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배신자!

내 병아리 어디 갔어?

by 날자 이조영




국민학교 6학년. 그때만 해도 학교 앞에 병아리를 팔았다.

삐약삐약.

하교 길에 들리는 병아리 소리는 여지없이 아이들 발걸음을 붙잡는다.

보들보들한 노란 털에 까만 눈이 콕 박힌 병아리들에게 홀려 구경 삼매경에 빠지다 보면 5~10마리는 사게 되어 있었다.

키우다 죽이는 일이 허다했는데도 병아리만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죽고 나면 또 사기를 반복. 병아리를 안 죽이고 키우는 게 친구들끼리 경쟁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많은 병아리 중에서 건강한 병아리를 고르는 건 복권처럼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우와, 귀엽다."


다신 안 키워야지, 하던 결심은 어디 가고 또다시 도전 욕구가 치솟은 나는 부리나케 엄마가 하는 미용실로 달음박질쳤다.


"엄마, 병아리 사게 돈 좀!"

"또?!"


엄마는 탐탁지 않아하면서도 주머니를 뒤져 돈을 꺼내 준다.(한 마리에 20원이었는지 50원이었는지 가물가물)

다시 병아리 장수에게 뛰어가서 신중하게 열 마리를 골라 집으로 데려온다. 이미 몇 번 키워본지라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게 높이가 좀 있는 박스 안에 신문지를 깔고 그릇에 물과 좁쌀을 담아 구석에 놓아준다.

노란 털북숭이들이 쉴 새 없이 삐약대며 물과 좁쌀을 쪼아 먹는 모습은 볼 때마다 진풍경이다.

일곱 살, 여덟 살이던 남동생들도 병아리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만지면 부러질 것 같아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고 고사리 같은 손끝으로 조심조심 쓰다듬는다.


"히힛. 이뿌다."

"살살 만지라. 죽는다."


동생들은 병아리가 죽을 때마다 울고불고 난리를 쳤기에 이번만큼은 닭이 될 때까지 크기를 바랐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지만, 솔직히 기대감은 없었다.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들은 어차피 오래 살지 못했다. 더러 열 마리 중 한두 마리가 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행운이 내게 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미 몇 차례 실패했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다.

병아리의 생사는 일주일이 고비다. 며칠 동안은 쌩쌩하던 놈들도 일주일쯤 지나면 꾸벅꾸벅 졸다가 맥없이 죽어버렸다. 그때마다 동생들은 눈물바람으로 병아리를 묻어주겠다고 나를 성가시게 했다.

그런데 아홉 마리가 죽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한 마리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아이구, 기특해라."


나는 어느덧 중닭이 되어버린 녀석을 무지 예뻐했다. 노란 털은 삐죽삐죽한 하얀 닭털로 변해가고, 동글동글 귀엽던 얼굴도 살짝 반항심 있어봬는 청소년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나 그마저도 내겐 신통방통하기만 했으니.

병아리 티를 완전히 벗어버린 녀석은 결코 예쁘지 않은 외모로 미용실을 총총 뛰어다녔다. 집에 두었다가 잘못될까 봐 엄마가 미용실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그 덕에 녀석은 손님들 사이에서 유명인사였다.




이보다 좀 더 컸다.


그날도 어김없이 수업이 마치자마자 미용실에 들렀다. 녀석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헌데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닭 대가리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를 알아보고 쪼르르 달려오던 녀석이었다.


"엄마, 병아리는?"

"어?"


엄마의 어색한 웃음.


"병아리 와 안 보이는데?"

"어, 그게…… 죽었다."

"뭐?"


죽. 었. 다. 고?

믿을 수 없었다. 아침만 해도 멀쩡했는데 갑자기 왜!

갑작스러운 죽음에 나는 황당하고 서운하고 속상했다. 그동안 정들었던 건 어쩌고 인사도 없이 횡 떠나버리는지.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쩌다?"

"노란 고무줄을 묵으가. 그기 목에 걸렸는갑드라. 일하느라 모르고 있었는데 손님이 얘기해줘서 알았다. 구석에 처박혀 죽어 있는데, 아유, 너무너무 속상해가 혼났다. 그게 얼마나 이뻤노."

"……."


집에 놔두지 왜 데려와서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병아리는 어떻게 했는데?"

"묻어줄 데도 없고 신문지에 싸서 버렸지 뭐."

"힝~"


시무룩해져 집으로 돌아왔다.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녀석이 없으니 집이 허전했다. 동생들도 심심하다며 녀석을 그리워했다.

병아리에서 중닭이 되자 큰 닭이 될 수도 있겠다며 가족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내 병아리. 친구들이 내 병아리를 보며 부러워할 때마다 그게 다 내가 보는 눈이 있어서고, 행운이 내 것이 될 수도 있음에 으쓱하기도 했다.

그러나 끝까지 내 곁에 머물러 있지 않은 행운, 내 병아리.

허무하게 행운은 사라지고 또다시 실패했다는 좌절감에 씁쓸하고 자신감이 발바닥까지 하락했다. 내 잘못이라기 보단 노란 고무줄 때문이었지만, 그때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있었으면 묻어줬을 긴데.'


녀석을 내 손으로 묻어주지 못한 것도 너무나 아쉬웠다. 마지막 배웅은 그래도 내 손으로 해주는 게 도리일 텐데. 병아리야, 미안.




병아리의 죽음이 큰 충격이었는지 나는 초저녁 잠이 깊이 들었다. 엄마가 왔는지도 모르고 자고 있다가 밥 먹으란 동생의 소리에 부스스 일어났다.

안방으로 가니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밥상 앞에 앉았다.

잠시 후 부엌에서 엄마가 냄비를 들고 들어왔다.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찌른 것과 동시에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이 냄새는……? 설마…….'


가족이 둘러앉은 밥상 한가운데 문제의 냄비가 올려졌다.

엄마가 뚜껑을 열었을 때.




냄비 안에는 크기도 애매한 닭 한 마리가 덩그러니 들어 있었다. 영계도 아니고 대계도 아닌 중계.

순간 잠이 홀딱 달아났다.

으악! 이, 이건!!!


"엄마, 아니재?"

"아이다. 그거는 버렸다."


엄마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고 얼버무렸다. 아빠도 아무 말 없이 냄비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저 미소.

나는 냄비 안에 알몸으로 드러누워 있는 게 내 병아리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필 병아리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오늘, 굳이 삼계탕을 해먹을 리 없었다.

게다가 입이 다섯 개다. 이걸 누구 코에 붙이나!


"병아리 버린 거 아니재?"


씩씩대며 집요한 추궁이 시작되자 엄마는 금방 백기를 들었다.


"니가 안 먹을까 봐 그랬지."

"치. 내 보고는 잔인하다꼬 뭐라 하드만. 엄마는 더하네. 키우던 걸 잡아먹나?"


엄마는 내가 시장에서 닭털 뽑는 걸 구경하거나, 장어 껍데기 벗기는 걸 구경할 때마다 잔인하게 그런 걸 보고 있냐며 면박을 줬다. 게다가 병아리를 엄청 예뻐했다. 중닭이 되어가면서부터는 지렁이도 잡아 먹였던가.


'배신자!'


애지중지 키우던 걸 어떻게 잡아먹을 생각을 하는지!

엄마 말에 내가 정말 잔인한가 고민했던 게 억울하고 분했다.

그리고 먹이려면 다른 닭도 같이 사서 위장이라도 하든가. 딱 봐도 내 병아리인 게 티가 팍팍 나는 한 마리만 덜렁 끓일 건 뭐람.

센스없는 엄마가 또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니는 안 먹을 거가?"


엄마는 양도 적은데 입 하나 덜었다는 투였다. 그 사이 내 병아리, 아니 삼계탕은 조각조각 나서 아빠와 동생들 앞접시에 덜어진 상태였다.

나는 눈을 희번덕 떴다.


"먹을 거다!"


그것마저 안 먹으면 더 억울할 것 같았다.

벌써 시식을 하신 아빠는 우물거리며 감탄했다.


"히야. 육질이 진짜 야들야들하다."

'와아, 저게 할 말이가? 어른들은 너무 잔인하다.'


나는 어른들의 세계가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동생들도 먹고 있는 게 그 병아리인지 뭔지도 모르는 얼굴로 먹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아, 이런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내가 불쌍타.'


신세한탄을 한 나는 비위가 상해 인상을 찡그리며 고기를 입에 넣었다.


'응? 맛있는데?'


연한 살코기가 입에서 살살 녹았다.


'희한하네.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게눈 감추듯 앞접시를 비운 나는 얼마 남지도 않은 닭고기를 냉큼 가져왔다. 냠냠, 쩝쩝. 세상에 이런 맛은 처음이야!


"사먹는 닭보다 더 맛있네."

"하여간 잔인하다니까."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나를 놀렸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다섯 식구가 먹기엔 한참 모자란 삼계탕을 아쉬워하며 금세 고민에 빠졌다.


'다음에 병아리 고를 땐 더 잘 보고 사야지.'


행운은 도전하는 사람에게 오는 법!

그 후로도 병아리가 대계가 되는 그날까지 나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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