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겨울, 남편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을 때의 일이다. 남편 친구들의 단골집인 고깃집에서 만났다. 오래된 고깃집의 둥그런 철제 테이블에 둘러앉자 기본 찬들이 착착 나왔다. 그런데 유독 나를 기쁘게 한 것이 있었으니, 서비스로 나온 생간이었다. 싱싱하고 촉촉한, 선홍색의 생간을 보자 군침이 싹 돌았다. 한 점을 소금과 참기름 장에 콕 찍어 입에 넣었는데... 고소한 맛이 혀에 착 감기며 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으음, 이 맛이야!"
"어휴, 이런 거 안 먹게 생겼는데 잘 드시네요."
"없어서 못 먹죠. 후후."
남편 친구들은 생간을 잘 먹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나는 아무도 먹지 않는 생간을 혼자 뚝딱 비워냈다.
"이모~ 생간 한 접시 더요!"
생간을 좋아하는 날 위해 남편이 한 접시를 더 시켜주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세 접시째. 오랜만에 먹는 생간 맛이 어찌나 좋던지. 뷔페 가면 나오는 생간과는 질이 달랐다.
일단 참고 보는 습관
다음날 아침부터 배가 살살 아파왔다. 뱃속을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는 느낌이었다.
'고기 먹은 게 탈이 났나?'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곧 괜찮아지려니 했다.
저녁에 퇴근하여 온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병원 가지 왜?"
"아냐. 견딜 만 해."
"진짜 병원 안 가봐도 되겠어?"
"응."
그러나 다음날이 되자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이번엔 창자가 사정없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화장실을 쉴 새 없이 들락대느라 기진맥진. 집에는 아무도 없고 혼자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저녁이 되자 퇴근하여 온 남편이 창백한 내 몰골을 보더니 말했다.
"응급실에 가지 그래?"
"아니야. 하루만 더 참아보고."
"참을 게 따로 있지. 그러다 큰일 나."
"너무 힘들어. 그냥 잘래."
말할 힘도 없어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늘로 창자를 콕콕 찔러대는 통증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러다 사람 죽겠다 싶었다. 그날 밤,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서야 남편과 함께 응급실에 갔다.
"급성장염입니다. 많이 아팠을 텐데 일찍 병원에 오지 그러셨어요."
"..."
'그러게요.'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조금 아프다고 해서 득달같이 병원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일단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 보는 게 습관이었으니까.
미련한 인내심
눈가에 한관종과 비립종이 있어 성형외과에 갔을 때도 그랬다. 레이저로 시술을 받는데 너무 아파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도 '선생님, 잠깐만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쉬었다 한다고 덜 아프진 않을 테니까.
'참자, 참자.'
숫제 고문과 같은 통증을 참으며 시술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독립투사들은 어떻게 고문을 참았지?'
마치 독립투사나 된 듯 고통을 잘 참는 내가 대견했다.
무사히 시술이 끝난 뒤 의사쌤이 말했다.
"엄청 잘 참으시네요. 이거 한 번에 다 못하시던데. 반쪽만 하고 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
얼굴을 불로 지진 것처럼 너무 아파 정신이 멍 나간 채로 의사 쌤 말을 듣기만 했다.
하긴, 위 내시경도 수면마취가 아닌 생중계로 봤던 나다. 목구멍에 삽입된 이물감 때문에 웩웩, 눈물은 줄줄~. 애를 둘이나 낳았는데 이까짓 아픔쯤이야.
아니다. 참는 습관은 예전부터 있었다. 나는 내가 인내심이 강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고, 그게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엄살이 심하거나 조금만 아파도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는 콧방귀를 뀌었다.
'애도 아니고, 그 정도도 못 참아서 뭘 한다고. 쯧쯧.'
아프면 아프다 말하기
몸의 감각이 둔하여 아픈 걸 잘 느끼지 못한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통각 상실증이 판타지인 줄 알았다. 처음에 증상이 나타날 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문제였다. 견디고 견디다 더 이상 못 견딜 정도가 되어서야 병원에 가는 일이 허다했다. 어디가 부러지거나 입원, 수술은 해야 '아프구나.'로 인정했다.
내 몸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은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었다. 참을성이 많은 게 아니라 실은 둔감하다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이라니.
나의 미련함을 알게 되자 그동안 참았던 게 허탈했다. 내 미련한 잣대로 아픈 사람들을 재단했던 게 창피했다. 건강을 해치는 인내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아파야 했던 내 몸뚱어리는 또 무슨 죄인가.
지금은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간다. 더 이상 미련을 떨고 싶지 않아서. 어느 날은 어디서 부딪쳤는지도 모르게 다리에 시퍼런 멍이 들 때도 있다. 그냥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였으나. 이젠 가만히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말을 건다.
"미안해. 내가 또 몰랐네. 많이 아팠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기.
무작정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기에, 내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려 신경 쓴다.
몸의 세포마다 나의 경험이 새겨져 있다. 눈과 귀로 확인하지 않고도 촉각으로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눈이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는 것처럼 몸의 촉각도 둔감하면살면서 불편한 일 투성이다.
내 영혼을 사랑하듯, 영혼을 담은 몸도 사랑하자. 나의 몸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나에 대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