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다시 보기'는 없다

여고생의 낙이라곤 드라마 다시 보기뿐

by 날자 이조영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는 학교 앞으로 이사를 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 연애질을 할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남녀공학이 드물었던 80년대. 이성에 관심이 많았던 여고생에게 학교 앞으로의 이사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학교에 오가는 잠깐의 버스도 허락되지 않는 인생은 화사한 꽃길과는 거리가 먼 삭막한 사막이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학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도 덜 깬 부스스한 몰골로 학교에 간다. 거의 1, 2등으로 교실에 도착하면 싸늘한 공기가 나를 맞이한다. 온몸에 달라붙는 적막한 공기를 느낄 때마다 내가 그곳에 와 있는 이유를 몰라 멍해지곤 했다. 지긋지긋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왔지만 새로울 것도 없고 흥미도 없었다. 나는 굳이 좋아하지도 않는 학교에 일찍 와 냄새를 풀풀 풍기며 도시락이나 까먹는 한량에 불과했다.

고 1 신학기 때 아이큐 검사니 국영수 테스트니 집안 경제 조사를 했는데, 우리에겐 자존심 테스트였다. 나는 국영수 시험에서 반 10등인가를 했다. 아이큐는 134가 나왔나?

집안 경제는 당시 아버지가 모 기업 지사장으로 있던 시절이라 괜찮은 편에 속했다. 담임선생님은 부모님에게 학교 운영위원회를 하시면 어떻겠냐고 했다.

'돈 내라고 조사한 거였군!'

나는 학교의 작태에 콧방귀를 뀌었다. 학교가 마치 선량한 학부모에게 삥이나 뜯는 양아치 집단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제안을 거절하면서 운영회비로 5만 원을 봉투에 넣어 주셨다. 나 역시 탐탁지 않은 일이었기에 잘 되었다 싶었다. 이제 막 들어간 학교에 무슨 애정이 있어 돈 내는 일을 맡아서 할까. 학교도 싫고 반항기가 충만했던 나는 집안에 차가 있는지, 있으면 몇 대가 있는지, 가전제품이 뭐가 있는지 일일이 조사하는 설문지가 비인도적이며 불합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딸을 기 죽이지 않으려고 회사 봉고차까지 우리 것인 양 두 대라고 체크했으나, 결국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하고서 생돈 5만 원만 갖다 바친 꼴이었다.




며칠 후 수업을 마치고 청소 검사를 맡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날 보더니 갑자기 들고 있던 막대기로 내 머리를 딱 때리며 말했다.


"니는 머리도 좋은 기 와 공부를 안 하노!"


애들이 보는 데서 다짜고짜 머리를 맞은 것도 기분 나쁜데, 머리 좋은 거랑 공부 안 하는 거랑 연관 지어 혼을 내니 어이가 없었다. 머리가 좋으면 공부를 해야 하는 법이 어디 있나. 밑도 끝도 없는 꾸중에 너무 화가 나서 펑펑 울고 말았다. 선생님은 내가 울지 몰랐던지 몹시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아이들도 어쩔 줄 몰라 선생님 눈치만 보았다.

집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후로 학교와 선생님은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학교가 코 앞이었던지라 지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가까워서 팅팅 부은 얼굴로 등교해 아침부터 친구와 함께 도시락을 까먹었다. 도시락 반찬은 상추, 고추, 쌈장, 김치가 주를 이뤘던 것 같다. 고기가 없어도 싱싱한 상추에 따끈따끈한 밥 싸서 먹으면 그야말로 꿀맛이라 인기가 많았다.

일찌감치 도시락을 까먹고 나면 등교한 아이들로 교실이 반쯤 찬다. 아이들의 관심사는 버스에서 본 남학생이나 전날 방송한 드라마였다.


"조영아, 니 그 드라마 봤나?"

"어."

"내 어제 못 봤다. 얘기 좀 해도."


1984. 5. 12~ 1985. 4.28 mbc 주말드라마 85부작


인터넷이 없던 시절, 나는 전날 본 드라마를 생생하게 이야기해 주곤 했다. 어느새 주변엔 내 얘기에 빠진 아이들로 둥그렇게 모여 있고, 나는 의자가 아닌 책상 위에 올라앉아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때로는 탄식소리로, 때로는 흥미진진한 눈빛이 되어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을 보는 게 그나마 학교 다니는 낙이었다. 무력감에 빠진 나를 구한 게 바로 드라마였다.




인터넷이나 TV로 언제든 다시 보기를 할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인생에는 다시 보기가 없다는 것이다. 인생은 드라마처럼 재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인생에서 딱 한 번 되돌리기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중학교라고 하련다. 반항기만 가득하여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새롭게 살아보고 싶다. 나의 인생 궤도가 바뀐 건 전학을 간 중 2 때였기에, 되돌리기를 했을 땐 부모님을 따라 전학도 가지 않고 중 1 때처럼 친척집에 남을 것이다. 전학을 가기 전의 학교는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전학을 간 학교에서 적응에 실패한 것이 고등학교 때도 이어졌다. 중 2, 중 3, 고1, 무려 3년을 방황하다 고 2 때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공부란 걸 하고 싶어졌는데, 살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고 3 때 그렇게 했어야 하는 건데. ㅎㅎ

고 3이 되자마자 다시 공부와 담을 쌓았고, 나의 고등학교 시절도 별 소득 없이 끝이 났다.

나는 그 시절에 충실하지 못했다. 내 인생을 사랑하지 못했고, 사랑하며 사는 법도 몰랐다.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래서 내 인생을 제대로 설계하고 멋지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을 향한 삐딱한 시선을 거두고,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차곡차곡 행복을 쌓으면서 살 텐데.

내가 놓친 인생의 순간들이 너무나 아까워 가슴이 울렁거릴 때가 있다. 존재만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십 대 시절을 왜 그리도 허무하게 날려버렸을까.

어쩌면 그때의 미안함으로 지금의 나를 다독이고 용기를 북돋는 것인지도 모른다. 넌 존재만으로 아름답다고. 지금 모습으로 충분하다고.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시절의 내게도 이젠 말해줘야 하겠지.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래서 더욱 후회스럽지만, 그때의 네가 어떤 모습이었든 고마웠다고.

너무나 행복하고 싶어서 불행하게 여겼던 삶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행복이 우선이 아니게 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행복은 내 곁에 나란히 서서 내가 가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함께 했다.

인생에서 다시 보기는 없다. 후회해봤자 죄책감도 덜어지지 않는다. 그저 그때의 나를 보듬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돌이킬 수 없기에 매 순간이 배움이고, 배울 수 있기에 감사한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