사 쌤.
'암요. 커피도 못 마시는데 뭔 술, 담배겠어요.'
예전에 남편은 나와 치맥 같이 하는 게 소원이랬다. 크리스천이랍시고 나는 그럴 일 없다며 쌀쌀맞게 대꾸했다. 가끔 맥주를 마신다는 크리스천을 볼 때마다 짝퉁이라며 속으로 흉을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장경동 목사님이 쓴 책을 보게 되었다. 막걸리를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같이 막걸리 한잔하고 싶다던 아버지 소원을 못 들어드린 게 후회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대목을 읽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유명한 목사님도 아버지와 막걸리 한잔 못 한 걸 후회하시는구나. 근데 내가 뭐라고 건방지게 판단하고 정죄했을까. 기독교를 믿기 전엔 나도 술을 마셨으면서. 알량한 신앙관으로 정결한 척 위선을 떨었던 게 부끄러웠다.
그날 이후로 나의 생각도 바뀌었다. 온 가족이 모여 치맥을 하기도 하고, 선물 들어온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가족들이 원래 술을 못 마시기에 1년에 두어 번이 고작이지만, 분위기는 훨씬 좋아지는 것 같다. 왜 진작 유연해지지 못했는지. 갇혀 있던 사고에서 벗어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와, 엄마가 술을 다 마시네."
"되게 어색하다."
"평생 같이 마실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가족들은 달라진 내 모습에 무척 놀라고 신기해했다.
하지만 술 체질이 아니어서 기본적으로 술은 별로다. 그나마도 금지가 되었으니, 와인 정도면 모를까 앞으로도 마실 일을 없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남편 소원을 들어줄걸. 할 수 있을 땐 못 하고, 못하게 되니 후회로구나.
운동
운동 금지는 너무하지 않나?
런데이 한 달만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너무 무리하면 안 되니 뛰는 건 금지. 좀 괜찮아지면 걷기는 해도 된단다. 이제 좀 할만하다 했더니, 운동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신세. 큰 맘먹고 시작한 런데이가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ㅠ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시작하는 게 좋을 뻔했다. 너무 안 하다가 갑자기 하니 몸뚱어리가 견디질 못한다. 쩝.
"엄마, 옆구리 살 어디 갔어?"
"요즘 운동하잖아. 오호호호."
"오! 튜브가 없어졌는데."
아들은 내 옆구리를 만지며 놀라워했고, 나는 쏙 들어간 허리에 뿌듯하게 웃었더랬다. 이 맛에 운동하나 보다.
운동의 효과가 나타난다 싶더니, 안 한 지 보름이 지나자 슬슬 튜브에 바람이 들어오고 있다. 더 빵빵해지기 전에 빼야 하는데!
날씨도 부쩍 추워졌지만 달리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그래도 한 달 달렸다고 몸이 기억하네. 풋! 컨디션 돌아오면 슬슬 움직여 봐야지.
운동 못 해 몸이 근질거리는 날이 올 줄이야. 제일 하기 싫은 게 운동이었는데.
뭐든 할 수 있을 때 하자. 제발!
일
"말을 하면 안 돼요. 푹 쉬셔야 합니다."
나도 그러고 싶다, 나도! 제주도 한 달 살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라구! 하지만 벌려놓은 일은 어쩌구?
커피 못 마셔도 견딜 만 해.
술, 담배야 좋아하지 않으니 상관없어.
운동도 원래 안 하던 거잖아.
근데 일은...
사람이 일을 안 한다는 건 정체성 문제다. 갑자기 실직을 당했을 때 오는 타격감이 만만치 않은 것만 봐도 그렇다. 그 어떤 금지보다 일을 금지당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말하는 직업인데 말을 하지 말라니 깝깝하다.
"직업이 말하는 거라서요. 그리고 일은 관둘 수 없어요."
사정을 얘기하면서 서글펐다. 진짜 말을 못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성대결절 진단을 받은 가수들의 심정이 조금은 헤아려진다.
원래 기관지가 약하긴 해서 목을 과하게 쓰면 바로 탈이 난다. 올해 무리를 하긴 했지만 이렇게 오래 간 적은 처음이다.
아들에게 얘기했더니,
"나이 먹어서 그래."
남동생과 통화하면서도 얘기했더니,
"누나 나이를 생각해."
남편도 같은 얘기.
"몸이 한 해, 한 해가 다르다."
젠장. 일 좀 할만하니 몹쓸 나이가 걸리는구나. 아무리 열정이 넘치면 뭐 하나. 몸이 안 따라주면 그만인데.
나이 들어가는 것이 실감 나는 건 몸이 아플 때인 것 같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것이라는 말이 뼈를 때린다.
70대에도 현역에서 뛸 꿈을 갖고 있기에 건강에 신경이 쓰인다. 아니, 건강에 신경 쓸 나이가 되었다. 전엔 참고 참다가 못 견딜 때 즈음 병원에 갔는데, 신체 감각이 무디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아프다 싶으면 제깍 병원에 간다. 정말 푹 쉬어야 할 날이 오기까지(갑자기 무덤행은 사양) 내가 좋아하는 일만큼은 해야겠기에.
좌절
커피 좀 못 마시면 어떠랴.
술, 담배 좀 못 하면 어떠랴.
운동 좀 못하면 어떠랴.
일에 지장 좀 있으면 어떠랴.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만큼은 금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거다.
의사쌤은 내게 건강을 위해 이것저것 금지령을 내리셨지만, 나는 내게 좌절 금지령을 내린다.
이것 말고도 금지당한 것도 있고, 스스로 금지하는 것도 있을 터. 이참에 하나씩 점검해봐야겠다. 무엇이 내 삶을 제약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