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을 못한다. 국민학교 때부터 제일 싫은 시간이 체육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국어와 미술. 과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거니와 대항이니 경주니 해서 긴장감과 경쟁심을 유발하는 게 너무 싫었다.
1년 중 큰 행사인 가을 운동회. 애들이나 어른이나 그날이 되면 소풍 가듯 먹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돗자리 챙겨 학교 오는 게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가 되면 풀이 죽는다. 그놈의 100미터 달리기 때문이었다. 달리기를 해서 1, 2, 3등만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고 공책 선물도 나눠주는 게 영 배알이 꼬인다.
나는 4등! 5등, 6등도 아니고 꼭 4등이다.
3등까지는 대기줄에 가서 앉아 기다리고, 나머지는 탈락. 엄마가 기다리는 돗자리로 돌아간다. 털레털레 돌아오는 나를 보자마자 엄마는 타박부터 했다.
"아이고, 쪼매만 더 빨리 뛰지. 니는 와 뛰기만 하모 4등이고!"
가뜩이나 속상하고 열 받는데 엄마 때문에 더 화딱지가 난다. 가을 운동회 때 제일 부러운 게 뭐냐면 손등에 찍는 도장이었다. 그거 한 번 찍혀 보는 게 소원인데 망할 운동신경이 뜻대로 되질 않는다.
나는 왜 이렇게 운동을 못하는 걸까.
3등 한 번 해보겠다고 죽어라 뛴 게 억울하고 짜증 난다. 등수에도 못 들 거, 대충 뛸걸. 기가 팍 죽어 김밥이고 삶은 밤이고 먹고 싶은 마음은 쏙 사라지고, 청명한 가을 하늘에 나부끼는 만국기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결국 국민학교 6년 내내 손등에 도장 한 번 못 받아보고 졸업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초. 전교생이 체육대회를 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빙 둘러 각반이 배정되면, 우리 반 애들은 응원단장을 뽑고 응원가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여러 국민학교에서 온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렸지만, 숫기가 없는 나는 내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으면 좋겠는데 명색이 체육대회이니 만큼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너무너무 싫은 달리기 시간이 온 것이다.
반끼리 6명씩 한 조로 서 있는데 너무 스트레스였다. 아직 낯선 애들에게 운동 실력이 들통나는 게 싫고, 뜬금없이 체육대회를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출발선에 서서 총소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몇 초 동안의 긴장감은 더 싫다. 쿵쾅쿵쾅. 심장이 너무 뛰어서 멈춰버릴 것 같다. 국민학교 땐 손등에 도장 찍고 공책 받는 맛이라도 있지, 중학생한테 무슨 짓이람…….
탕!
총소리가 나자마자 자동으로 몸이 튕겨져 나간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온다. 시큰둥해하던 나는 어느새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어라? 이게 웬 일? 내 앞에 아무도 없잖아.'
바로 앞의 3등을 아슬아슬하게 뒤쳐져서 쫓아가는 게 아니라 맨 앞에서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와아아아아. 이런 기분이구나!'
몸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너무 빨라서 다리가 내 것이 아닌 듯 느껴진다.미친듯한 함성소리는 사라지고 그 큰 운동장에 나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기분이다. 그 순간, 나는 완벽한 주인공이었다.
곧 결승점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의 테이프.
'기다려라. 1등이 가신다!'
당당하게 결승 테이프를 끊은 나는 올림픽 금메달이 부럽지 않다.
'엄마, 나 1등 먹었어!'
이 모습을 엄마가 봤어야 하는 건데. 가을 운동회가 아닌 게 너무 원통하다.
상기된 얼굴로 우리 반으로 돌아오자 애들이 난리가 났다.
"잘했다, 잘했다!"
"니 진짜 잘 뛰더라~ 다리가 안 보이대."
"오오, 니 체육에 소질 있는갑다."
낯설어서 말도 아직 못 튼 아이들이 흥분하여 입이 마르게 칭찬한다. 우쭐해진 나는 아무 말 없이 싱긋이 웃기만 했다.
'니들이 내를 몰라가 그라재.'
처음 달리기 1등을 한 걸 알면 다들 기함할 텐데.
"반 대표 뽑아야 된다. 누가 할래?"
반장 말에 반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이조영!"
그때의 기분이라니.
모두가 나를 우러러보는 것에 빠져 어깨에 잔뜩 뽕이 들어갔다.
'오늘 컨디션 최상이다. 내친김에 또 뛰어보는 기지 뭐.'
괜히 몸을 풀며 선수 코스프레까지.
생애 처음 달리기 1등도 모자라 반 대표로 뽑혔다. 결승전에서 1등은 못해도 이 기쁜 소식을 엄마에게 전해야 했다. 다시는 4등만 한단 소리 못하게.
오늘이야 말로 치욕스러운 꼬리표를 떼고야 말리라!
한 학년에 12반이나 있던 시절이었다.
반 대표는 총 12명. 6명씩 두 팀으로 나누어 3등까지 준결승 통과. 결승전에 올라가려면 나는 기필코 3등 안에 들어야 했다.
비장한 각오로 출발선에 섰다. 양 옆에 선 애들을 보니 키도 크고 팔다리가 길쭉길쭉한 게 '체육인' 관상을 타고났다. 물론 다리가 길다고 잘 뛰란 법은 없었다. 진짜 다크호스는 작은 키에 다부진 인상의 여학생이었다.잠깐 반 애들한테 들은 정보로는 국민학교 때 육상 대표선수였단다. 다들 그 애가 1등을 할 거라며 나한텐 결승전만 가자고 응원해주었다.
마의 3등을 기필코 넘어서겠다는 의지는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을 보자마자 자신감이 급하락. 공포의 총소리를 기다리는 몇 초 동안 왜 대표로 나왔던가 후회가 몰려오는데…….
탕!
좀 전 다리가 안 보이도록 잘 뛰던 내 다리가 맞나?
총소리와 동시에 튀어나간 경쟁자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몸이 솜뭉치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 마음 따로 몸 따로. 큰 운동장을 가득 메운 함성소리가 나를 향한 야유로 들렸다.
100미터는 왜 이리 먼 걸까.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지만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헉헉!"
몸이 이토록 극과 극일 수 있다니. 턱까지 찬 호흡과 안쓰럽게 허우적대는 팔다리가 야속하기만 했다.
아슬아슬한 4등도 아닌 꼴등. 만년 4등일 때보다 더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1등은 국민학교 육상대표였다는 밤톨처럼 야무진 가시나. 1등으로 들어오고도 거친 숨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생글생글 웃으며 여유만만한 그 애를 보자 좌절감은 더욱 커졌다.
토마토처럼 붉어진 얼굴로 터벅터벅 우리 반 자리로 걸어오는데 예선전 때와 달리 썰렁한 반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배신감과 황당한 표정을 숨길 줄 모르는 반 아이들을 보자 울적했다.
'1등으로 만족이 안 되드나?'
애들이 추천했을 때 나는 겸손히 사양했어야 했다. 운이 좋게 1등을 한 것뿐이라며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다. 순간의 분위기에 휩쓸려 설마 꼴등이야 하겠냐고 자만한 내가 한심했다.
소심해서 잘 나서지도 않던 애가 왜 그랬을까.
욕심을 부려 처참하게 1등에서 꼴등으로 추락한 나는 민망해하며 반 아이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내 자리는 저 운동장이 아닌 바로 여기, 응원석이었던 것을. 네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앞으로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모양이었다.
"야. 내는 딴 사람인 줄 알았다. 쪼매만 더 빨리 뛰지."
'에효. 그게 마음처럼 쉬우면 내가 꼴등을 했겠냐.'
나는 체육이 너무너무 싫다.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그날 이후로 더욱 싫어졌다. 예쁘지 않은 체육복도 싫고,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것도 싫고, 피구 경기에서 공에 맞기 싫어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것도 싫고, 악착같이 나만 노리는 운동 잘하는 애도 싫고, 달리기를 할 때면 빨리 못 뛴다고 야단치는 체육선생님도 싫었다.
'체육 과목은 없어졌음 좋겠다!'
그 후로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달리기로 1등을 해본 적은 없었다. 욕심부리다 망신당한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엄마한테도 1등 한 얘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얘기를 꺼내면 꼴등한 얘기도 해야 할 테니까. 엄마에게 난 만년 4등으로 기억되는 게 차라리 나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