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키우면 생기는 일
강아지와 사람이 한 공간에?
“엄마, 강아지 키우면 안 돼?”
작년 7월 초, 딸이 또 조르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바로 "안 돼!" 했을 거다. 개와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나의 강한 신념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번엔 바로 '안 돼'가 나오지 않았다. 사고 구조를 바꾸기 위해 '반대로 하기' 훈련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반대로 경험하라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면 훈련을 하나마나잖아.’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Yes’를 하는 게 훈련이다. 결국 나는 승낙을 하고 말았다.
결정한 뒤 가족들이 정말 놀라워했다. 평생 강아지를 못 키울 줄 알았단다. 나는 그렇게 절대 깨질 것 같지 않던 바위 하나를 박살 냈다.
강아지를 키우면 생기는 일
일주일이 지난 7월 8일, 두 달 된 비숑 프리제를 입양했다. 아주 작고 하얀 강아지였다. 까만 눈에 까만 코, 보송보송한 털, 몰랑몰랑한 연분홍색 발바닥.
원래 강아지를 싫어하진 않았다. 집에서 키우는 걸 싫어했을 뿐이다. 강아지를 보자 20대 초반에 키우던 '아롱이' 생각도 나면서 뭔가 가슴이 뭉클했다.
가족이 외출한 사이 할머니가 개장수에게 팔아버렸던 아롱이. 내 손으로 직접 새끼 낳는 것도 받아줬었는데.
가족들이 너무나 예뻐했던 강아지였기에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컸었다.
정드는 게 싫어 다시는 강아지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한 게 그때부터였다. 그런데 딸이 그때의 내 나이가 되고서야 강아지와 또 가족이 되다니 기분이 묘했다.
"엄마, 이름 두부 어때?"
"그래, 털이 하얘서 어울리네."
일이 아니면 집에 틀어박혀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하는 게 전부였다.
두부와 한 집에 살게 된 후로 가족들과 공통된 화제가 생겼고 웃음이 많아졌다. 동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동물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결혼 전에 키웠던 강아지들도 마당에서나 키워봤다. 그때만 해도 집안에서 키운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나의 사고방식은 그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현대의 주거 형태에 맞는 강아지 키우기도 몰랐다. 현재와 맞지 않는 사고방식을 고집함으로써 나는 강아지 한 마리 키울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살았다. 아롱이를 팔아버렸던 할머니 핑계나 대면서 말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의 예전 모습을.
새끼 강아지는 밤마다 낑낑댔다. 울타리 밖으로 나오겠다고 버둥거려서 우리와 있을 땐 울타리도 치워주었다. 강아지는 짧은 다리로 온 거실을 돌아다녔다.
낮에 혼자 두는 게 신경 쓰여서 센터 일이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딸도 걱정이 됐는지 안 쓰는 핸드폰을 켜놓고 출근했다. 다행히 강아지는 혼자 잘 놀았다.
밤이 되면 혼자 거실에서 자는 게 안쓰러워 이불을 덮어주고 엉덩이를 토닥여주고 뽀뽀를 해주었다.
사람들은 내가 강아지를 그렇게 예뻐하는 줄 몰랐다고 한다. 나도 몰랐다. 아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의 예전 모습을.
더불어 사는 삶 속에 어찌 동물이 빠질 수 있겠는가. 귀한 생명인 건 마찬가지인데. 강아지를 다시 키우지 않았으면 영영 몰랐을 동물 사랑. 두부를 만나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있는 것만으로 고맙다.
1년이 지난 지금은 두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아침마다 세수를 시키고 간식을 만들어주고 산책을 시키는 건 내가. 목욕과 털 빗기기, 사료와 패드 값은 딸이. 가끔 애견 카페(12시간)나 호텔(24시간)에 맡기기도 하는데 친구들과도 잘 놀고 너무 활달해서 에너지가 넘치는 녀석이다.
처음엔 소통이 어려워 쩔쩔맸던 나는 점점 나은 보호자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도 힘든 부분은 많지만 두부가 주는 행복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자고 있거나 제 장난감을 입에 물고 와 던지기를 하자고 할 때, 산책 나가기 전 좋아서 오두방정을 떨 때 보면 세상 행복해 보이는 두부.
"두부야. 너도 우리가 좋니?"
얼마 전엔 가족사진도 같이 찍었다. 카메라만 보면 자세를 취하는 녀석이 마냥 신기했다. 두부도 우리가 가족인 걸 아는 거겠지.
근데 있잖아, 두부야...
"성질난다고 소파 손잡이는 물어뜯지 말아 줄래? 소파 하나 버린 걸로 충분하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