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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Jan 25. 2021

남편의 생일 날 아이돌 댄스를 춘 아내

부부가 뭐길래


제수씨 몸치네.


그렇다. 나는 몸치다. 운동도 못 하고 춤도 못 춘다. 일단 몸 쓰는 거라면 젬병이다. 그런 내가 남편 생일 선물로 아이돌 댄스를 췄다는 거 아닌가. 빠밤!





- 자기 댄스 동영상 있어?

그저께, 남편이 전화로 물었다. 댄스 동영상이라면, 3년 전인가 찍은 그거?

"찾아봐야 해. 왜? 없어졌어?"

-응. 찾아서 있으면 보내줘. 힘들 때 그거 보면서 웃는 게 낙인데...

웃는 게 낙인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몸치다.

그걸 찍느라 한 달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꼭 찾아서 보내 주리라! 후대에 길이길이 보전해야지, 암!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뒤졌다. 어라? 같은 동영상이 4개나 있네.

동영상을 찍던 날, NG만 몇 번이 났던가. 다 지운  줄 알았는데 이게 왜 있지? 어떤 게 성공한 건지 몰라 하나씩 열어봤다.

"푸하하하하!"

눈물이 쏙, 배꼽이 쏙! 아이고, 진짜 가관이다. NG 난 건 더 웃긴다. 이번엔 꼭 성공하겠다는 결연한 표정, 그러나 곧 순서를 까먹고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거나 거의 끝에 가서 NG가 나는 바람에 짜증 나서 사지를 부르르 떠는 모습이라니. 그날이 생일 전날이라 몸도 아픈 딸에게 찍어 달라 하고는 혼자 생쇼를 했더랬다.

딸이 제일 쉽고 느린 댄스곡이랬는데... 귓구멍으로는 적당한 박자로 들리건만, 몸이 안 따라주는 현실.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허우적대는 팔과 다리, 웨이브와는 거리가 먼 뻣뻣한 몸뚱어리. 몸이 박자를 갖고 노는 게 아니라 박자가 몸을 갖고 놀고 있는 처절한 몸부림의 현장.

유일하게 하나 남은 검은색 A라인 미니스커트를 입으니 짜리몽땅한 몸매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날씬해 보이려고 아래위 검은색으로 통일했지만, 감출 수가 없다. 허리 통짜인 거.

부끄럽구나. 걸스데이야, 미안해!



NG 동영상이 더 대박이다.


"동영상 봤어?"

- 응. 하하하하!

"킥킥. 힐링 되십니까?"

- 그럼.

"근데 그거 NG 영상도 있어. 난 그거 보고 뒤집어졌잖아. 있는지도 몰랐네."

- 어, 진짜? 나도 보내줘.

"기다려 봐."

NG 동영상들을 주르륵 보냈다. 요즘 늦게까지 일하느라 힘든데 스트레스 풀라고. 한바탕 웃고 나면 엔돌핀이 팍팍 솟아나겠지. 얍!   

다음 날 저녁, 남편과 다시 통화했다.

"NG 동영상 어땠어?"

- NG가 더 대박이야. 내가 박장대소하니까 00가 뭐 보냐고 묻길래 보여줬어.

00는 남편의 친구이자 남편 직장의 지점장님이다. 직장이 서산에 있어 숙소 아래윗집에 산다.

"헥! 그걸 보여줬다고?!"

남편의 힐링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른 건 괜찮으나, 친구의 힐링까지 시켜줄 마음은 없소이다만.

"00씨가 뭐래?"

- 제수씨 몸치네, 그러던데?

"킥킥킥."

그래, 00씨까진 용서한다. 고마우니까. 남편 취직도 시켜주고 저녁밥도 해주는데 쪽팔림이 대수랴.

- 00가 부럽대.

"아, 그래?"

하긴, 어느 아내가 남편 생일 선물로 아이돌 댄스를 추겠냐고.

뿌듯했다. 친구도 부러워하는 부부로 살아서.

 



부부가 뭐길래


"엄마가 춤을 췄다고? 엄마 진짜 많이 바뀌었구나."

내가 아이돌 댄스 동영상을 찍는다고 했을 때 남편보다 더 놀라워했던 건 아들이었다.

아내바라기인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생각해낸 아이돌 댄스. 기발한 이벤트를 떠올리곤 나 혼자 감탄했더랬지. 캬아!

"진짜 찍어서 보내면 50만 원 준다."

"5, 50만 원?!"

남편은 진짜로 할 줄 몰랐던지 공약을 걸었고, 나는 집과 센터에서 시간만 나면 댄스 연습을 했다. 12월 말경이면 돌아오는 남편 생일. 겨울엔 면역력이 뚝 떨어져 쉽게 피곤하고 입가가 부르트곤 했다. 그런데 남편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피, 땀, 눈물까진 아니더라도 정말 열심히 연습했었다.

절대 50만 원 때문이 아니다. 믿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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