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은 나의 최애 드라마

죽은 남자의 금반지

by 날자 이조영
나는 나를 지키는 수사반장이다.

70년대 부산 초량 판자촌


국민학교 1학년, 서울에서 살다가 부산 초량으로 이사를 왔다.

초량은 부산역 건너편에 있었는데, 산동네인 그곳 어딘가가 우리 집이었다.

곡예를 하듯 버스가 오르내리는 고가도로.

고르지 못한 골목길과 높다란 층계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집과 길의 경계가 모호한 현관문.

낮은 지붕과 비가 오면 소리가 엄청나던 슬레이트 지붕.

마당을 같이 쓰던 다세대 주택이 대부분이었던 가난한 동네.

일곱 살 때 서울에서 국민학교 1년을 가입학하여 다녔던 나는 부산에서 정식 입학을 했다.

글자, 숫자 다 알고 똑똑하니 엄마가 교장 선생님한테 벅벅 우겨서 가입학을 시켰다는 말에 기가 찼었다. 웃기게도 그때 기억은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사실 정식 입학을 한 뒤에도 기억나는 일은 없었다.

딱 하나! 지금 할 얘기만 빼고.



그날 아침은 날씨가 매우 상쾌했다. 따뜻하거나 쌀쌀한 날씨가 아니었던 걸로 봐선 10월쯤이었던 것 같다.

다른 날처럼 책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를 들고서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저만치에서 경찰들과 몇몇 어른들이 둘러서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지?’


아침부터 경찰들을 보자 나도 모르게 걸음걸이가 느려졌다.

무심코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을 때 경찰들 다리 사이로 무언가가 보였다. 덮어놓은 거적 아래로 보이는 남자의 팔이었다.


‘사람이 죽었구나!’


골목길에서 거적으로 덮어놓은 걸 보니 살해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뜩 겁을 먹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 옆을 지나갔다.

동네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던 경찰관들 사이로 남자의 팔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손가락에 낀 금반지를 보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24k처럼 진한 색깔에 두꺼운 모양의 금반지였다.



'살해당했다면 금반지는 왜 그대로 있지? 강도가 아닌가?'


어린 마음에도 그게 너무 수상쩍었다.

학교에 늦을까 봐 경찰들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학교에 가서도 종일 죽은 아저씨의 금반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체를 치운 뒤였다. 물론, 경찰들도 없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그 얘기를 했지만, 엄마도 자세한 사정을 몰랐다.

답답증만 잔뜩 안은 채 시간은 흘렀고, 내 뇌리에는 죽은 아저씨의 금반지만 또렷하게 남아 버렸다.


집에 처음 TV가 생긴 후로 나는 수사물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71년 3월 6일부터 89년 10월 11일까지 방송됐던 전설의 드라마 ‘수사반장’.

인기 드라마인 ‘수사반장’은 완전히 막이 내릴 때까지 나의 최애 프로그램이었다.

굉장히 독특하고 임팩트 있던 오프닝 음악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http://blog.naver.com/bom131123/221159998955



드라마에서 범인을 보며 분개했고, 못 잡을 땐 마치 내가 형사나 된 듯 안타까웠다.

그리고 마침내 잡게 되는 순간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수사반장이 실화극이었기에 몰입도는 더욱 상당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아침에 봤던 광경은 내게 큰 트라우마였다.

왜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범인은 잡았는지, 그 동네는 안전한지, 범인이 골목을 돌아다니며 다음 대상을 물색하는 건 아닌지...

그런데 나이가 어려서 그 많은 궁금증을 해결 받지 못한 채 세월만 흘러갔던 것이다.



첫 충격의 경험은, 나를 겁이 많은 아이로 만들었다.

그날 아침에 본 끔찍한 광경보다 더한 삶을 살아내느라 겁에 질려 조그만 일에도 바들거리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의 삶은 타인의 죽음보다 끔찍했고, 얼굴도 모르는 범인이 늘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를 지키는 수사반장이 되어주었어야 하는데 오랫동안 그러지 못했다. 쓰러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며 깊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움츠리고 있던 내게 물었다.


"넌 하고 싶은 게 뭐야?"

"난 꿈을 이루고 싶어. 작가가 되는 거 말이야."


그 질문을 통해 나는 너무너무 지쳐서 잊고만 있었던 내 꿈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어! 너 거기 아직도 있었구나. 몰랐어. 미안해."


나를 끌어안고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토닥토닥. 힘들었던 마음이 꿈 하나로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우선 연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연재? 그런 게 있어?"


눈이 번쩍 뜨였다.

사실 컴퓨터를 할 줄도 몰랐다. 친구에게 배워서 일주일 동안 매일처럼 타자연습만 했다.

어느 정도 자판이 손에 익자 처박아두었던 습작노트를 꺼냈다.

대학시절부터 틈틈이 썼던 노트. 버리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연재하는 곳을 찾아서 연재작들을 신나게 읽었다.

1999년 PC 통신 시절 나우누리에 '엽기적인 그녀(견우74, 김호식님)'가 연재되던 그 즈음이었다.


"와아, 어떻게 이런 글을 쓰지?"


제목부터 기발했던 '엽기적인 그녀'는 후에 대히트를 쳤다.


"나도 내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입김 한 번 후- 불어넣었던 꿈이 점점 풍선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부푼 꿈을 안고 드디어 시작한 연재.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던 그때.

치열했던 순간들이 모여 어느덧 16년차 로맨스 소설 작가가 되었다. 그 사이 두 번의 드라마 계약과 한 번의 드라마 방송을 이뤄냈다.



이제는 도전하는 일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전처럼 부딪치고 깨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용감해졌고 자신감이 생겼다.

내 삶을 갉아먹는 범인을 단호히 잡아내는 수사반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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