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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Jan 27. 2021

모든 수식어가 사라질 때

명상




그 '무엇'     



나는 누구인가요?


그 무엇이 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참을 수 없어서 우울증이 왔고 죽고 싶었다.


그 무엇이 되느라 밤낮으로 애썼다. 

건강을 잃었다. 마음이 피폐해졌다. 아무리 애써도 행복하지 않았다.


이젠 그 무엇이 된 거 같았다.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얼굴은 흉측해지고 척추가 뒤틀린 채 비틀비틀 세상을 걸었다. 그러고는 내가 사는 세상은 왜 이렇게 괴물 같냐고 비난하고 한탄했다.


그 무엇을 잃어갈 때가 있었다. 

불안했지만 괜찮은 척했다. 앞으론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버텼다. 그럴수록 외롭고 슬펐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울고 싶지 않았다. 약한 내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남들이 그런 나를 보고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판단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다 문득 방치하고 있었던 나를 만났다. 

어둠 한편에 우두커니 선 외롭고 슬픔에 잠긴 나를 발견했을 때에야 바윗돌처럼 주렁주렁 달린 수식어들이 보였다. 그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고 괜찮은 척 버티고 있는 내가 보였다.

괴물처럼 일그러진 나의 실체와 맞닥뜨린 순간, 충격과 아픔에 왈칵 눈물이 터졌다. 엉엉,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득한 울음이 쏟아졌다. 무지함이 낳은 비극에 참을 수 없는 설움이 전신을 휘감았다. 나의 영혼이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것도     



나에게 붙은 수식어를 빼기 시작했다.


아내, 엄마, 딸, 작가, NLP 트레이너, 이름, 나이, 키, 몸무게...
생김새, 손가락과 발가락, 좋아하던 사람들, 좋아하던 것들, 그 무엇이든.


껍데기를 벗듯 하나씩.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도 않고 내면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을 때까지 하나씩, 하나씩.

주변마저 완벽히 사라진 그 순간, 나는 나라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그때야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비로소 나는 내가 되었구나.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 우주의 본질이었던 그 무엇으로 돌아갔구나.

나는 나다. 나는 나다. 나는... 나이기에 그 무엇이 될 수 있다. 그 무엇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나는 또한 그 무엇이다.      



자유의 숫자, 0   



세상이라는 허상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삶. 너무 손아귀에 쥐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많은 걸 내려놨다고, 욕심 없이 산다고 믿었던 착각도 깨끗이 버렸다.

내 생각, 내 기준, 내 가치가 전부 바윗돌이자 착각이었다. 나를 짓누르는, 그래서 한 발도 내딛지 못하게 만드는 그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긴장으로 뻐근하던 어깨가 가벼워졌다. 느닷없이 찾아오던 불안과 심장의 두근거림도 사라졌다. 괴물처럼 비틀려 있던 척추가 바로 펴졌다. 어둡던 마음의 불이 켜지고, 숨겨져 있던 본성이 살아났다. 밝고 뜨거운 에너지가 온몸에서 퍼져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그렇게 새로운 나를 만났다.      



세상이라는 현실


허상 좇다가 현실을 놓치는 삶.

보이지도 않는 그 무엇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 나의 세상을 만난다. 손으로 만져지고 보이고 들리는 것들, 그 실존 속에서 나는 나로 산다. 너무 먼 곳에 있는 허상을 잡으려 애쓰지 않고 내 앞에 있는 소소한 삶에 감사하며 산다.

나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 미래 때문에 오늘을 망치는 어리석은 짓도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나는 영원을 사는 것이다.

 


자유로운 세상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 게 일생이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쓴다. 그 ‘무엇’이 내가 ‘누구’인지를 정해준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닐 수도, 그 무엇일 수도 있기에 나는 자유롭다. 아무것이 아니어도 괜찮고, 그 무엇이어도 괜찮기에 자유롭다.

인생은 나의 선택에 의한 것.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나는 그런 나를 사랑한다.

사랑은 자유로울 때 진실하다.      



명상

1.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하며 마음을 정돈한다.
2. 나의 존재를 느낀다.
3. 내게 붙은 수식어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 하나씩 제거될 때마다 어떤 느낌인지 충분히 느낀다.
4. 나의 이름도 제거한다. 내 존재도 사라진다.
(투명인간 느낌으로, 또는 우주와 하나가 된 기분)
5. 충분히 느꼈다면 천천히 눈을 뜬다.
6. 피드백
- 처음과 달라진 부분은 무엇인가?
- 지금 기분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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