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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Jan 31. 2021

나의 버킷 리스트, 빙어 낚시

겨울이 유일하게 좋은 이유

빙어 좋아하세요?     


30대 초 서울에 올라와 살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해 첫겨울을 맞았을 때 주변의 지인들에게 물었다.

"빙어 좋아하세요?"

"아뇨. 먹을 줄 몰라요."

"빙어를 못 먹는다구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징그러워서 못 먹어요."

"서울에 빙어를 팔아요?"

충격이었다.

‘빙어가 얼마나 맛있는데, 그걸 못 먹냐.’

‘빙어가 징그럽다고? 그럼 산 낙지는 어떻게 먹지?’

‘서울에 빙어 파는 데가 없어?’

부산에서 살다 와서 서울이 타지인 걸 실감했던 그때. 빙어를 좋아하는 나를 신기하게 보던 서울 사람들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그들 속에 끼지 못한 나는 외톨이가 된 기분에 사로잡혔다. 가뜩이나 마음이 허했던 서울에서의 첫겨울, 빙어를 같이 먹으러 갈 사람이 없어서 더욱 외롭고 쓸쓸했다.



나는 겨울이 싫다.   


일단 몸이 찬 편이어서 추운 건 질색이다. 손도 시리고 발도 시리고 무릎도 시리고 가슴도 시리다. 추우니 옷은 두꺼운 데다 무겁고, 층층이 껴입거나 목도리로 칭칭 두르는 게 갑갑하다.

맨발로 돌아다닐 수 없는 것도 싫다. 두툼한 천으로 된 양말, 발목을 덮는 부츠가 얼마나 피곤한지. 멋쟁이들은 겨울을 좋아한다던가. 그런데 나는 맨발에 슬리퍼를 찍찍 끌고 편하게 동네를 돌아다니지 못하니 불편하기만 하다.

겨울보다 여름이 좋은 이유는 얇은 옷감으로 만든 티 하나, 반바지 하나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벼운 옷차림이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죄다 걷어낸 듯 홀가분한 기분이 들게 한다. 사람 마음도 겨울처럼 시리거나 무거워 움츠러들지 않고 여름처럼 뜨겁고 가벼워 땀 한 방울에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뿐인가. 겨울엔 김이 펄펄 나는 국이나 찌개를 먹어야 먹은 것 같은 기분이다. 속은 뜨끈뜨끈, 등은 따끈따끈해야 겨울을 잘 나고 있는 듯 안심이 된다. 가스 비 아끼느라 보일러 온도에 예민해지는 것도 왠지 궁상맞다.

어느 때인지 모르게 눈이 싫어졌다. 세상을 하얗게 덮는 눈을 볼 땐 잠깐 감상적이 되다가도 어느새 눈 내린 뒤에 질척거리는 거리를 걱정하고 있다. 달콤한 감상보다 쓰디쓴 현실을 먼저 염려하는 게 서글프다. 나이 먹은 티가 팍팍 난다. 나이 들수록 겨울이 싫어진다더니, 정말 그런 걸까?



낚시는 싫지만, 빙어 낚시는 하고 싶어.     


겨울바다, 스키장,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북유럽 여행... 그 어떤 것도 흥미가 당기지 않았다. 추위에 움직여야 하는 것만으로도 귀차니즘 발동이다.

그런데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다. 빙어 낚시.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사느라 바빠 결국 아이들과 해보지 못했고, 아이들이 큰 뒤로도 아직 남아 있는 버킷 리스트.

"빙어 낚시 갈까?"

"추워서 싫어."

서울 토박이인 남편은 낚시를 좋아한다. 낚시를 싫어하는 나는 남편과 한 번도 같이 낚시를 하러 간 적이 없다. 남편에게 낚시하러 가자고 말해 본 건 빙어 낚시가 처음이었다. 추위를 싫어하는 남편은 빙어 낚시만큼은 싫다고 거절했다. 회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빙어도 즐기지 않는다. 기껏 해야 빙어 튀김이다.  

언젠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빙어 튀김을 사 먹은 적이 있었다. 빙어 낚시도 그때 나온 얘기였다. 그날 이후로 다시는 남편에게 빙어 낚시를 가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엔 빙어 낚시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꽁꽁 언 얼음 밑에서 빙어가 사는 것도 신기하고, 빙어가 잡히는 것도 신기하다.

갓 잡아 올린 빙어는 또 얼마나 싱싱할까. 매콤한 초장에 콕콕 찍어 먹어도 좋고, 채소와 함께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어도 좋고, 바삭바삭 튀겨 먹어도 좋고. 빙어 도리뱅뱅도 있다니 먹어보고 싶다.

아아, 상상만 해도 침이 꿀꺽~!

 

빙어 도리뱅뱅

가장 좋은 건, 한겨울 얼음 밑에 사는 빙어를 보면서 느끼는 강한 생명력이다.

삶이 아름답게 내리는 눈이 아니라 질척거리는 눈 쓰레기 같을 때,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뜨거운 여름은커녕 따뜻한 봄도 오지 않을 거 같을 때, 얼음 밑에서 활기차게 살아가는 빙어를 보며 배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남들에겐 인생이 4계절인데 나만 지긋지긋한 겨울 같아도 내 안엔 싱싱하게 살아가는 빙어가 있노라고. 가슴속에서 빙어의 활기찬 생동감을 느끼고 싶어 나는 겨울만 되면 빙어 낚시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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