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두통약

보검아, 넌 아니야

by 날자 이조영

나는 콜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최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다. 톡 쏘는 탄산 때문에 콧구멍이 찡해지며 저절로 진저리가 쳐지는 맛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이 콜라를 왜 좋아하는 거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에겐 어렸을 때부터 최애 음료수가 있다. 시커먼 콜라와 달리 색마저 달콤한 그것은...!





부산으로 이사 가기 전 성남에서 살 때로 기억한다. 주워온 신문지로 흙벽에 덕지덕지 바르고 창호지로 된 방문이 있던 허름한 집. 저녁을 먹고 난 뒤 언덕배기에 있던 집 앞에 나오면 까만 하늘에 총총 박인 별빛 사이로 달님이 뽀얀 얼굴을 드러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매일 저녁 달님과 마주 보며 줄넘기를 했다.

100개가 200개가 되고, 300개, 400개...

점점 개수가 늘어가던 어느 날, 너무 무리를 했던지 두통이 심했다.


"엄마, 머리 아파요."


집에 들어가 거의 울듯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영아 아빠, 야 머리 아프답니다."


방에 누워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 밖에 나가셨던 아빠가 무언가를 사들고 오셨다.


"영아, 이거 마셔봐. 머리 아픈 거 싹 나을 거야."



아빠가 내미신 건 바로 갸름한 유리병에 든 영롱한 주황빛의 환타였다.


"이게 뭐예요?"


처음 환타를 본 나는 색깔이 마음에 쏙 들었다. 아빠가 컵에 환타를 따라 주었다. 꿀꺽꿀꺽. 환타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마법처럼 두통이 싹 사라졌다.


'우와아~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달달하면서도 청량하고 시원한 맛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콜라 한 번 먹었다가 질색했던 나는 충격적으로 맛있는 환타의 매력에 폭 빠져 들고 말았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음료수 종류도 많지 않았지만 가난해서 간식 하나 사 먹기도 어려울 때였다. 환타도 내겐 호사로운 음료였다.


'환타 먹고 싶다.'


그날 이후 저녁마다 줄넘기를 하면서 중독자처럼 어떻게 하면 또 환타를 먹을지 궁리에 빠졌다.

500개, 600개, 700개...


"영아, 그만하고 들어와!"


엄마가 몇 번 재촉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숨을 헐떡이며 집으로 들어갔다.


"아으, 머리 아파."

"줄넘기를 너무 많이 하니까 그렇지."


엄마가 나를 나무랐다. 줄넘기를 많이 해서인지 환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어쨌거나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팠다.


"약 먹을래?"

"아니요."

"머리 아프다며?"

"..."


대꾸도 않고 시무룩하게 누웠다. 덕지덕지 붙였던 신문지가 색이 바래 노랗게 변해 있었다. 글자 공부하던 신문지가 너무 꼴 보기 싫었다.


"영아 아빠, 신문지 새로 붙여야겠어요."

"알았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많던 시절이라 실은 얼마나 가난을 체감하였는지는 모르겠다. 환타나 바나나는 부잣집 사람들만 먹는 줄 알고 컸으니까.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환타를 마음껏 사 먹을 수 없다는 건 무척 슬펐다.


"영아, 이거 먹어봐."

"앗! 환타다."


밖에 나갔다 오신 아빠가 내게 환타를 내밀었다. 신문지를 주우러 가신 줄 알았더니 환타를 사러 간 거였다.


"지난번에 환타 먹고 머리 아픈 거 싹 나았지? 영아한텐 이게 두통약이야. 하하."

"헤헤."


아빠에게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꿀꺽꿀꺽.

캬아!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그 후에도 환타가 먹고 싶을 때면 머리 아프단 핑계를 댔다.


"... 997. 998, 999, 1000!"


줄넘기 천 개를 돌파하던 그 순간,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곱 살짜리가 매일 달밤에 줄넘기를 했으니 머리가 아플 만도 했으리라. 머리가 아프려고 기를 쓰고 줄넘기를 한 건지 줄넘기 개수가 느는 게 재밌어서 한 건지. ㅎㅎ




이듬해 부산으로 이사 온 후로도 나의 환타 사랑은 지극했다. 음료수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다양한 음료수가 나오고 캔이 나온 후에도 자주 사서 마시는 게 환타였으니.


지금은 이 중에서 최애가 바뀌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환타를 먹다가 문득 맛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다른 음료수들에 입맛이 혼탁해진 걸까?

환타의 맛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건 묘한 슬픔이었다.

정말 달라진 건 나일까 환타일까...

세월의 흐름 속에 더 이상 머리 아픈 핑계를 대지 않고도 사 먹을 수 있게 된 환타는 나의 오랜 친구였다. 친구와 결별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을 때의 씁쓸함.

색소 맛만 나는 환타와는 더 이상 절친이 될 수 없었다. 서로가 퇴색해버린 우리의 우정은 점점 소원해졌다. 나의 최애는 바뀌었지만, 환타처럼 두통도 싹 가시게 만드는 마법의 음료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옛 추억이 떠올라 일부러 환타를 사 먹을 때가 있다. 물감을 마시는 듯 진한 색소 맛은 실망스럽지만, 환타를 마실 때마다 성남의 그 높은 언덕 위의 신문지 집과 줄넘기와 두통약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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