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 반.
집 바로 앞에 있는 까치산 공원으로 강아지 산책을 나갔다. 낮엔 덥기도 하고, 이른 저녁엔 사람이 많아서 산책시키기도 편치 않다. 오늘은 이전보다 늦은 시각에 나가 보았다.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놀이터가 있는데 예상대로 아무도 없다. 그 위로 또 계단이 있어 사람들이 트랙을 돌거나 운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김포에서 살 땐 아파트 바로 옆 한옥마을에 늦은 시각에 가면 강아지를 풀어놓을 수 있어서 1시간가량 편하게 놀다 왔다. 강아지도 멀리 가지 않고 부르면 바로 달려왔다.
서울로 이사 온 뒤로는 맘껏 뛰놀 수 있는 곳이 애견카페뿐이다. 얼마 전 강아지를 맡겼다가 혈변을 본 뒤로 애견카페 이용하기도 무서워졌다.
날도 더운데 집안에만 있으니 얼마나 갑갑할까.
잠깐이라도 목줄 없이 뛰어놀게 해주고 싶었다. 놀이터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목줄을 풀었다. 폴짝폴짝. 스트레스라도 풀 듯 헥헥대며 뛰어논다.
잠시 후 계단 위에서 강아지 산책 중인 남자분이 내려왔다. 활달한 우리 집 강아지 '두부'가 킁킁 냄새를 맡으며 다가간다. 얼른 뛰어가 목줄을 다시 채우려는데 날쌔게 도망가는 녀석.
헉!
순식간에 계단 위로 뛰어올라가 버렸다.
"두부야! 나 간다!!"
평소 같으면 '간다' 소리에 허겁지겁 달려왔을 터. 그러나 계단 위로 사라진 녀석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너무 놀라서 계단을 뛰어올라 평상시에 다니던 산책로로 향했다. 강아지는 흔적도 없다. 정신이 아찔하다.
"두부야! 두부야!"
운동하던 사람들이 정신없이 두부를 부르며 뛰어다니는 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강아지를 봤으면 말이라도 해줄 텐데 도통 모르는 눈치다.
이쪽이 아닌가?
혹시 놀이터로 돌아왔나 싶어 왔던 길을 되돌아 뛰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이마에 식은땀이 주룩 흐른다.
'못 찾음 어떡하지?'
누군가 홀라당 안고 가거나 길을 잃고 혼자 어둑한 곳을 헤매는 상상을 하자 걱정의 더께가 어깨를 짓누른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창원에 있는 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부 없어졌어. 어떡해?"
- 뭐? 불러봐.
"불러봤어. 안 보여. 어떡해!"
- 목걸이는 했어?"
"아니. 목걸이 끊어져서 아직 못 구했어."
연락처가 있는 목걸이만 하고 있었어도 걱정이 덜 했으련만. 파는 곳이 없어 몇 번이나 허탕치고는 딸이 주문할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나라도 주문할 것을.
- 아들한테 전화해.
바로 아들한테 전화했다.
"두부 없어졌어. 잠깐 목줄 풀었는데 계단으로 올라가버려서..."
- 목줄을 풀면 안 되지! 돌아다니다 교통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구. 지금 어딘데?
"집 앞에 까치산 공원."
- 기다려. 나갈게.
전화를 끊고 망연자실 서 있는데 제법 큰 덩치의 개를 산책시키던 꼬마가 말을 건다.
"강아지 어떻게 생겼어요?"
"강아지 봤어?"
"아뇨. 보면 알려 드리려구요."
내 통화를 듣던 꼬마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견주들끼리 통하는 느낌이라 무척 위로가 되었다. 트랙을 돌던 남자분도 걸음을 멈추고 우리 얘길 듣고 있다.
"강아지가 빨간 하네스 하고 있어요?"
"맞아요!"
"저 쪽에서 본 거 같은데..."
평상시 다니던 산책로와 반대편. 그곳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강아지 산책을 나온 분들이 꽤 많다. 바삐 눈을 굴려 두부를 찾았다.
'어디 있니, 두부야?'
속이 바짝바짝 타는 그때.
아가씨가 데리고 나온 강아지와 놀고 있는 두부!
"두부야!"
나를 알아본 녀석이 해맑은 얼굴로 달려온다. 그만 다리 힘이 풀려 계단에 주저앉았다.
"야. 너 없어져서 놀랐잖아."
울먹이는 내 손을 할짝대는 녀석. 녀석을 와락 끌어안았다. 눈물이 찔끔찔끔 난다.
"혼자 가면 어떡해.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
내 말을 알아듣는 걸까. 웬일로 얌전히 안겨 있다. 하네스에 다시 목줄을 채우는데 손이 떨린다. 후들거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키니 꼬마가 어느 틈에 따라와 있다.
"고마워."
"제가 한 게 없는데요."
꼬마는 끝까지 의젓하다. 그 순간 나는 꼬마가 되고 꼬마는 어른이 된 기분이다.
"네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꼬마에게 인사하고, 알려주신 남자분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지나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분들 덕분에 강아지를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꼬마가 알은체를 하지 않았더라면, 남자분도 무슨 사연인지 몰랐을 것 아닌가.
두부와 함께 놀이터로 가는데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 두부 찾았어?
"응. 어떤 남자분이 알려줬어."
- 하하하. 다행이다. 자기 목소리 울먹거리는 거 처음 듣는데?
"아, 진짜 식겁했어. 잃어버리는 줄 알고. 식은땀이 줄줄 나."
- 고생했어. 그놈의 자식, 참.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자 아들에게도 얼른 전화해 주었다.
"두부 찾았어."
- 금방 찾았네? 일단 기다려. 올라갈게.
15분이 하루 같던 시간. 긴 악몽이라도 꾼 듯 멍한 정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기다려도 아들은 오지 않고. 다른 길로 가서 헤매나? 퇴근하여 편히 쉬던 아들을 방해한 게 또 미안해진다. 한편으론 아직도 활력이 넘치는 두부를 보니 안도가 된다. 잠깐 잃어버려도 눈앞이 캄캄한데 영영 못 찾음 마음이 어떨까.
강아지를 잃어버리든 자식을 잃어버리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든,,, 사랑을 잃어버린 마음은 아프게 마련이다.
전화가 오기에 받으니 아들이다.
- 어디야?
"놀이터. 넌?"
- 올라가고 있어.
계단 밑을 보니 아들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올라온다.
"그건 뭐야?"
"두부 찾았단 말 듣고 편의점에서 음료수 사 왔지. 목 탈 거 같아서. 이건 두부 거."
두부의 시저 소고기도 사온 아들이 고맙다. 목 탔을 거라 예상하고 음료수를 사 올 생각을 하다니. 세심한 배려에 감탄스러웠다.
목줄을 아들에게 건네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마냥 해맑은 두부를 보자 어이가 없다.
"주인들 속 탄 줄도 모르고 좋아하는 거 봐라, 저거."
아들도 강아지를 찾아서 한시름 놨다 싶은지 투덜대는 소리마저 경쾌하다.
"아이고, 더워."
옷을 훌러덩 벗은 아들의 몸에 땀이 흥건하다. 에어컨을 빵빵 틀고 두부에게는 시저 소고기를, 우린 시원한 음료수를.
"엄마, 빨리 목걸이 사줘야겠다."
"그래야지."
목걸이도 없이 목줄을 풀어놓았으니 할 말이 없다.
시저 소고기를 먹고 난 녀석은 신나게 놀았는지 침대에서 까불대다가 금세 잠이 들었다. 태평한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