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와 별똥별

별을 닮은 꿈을 꾸다

by 날자 이조영


별을 닮은 꿈, 그 길을 외할머니와 걷다


서울에서 살다가 국민학교를 입학하던 해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외가가 서울이어서 한동안 몹시 그리움 속에 살았던 모양이다.

방학이 되면 나는 서울 외가에 놀러 가고 싶어 안달을 했다.

큰 이모와 막내 이모, 외삼촌, 외할머니, 왕할머니, 3남 1녀인 큰 이모네 식구들까지 한 집에서 살았을 때였다.

늘 북적대던 외갓집은 내게 너무나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국민학교 2학년 여름방학.

유독 그해를 기억한다.

‘사’가 성을 가진 외할머니의 고향은 파주 월롱이다.

외갓집에 가면 꼭 한 번은 들르는 그곳.

지금은 도로가 잘 만들어져서 쉽게 갈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버스가 드물게 다니던 시절이었다.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가야 하는 곳.

동네 어귀에 내리면 족히 한 시간은 걸어야 마을로 갈 수 있었다.

여름엔 그나마 괜찮은데 겨울에 눈이라도 많이 내리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다.

발목까지 오는 털 부츠 안으로 눈이 들어와 발이 꽁꽁 얼고는 했다.

너무 춥고 발이 시려도 외할머니와 사촌오빠랑 걷는 그 눈길이 정말 정말 좋았다.




아홉 살이던 그해 여름, 외할머니는 나와 사촌오빠 손을 양쪽에 잡고서 깜깜한 논길을 걸었다.

마른 체격의 외할머니는 걸음도 날렵했다. 늘 부지런하던 외할머니여서 걸음걸이도 그런가 싶었다.

나는 밤길을 따라 걷느라 아무것도 안 보이는 땅만 쳐다봤다.

불빛 하나 없는 길이었다.

외할머니는 어린 손자, 손녀의 눈이 되어 주셨다. 그런 외할머니가 원더우먼처럼 든든하고 멋져 보였다.

귀를 찌르는 풀벌레 소리, 바람에 사르락 거리는 풀잎, 간혹 어디선가 우는 새소리, 그리고 도란도란 우리의 이야기 소리만 오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무심코 고개를 들었던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앞이 확 트인 논. 그 위로 도화지처럼 까만 하늘에 흩뿌려진 하얀 별 가루.

매일 밤 제자리에서 규칙적으로 반짝이던 별들이 아니었다.

설탕가루를 아무렇게나 뿌려놓은 것처럼 휘황찬란했다.

은하수.


“어어! 별똥별이다!”

놀랍게도 별똥별이 하나, 둘 또렷하게 포물선을 그렸다.

서울과 부산에서 살면서 수도 없이 보던 하늘, 그리고 간간이 볼 수 있었던 별똥별.

그러나 그날 파주 월롱에서 본 시골 하늘은 우주의 신비를 보는 것처럼 신비롭고 황홀했다.

일순 모든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풀벌레 소리가 사라지고 선선하던 바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감각은 사라지고 별을 보는 시각만 온전히 살아 있던 그 순간.

기묘한 감각 속에 완전히 푹 잠겨 피부가 전율을 일으켰다.

두근두근 가슴이 설레고, 속에서 홧홧 열이 올랐다.

그때가 나의 감수성이 최고조에 올랐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냥 보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너무나 아쉽고 아까워 발을 동동 구르듯 그때의 장면을 꼭꼭 기억해둔 걸 보면.




그날 이후 나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보고 겪은 세상을 글로 쓰고 싶은 꿈이 어린 마음에 자리 잡았다.

백설 공주, 신데렐라, 개구리 왕자, 헨젤과 그레텔, 왕자와 거지…….

책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고전과 외국 동화책을 전집으로 사주셨다.

그리고 나는 동화책을 읽고 글짓기를 하고 일기 쓰는 걸 놀이처럼 했었다.

그게 밑바탕이 된 데다 그날 밤에 본 은하수와 별똥별이 내 속에서 영글어가던 꿈을 톡 터뜨려준 셈이었다.

작가의 길을 걸으며 근근이 버틸 때마다 그날 보았던 밤하늘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별 가루가 쏟아질 것 같은 논길을 가로질러 너른 마당이 있던 친척집에 도착했을 때.

고생했다며 친척 아주머니가 대청마루에 동그란 밥상을 놓고 저녁을 차려주셨다.

시골이라 찬이 없다면서 보리밥과 함께 텃밭에서 딴 풋고추와 된장, 김치, 나물 몇 가지를 내주셨다.

상을 싹 훑어보시던 외할머니.


“큰 그릇이랑 고추장이랑 참기름 내와 봐.”


친척 아주머니는 금방 알아듣고는 부엌으로 가서 큰 양푼 그릇과 고추장이 든 작은 보시기, 참기름을 병째 내오셨다.

외할머니는 양푼 그릇에다 보리밥과 나물,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볐다.

“우리 집 고추장 엄청 맛있어.”


친척 아주머니가 웃으며 고추장 자랑을 하셨다.

외할머니가 비벼준 비빔밥은 대청마루에 매달린 노란 전구 아래에서도 맛깔나게 빛이 났다.

사촌오빠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빨리 비벼지기를 기다렸다.

꽤 늦은 시각이라 배가 엄청 고팠다.

“아이고, 맛있겠다. 어서 먹어. 배고프지?”


외할머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때깔 나는 비빔밥을 푹 떠서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고추장 맛과 나물 맛, 입안을 돌돌 굴러다니는 보리 밥알이 한데 엉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다!

무슨 나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입맛 돋우는 쌉싸름한 맛과 짭조름한 고추장 맛에 진한 참기름이 뒤섞이니, 소박하기만 하던 저녁상이 9첩 반상이 부럽지 않다.

게다가 보리밥의 구수한 맛과 데굴데굴 혀를 간질이다 꼭꼭 씹으면 톡톡 터지는 식감은 쌀밥과는 다르게 씹는 재미가 있다.

이 환상적인 조합은 여태껏 먹어본 비빔밥 중에 최고였다!




셋이 앉아 말도 없이 비빔밥을 허겁지겁 먹던 추억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남아 있다.

오랫동안 식당을 하셨던 외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뛰어나시다. 웬만한 건 집에서 해 먹는다.

만두피와 만둣속 양이 딱 맞아떨어지는 만두, 산에서 직접 주워다 몇 시간이고 저어서 만든 도토리묵.

이 두 가지는 특히 외할머니가 잘하시는 것이다.

둘째를 낳을 때 일하는 엄마 대신 산바라지를 하러 김해까지 와 주셨던 외할머니.

미역국을 싫어하는 산모 때문에 돼지족을 사다가 끓이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그런데 외할머니 하면 나는 그해 여름의 비빔밥이 먼저 떠오른다.

은하수와 별똥별 덕분인지, 허기진 저녁밥이라 그랬는지...

등이 꼿꼿하고 걸음도 날래던 외할머니는 이제 아흔이 넘으셨다. 지금의 내 나이 때 이미 할머니가 되셨던 거다.

작년,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들른 후로 한동안 찾아뵙지 못했는데 요즘 따라 자꾸 보고 싶다.

살아 계실 때 자주 찾아뵈어야지, 하면서도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소홀했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처음 꾸게 되었던 그 여름, 밤하늘 아래.

내 꿈의 시작을 외할머니와 함께 걸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제야 깨닫는 못난 손녀.

“할머니, 곧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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