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전국 톱을 찍은 남편

그게 다 기도발이야

by 날자 이조영

갑작스레 남편의 직업이 바뀐 지 한 달여가 지났다. 그의 직업은 쿠* 설치 기사다.

12월 19일 토요일이 단독으로 하는 첫날이었다. 초보자는 일을 많이 주지도 않거니와 잘하지도 못해서 익숙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기껏 해봐야 대여섯 군데.

게다가 초보자는 다른 베테랑들이 맡은 지역을 피해 외곽으로 돌게 되어 있었다. 먼 거리를 맡다 보니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고 기름값은 기름값대로 들고.

저녁이 되자 걸려온 남편의 전화.


“자기야, 나 전국 톱 찍었어.”

“엉? 톱을 찍어? 어떻게?”

“원래 첫날은 대여섯 군데 하는 게 정상인데, 오늘 열한 군데를 설치했거든. 00이가 그러는데 그 정도면 전국 톱이래. 하하하.”


전화기 속에서 들리는 남편의 웃음소리가 마냥 신나 있었다. 00은 남편의 친구이자 지점장이었다.


“와우, 진짜 잘했네.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어? 그걸 어떻게 다 했대?”

- 연습 많이 했잖아. 적성에도 잘 맞고.


마음이 찡했다. 시험을 앞두고 남편은 정말 밤늦게까지 연습을 많이 했었다. 기계를 뜯고 붙이고. 손재주가 좋은 남편인지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중년에 갑자기 직업을 바꾸는 게 쉽지만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떨린다던 남편이 신기하면서도 안쓰러웠는데...

본사 집계가 아니면 어떠랴. 내 마음엔 전국 톱인 것을.


- 여보, 저녁 해놨으니까 빨리 와.

이것은 내가 아닌 남편 친구이자 지점장 00이 남편에게 하는 소리다.

지역이 서산이라 남편은 그곳 숙소에서 지낸다. 같은 숙소의 위층에 사는 00는 거의 매일 저녁을 해놓고 기다린다. 다행이었다. 갑자기 직업을 바꿔서 적응하기도 힘들 텐데, 친구가 지점장이니 안심이었다. 아무래도 친구가 옆에 있으니 신경이 덜 쓰인다. 00가 요리를 잘하는 것도 감사했다. 가끔 보내주는 사진을 보면 요리에 진심이구나 싶다.

시댁이 안면도라는 것도 남편에겐 잘된 일이다. 그곳도 관리 지역이라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정기적으로 들어간다. 가끔 시댁에서 점심을 먹기도 한다기에 두루두루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 자기야, 내가 전에 얘기했던가? 불성실하고 컴플레인도 자주 들어온다던 직원 말이야.

“응. 왜?”

- 연락도 없이 출근을 안 해. 며칠 됐어.

“헐. 연락도 안 돼?”

- 응. 관두려나 봐.

“잘됐네. 그전부터 속 썩여서 자르고 싶었다고 하지 않았어?”

- 맞아. 아마 그 직원이 관리하던 곳, 내가 맡을 거 같아.

“오, 진짜?”


그 직원이 맡은 곳은 서산 중심지. 남편이 맡은 지역보다 훨씬 넓고 동선도 짧은 곳이었다. 남편이 입사하자마자 때맞춰 알아서 관둬주는 직원이 어찌나 고맙던지.

“일이 풀리려니 이렇게도 되는구나.”




- 일이 너무 많아서 이젠 하루에 다 못해.


오늘 오전에 남편은 전화로 자랑삼아 얘기했다. 어제만 해도 서른 군데에서 설치 신청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하루에 다 하지 못하니 주말인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예약이 미뤄져 있다고 했다.

“일요일까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안 하던 일 하느라 근육통도 왔다면서.”


계속 돌아다니면서 설치를 해야 하는 통에 남편은 육체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 직원이 갑자기 그렇게 관둔 후로 남편의 할 일은 많아져서 좋지만, 무리해서 건강을 해칠까 봐 걱정이었다.

-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 전에 하던 일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지금은 육체적으로 힘이 들긴 하네.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러겠지. 그래도 쉬엄쉬엄해. 너무 욕심부리다가 몸에 탈 나면 무슨 소용이야.”

- 알았어. 근데 내가 웃기는 얘기, 하나 해줄까?

“뭔데?”

- 그 직원 있잖아. 다시 왔어. 하하하하.

“어머! 그래서?”

- 일 다시 하게 해주면 안 되냐고 사정하는데, 00이가 뭘 믿고 다시 써 주냐고 거절했지. 근데 어디서 뭘 했나 했더니... 친구가 무당이라, 보조해 주면 돈 많이 준다고 갔었대.

“헐. 무당 보조???”

- 굿 한 번 하면 끝날 때까지 3일을 잠도 못 자나 봐. 그래서 못하겠다고 온 거래. 뭔가에 홀렸었다면서. 하하하하. 웃기지?

“아이고, 맙소사.”


멀쩡한 직업 놔두고 무당 보조가 웬 말이람.


- 원래 지금 비수기인데,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홈쇼핑을 많이 하나 봐. 성수기와 다를 게 없다네. 우리 하는 일은 비대면 직업군이랑 무관하기도 하고. 서산도 내가 맡게 됐으니 00이도 앞으로 같이 잘해 보자고 하더라고.

“어떻게 때맞춰서 거기 들어가고, 직원이 알아서 관두고, 초보가 맡기 힘든 중심 지역까지 맡을 수가 있어. 당신 보면 하나님께 감사를 안 할 수가 없다니까.”

- 나도 자기 기도발에 깜짝깜짝 놀라.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서 가다 보면 나의 계획이나 목적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깨닫는 순간과 맞닥뜨리곤 한다. 그때의 전율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 만큼 강렬하고 위대함마저 느껴진다. 인생과 그분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는 순간이다.

삶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때때로 인력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신의 손에 이끌려, 나의 계획과 목적보다 훨씬 나은 자리에 가 있기도 한다. 결국 그 자리는 내가 기도하고 원하던 것이다. 다만, 그 자리에 가는 방법이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기에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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