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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내 인생
밀가루만은 제발!
이번 생엔 포기한다
by
날자 이조영
Jul 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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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넌 밀가루를 끊을 수 있겠니?"
"아니. 갑자기 왜?"
"내가 요즘 습관 훈련 중이잖니. 이번에 30일 밀가루 끊기를 한다기에. 근데 넌 왜 밀가루를 못 끊어?"
"요리하는 사람이 밀가루를 어떻게 끊어? 엄마는 끊으려구?"
"아니. 밀가루는 도저히 포기 못해."
"라면 때문에?"
"난 라면 안 좋아하잖아. 국수를 좋아하지만 가끔 먹는 거니까 30일이면 끊을 수도 있어. 부침개도 그렇구."
"그럼 뭣 땜에?"
"빵을 못 끊겠어."
그렇다. 내가 밀가루를 포기 못하는 건 빵순이이기 때문이다.
'
와
, 이걸 어떻게 끊어? 보기만 해도 황홀한걸.'
케이크의 알록달록한 색감과 고급스러운 자태는 나를 우아한 귀족으로 만들어주고, 혀에 살살 녹는 생크림 빵은 울적함마저 완벽히 녹아버리는 동화 속 마법이며, 싱싱한 채소와 짭조름한 치즈가 들어가는 샌드위치는 뱃속이 가난할 때 잠시나마 위안이 되어준다.
갓 구운 빵 냄새, 따뜻하고 폭신폭신한 식빵의 촉감. 식빵에 딸기잼만 슥슥 발라 먹어도 맛있고,
우울할 때나 기쁜 일 있을 때 초콜릿이 담뿍 든 빵이나 기분을 업 시키는 케이크면 그만인데.
빵을 못 먹는다고 생각만 해도 몸에서 달달함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빵처럼 달콤하고 말랑 말랑한 몸이 버석버석하고 메말라 생기가 사라진 미이라 같다.
빵 없이 무슨 맛으로 사나. 단 걸 좋아하지 않아 사탕 하나 입에 넣는 법이 없음에도 오로지 빵만은 예외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커피 한 잔이 전부. 아침식사를 안 한 지가 꽤 된 나는 아점 또는 점심, 저녁 두 끼를 먹는다.
아침에 밥을 먹으면 속이 부대껴서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스펀지 같은 이물질이 뱃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듯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가끔 아침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 커피에 곁들여 빵을 먹으면 몸도 가볍고 더부룩하지 않아 마음이 상쾌하다. 그만큼 빵은 오감과 정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순수한 자극제다.
밀가루를 먹지 않으면 몸이 건강해진다고 한다. 그렇지만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
내게 밀가루를 끊는다는 건 다이어트와는 또 다른 문제다.
먹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 데다 군것질도 잘 안 하는 나로서는, 그래도 제일 많이 사 먹는 게 빵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빵집 앞은 지나가다가도 한 번 쳐다보게 된다.
게다가 제일 좋아하는 앙버터빵!
'이걸 못 먹는다는 건 고문이야!'
처음 앙버터빵을 먹어본 후 빵의 신세계를 접했다.
이 요사로운 빵은 무엇인고?
달콤한 팥앙금과 고소한 버터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드는 맛은 천상에서 천사들이 먹는 음식처럼 경이롭다. 부드러운 앙버터를 감싼 빵은 다소 질기고 딱딱한 바게트다(내가 가던 단골집).
'앙버터빵이 나 같네.'
내면은 보드랍고 달달한데 겉보기에 사람이 질기고 딱딱해 보이는 나를 발견한다. 빵에서 사람이 보이고 인생이 보인다.
앙버터빵 맛에 반해 한동안 매일 빵이 나오는 오전 10시를 기다렸다가 사 먹곤 했다.
혹시 시간이 늦어 품절이라도 되면 어찌나 아쉬운지.
"누가 만들었는지 축복합니다! 나는 먹는 걸로 축복받을게요!"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굴까?
빵이면 프랑스? 근데 팥은? 우리나라 사람인가?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궁금증이 요동친다.
https://namu.wiki/w/%EC%95%99%EB%B2%84%ED%84%B0
앙버터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5%99%EB%B2%84%ED%84%B0
최초 개발자가 일본인이란다.
처음 알았다. ㅎㅎ
음
…….
그냥 빵이나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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