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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 튀김집

공저로 배우는 글쓰기

글모사 3, 4기

by 날자 이조영

“이를 어째! 입술이 죄다 부르텄잖아.”


몇 달 동안 입가가 부르튼 게 낫지 않더니 급기야 윗입술 양쪽에 물집이 생겼다. 며칠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약을 바르며 얼른 낫기를 빌었지만, 급기야 커다란 딱지가 생겨 볼썽사나웠다.

“아휴, 오늘이 글모사 미팅 있는 날인데 어쩌냐. 하필 이때 주둥이가 이 모양이람.”


울상을 지으며 거울을 본다. 새해 들어 2일 1팩은 꼭 하자고 결심했다. 처지는 피부에 경락도 하고 푸석푸석한 피부에 영양도 주고. 그럼 뭐 하나. 입술이 엉망인데.

궁여지책으로 마스크를 쓴 채 온라인 미팅에 임했다. 첫 만남이 참... ㅜㅜ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입술이 죄다 부르터서요. 첫인상이 중요한데 이미지 보호차원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제가 원래 예쁘게 생겼거든요. 다음에 보여드릴게요.”


괜한 너스레를 떨어가며 그렇게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지난 1월 8일 금요일 밤 10시.

주최자는 스테르담 작가님, 참가자는 나를 포함한 열 명의 작가님. 인원이 많아 글모사(글로 모인 사이) 3, 4기로 나눴는데, 공저 기간은 같으니 동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처음 보는 얼굴들은 낯설었지만 직접 만나지 못한 아쉬움도 컸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그 어느 날 글모사 작가님들이 한 자리에 모일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스테르담 작가님이 같은 말씀을 하신다. 코로나로 가장 급변한 게 인간관계라던 기사가 떠올랐다. 좋으나 싫으나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게 인생사일 텐데, 만남의 제한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도 빼앗아가 버렸다.

밤 10시에 시작한 미팅은 11시 반이 조금 넘어서야 끝이 났다. 다들 걱정이 많았지만, 나는 걱정보단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아 설렘이 더 컸다. 공저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에세이라니.

브런치에서 처음 에세이라는 걸 써보고 에세이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공저가 첫 출간이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물줄기가 흐르도록 입구를 잘 뚫어놨더니 물줄기가 알아서 길을 만드는 형국이랄까. 어떤 모양의 물줄기가 될지, 그 물줄기가 강을 이룰지, 그 강이 더 넓은 바다에 이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인생이 재미있는 건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던가.




각자 제시한 주제어로 4주간 8개 글쓰기



“흠... 이걸 어떻게 쓴다?”

첫 제시어는 ‘새해 목표(소원)’였다.

글쓰기 코치를 하며 수강생들에게 주제어를 찾아 글쓰기도 시켰지만, 막상 내가 하려니 구상하느라 머릿속이 요동을 쳐댔다. 소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늘 해오던 것이기 때문이다. 대단한 목표나 소원을 쓰는 것도 허세일 뿐이고, 그냥 진솔하게 쓰고 싶었다. 다만, 그 진솔함을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구성하여 쓸 것인가가 문제였다.

자칫 뻔한 글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에, 재밌는 상상력을 활용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언제 죽을지 모를 94세의 할머니가 40년 전 새해를 맞은 나에게 쓰는 편지.

이건 NLP에서 쓰던 상상기법이기도 해서 일사천리로 글을 마칠 수 있었다. 이번 글은 NLP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상상력을 가미해 글을 쓰니 새로운 시각으로 나를 볼 수 있어서 그 또한 흥미로웠다. 94세의 할머니가 된 기분... 나쁘지 않았다. 치열한 인생을 살다가 이젠 한없이 여유롭고 자애로운, 인생의 깊이를 통달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글쓰기가 좋은 이유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쓰면서도 마음이 뭉클했다. 94세의 나는 꽤 멋진 할머니였다.




둘째 주의 주제어
연애편지(편지)/인연

'새해목표(소원)'는 쉬웠는데, 이번엔 두 개 다 막막해졌다. 연애편지 또는 편지를 써본 지가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도 그 감성이 잘 살아나질 않는다. '인연'은 더욱 막막하다. 너무 포괄적인 주제여서 이야기 한 토막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두 개 다 고민을 해봐야 할 주제어다.

같은 주제어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공저일수록 개성을 요하기도 한다(개성은 쓰는 즉시 드러나지만).

공저를 하면서 느낀 점은, 공저하길 정말 잘했다는 것이다. 혼자 에세이를 썼더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개성이 돋보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같은 주제라도 어떤 소재를 쓰느냐에 따라, 어떤 문장과 문체를 쓰느냐에 따라, 어떤 통찰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나만의 개성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 그 모든 과정을 쪼개고 쪼개서 좀 더 섬세하고 세밀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글을 쓰면서 고민과 연구를 하게 되자 흥분되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진짜 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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