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를 세운 사람을 쓰시오

나의 이름

by 날자 이조영

이조영. 난 내 이름이 싫었다. 원래 이름은 소영인데, 친할머니가 출생신고를 할 때 한자를 잘못 적었다나 뭐라나. 졸지에 '밝을 소'가 '빛날 조'가 되었다. 어렸을 때에야 한자의 뜻 같은 걸 알게 뭐람. 일단 '소영'과 '조영'의 어감 차이가 너무 난다. '소영'은 발랄하고 명랑한 느낌이라면, '조영'은 애 이름 같지 않게 진지하고 무겁다.

가족들도 아직 나를 '소영'이라 부른다. 나도 그 이름이 더 친숙하고 정겹다. '조영'이란 이름은 주민등록상 이름, 대외적으로만 사용해서 몸에 착 달라붙지 않는다.

지금 이 나이까지도 이름에 대한 애정이 없으니 어렸을 땐 오죽했으랴. 이름도 낯설고 싫은데 놀림을 받는 날엔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다.


"이름이 뭐야?"

"이조영이요."

"조... 뭐라구? 용?"

"영이요. 조. 영!"


드문 이름이긴 해서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이 없고 재차 확인하는 건 지금도 그렇다. 들을 때 '영'인지 '용'인지 헷갈리나 보다.

국민학교 때 남자애들은 걸핏하면 "조영아, 조용히 해라."로 놀리곤 했다. 짓궂은 애들은 칠판에다 낙서처럼 써놓았다.

떠드는 아이, 아래 내 이름을 장난으로 적고는 저희들끼리 키득거렸다.

그때마다 한자를 잘못 쓴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여중에 가면 괜찮을 줄 알았다. 중학생이 되고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낯선 아이들 틈에서 존재감 없이 지내던 어느 날. 화장실에 갔다가 교실로 들어오니 칠판에 커다랗게 쓴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조영아, 조용히 해라.'


그걸 쓴 아이는 우리 반 반장이었나 부반장이었나 그랬다. 충격이었다. 그 아이는 꽤 인기가 많았고, 나 또한 그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그 아이가 하필 내 이름으로 놀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순간 친구가 될 꿈은 날아가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이름 지옥'에 빠졌다는 암울함과 억울함에 펑펑 울고 말았다.

국민학교 때도 놀림을 받을지언정 울만큼 지질하진 않았는데, 그날은 정말 분통해서 살 수가 없었다. 가벼운 장난이라고 생각했을 그 아이와, 같이 까르르 웃었던 애들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다.


"미안하다, 조영아."


아무리 사과해도 속상함과 창피함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내 이름을 돌려도!'


나는 내 이름이 싫었다. 평생 쓸 이름을 실수로 잘못 지은 할머니도 미웠다.



예전엔 집집마다 두꺼운 전화번호부 책이 있었다. 놀림을 받았던 그날 전화번호부 책을 뒤져 이상한 이름을 찾았다. 나처럼 억울한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특이한 이름이 정말 많았다. 지금 기억나는 이름 중 최고는 '쌍년'.

그 이름을 보자마자 받은 충격이란!

어떻게 사람 이름을 욕으로 지을 수 있는지 놀랍고 기가 막혔다.


"이래 무식한 부모가 다 있나!!"


그 많은 예쁜 이름 놔두고 애 이름을 이렇게 짓고 싶을까!

그 옛날엔 이름을 하찮게 지어야 오래 산다 하여 '개똥이'라고도 지었다지만, 욕 이름은 너무하지 않나.

얼굴도 모르는 '쌍년 씨'를 대신해 욕을 바가지로 해주었다.

쌍년에 비하면 내 이름은 너무 고급스러워서 울었던 게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다지 위안은 되지 않았다. 분통하고 억울한 건 쌍년이나 나나.

학교도 가기 싫고, 그깟 이름 한번 놀렸다고 펑펑 울었던 것도 창피했다. 그냥 쿨하게 웃어넘기지 못한 나 자신도 한심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울적해서 애들이랑 말도 안 하고 꽁해 있었다. 날 놀렸던 애랑은 눈도 안 마주쳤다.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마음도 사라졌고, 학교 생활도 시큰둥해진 나는 외톨이를 자처했다. 이름을 바꾸지 않는 한, 언제라도 애들의 놀림감이나 될 터였다. 밝고 명랑한 소영이로 살게 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빛나긴커녕 다크 조영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첫 중간고사를 앞둔 국사시간이었다. 시험에 나올 중요한 문제들을 집어주시던 쌤.


"발해를 세운 사람, 주관식으로 꼭 나온다이~ 이래 콕 집어 갈차줘도 틀리마 알재! 오, 맞다. 이 반에 이조영이라고 있재?"


헐. 저 쌤은 또 내 이름을 어찌 아는지. 난 그저 무존재 그 자체인 아이였는데.


"이조영! 자 이름만 기억해라. 한 명이라도 틀리마 이조영, 니 책임이다."


헉! 와, 씨이~

뭐 이런 시베리아 허스키 같은 경우가 다 있는지!

왜 우리 반 애들 시험을 내가 책임져야 해?

가뜩이나 이름 때문에 열 받는데, 시험 문제 답 제공도 모자라서 책임도 지라구!!

어이가 없었다.


'쳇! 틀리든가 말든가.'


다크 조영은 한껏 비뚤어진 마음에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더랬다.




대망의 중간고사가 끝나고 국사시간.

쌤이 씩 웃으며 들어오셨다.


"이 반은 대조영 틀린 사람 아무도 없대."

"우리 반엔 이조영이 있자나예~"


누군가의 말에 모두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나도 속으로 피식 웃었다. 진짜 한 명도 안 틀렸다니 신통방통한 것들~


'다 내 덕분인 줄 알어.'


내가 국사를 좋아하게 된 게 그때부터였던가?ㅎㅎ

그리고 웬수같던 내 이름도 아주 조금은 자부심 비슷한 것이 강아지 발톱만큼 올라왔다. 발해를 세운 사람 이름도 대조영인 걸 보면 범상치 않은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 '관상'


왕이 될 인물이라면 이름도 남다르겠지.

뭐 그런 위로를 스스로 했던 것 같다. 왕은 아니더라도 작가가 꿈이었던 나는, 작가 이름으로 '이소영' 보단 '이조영'이 더 어울리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작가는 어른이 된 후에나 가능했으니 예민한 10대에겐 까마득히 먼 얘기였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첫 책을 받았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책을 낼 때 본명으로 할지 필명으로 할지 정하는데, 실은 꽤 오래 고민했다. '이조영'으로 할지 '이소영'으로 할지.

아직도 낯설기만 한 '이조영'으로 결정했을 때에도 마음이 시원하지 않았다. 과연 내가 이 이름을 걸고 계속 작가 활동을 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을뿐더러, 내 이름을 좋아할 날이 올지도 의문이었다. 싫건 좋건 운명처럼 엮이는 불편한 관계처럼.




날자 이조영.

브런치에서 새로이 시작하면서 내 이름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날개를 단 이름은 활기가 넘치고 자유로운 이미지로 변모했다. 비로소 나의 양 어깨에 솟아난 날개처럼 든든한 느낌이었다.

어려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이름. 나조차도 싫어했던 이름. 할머니를 미워하게 만들었던 이름은 이제야 비로소 나의 날개가 되었다.

내 이름을 푸대접했던 오랜 세월. 좋거나 싫거나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본다.

나라는 존재를 알리는 이름 석 자.

그동안 나의 이름으로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죽는 그날까지 그 이름으로 살 텐데 싫어해서 미안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미워하고 싫어했던 이름 석 자도 이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가만히 내 이름 부르며 어깨를 쓰다듬는다.


사랑한다, 이조영.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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