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집 외동아들 뺨 때리고 생긴 TV

손가락이 잘'못'했네

by 날자 이조영

오후 5시쯤 TV에서 방송이 시작되면 나는 막냇동생을 업고 마당으로 나간다.

아홉 살이면 70년대니 TV가 귀할 때였다.

큰 마당 하나를 두고 주인집을 중심으로 여러 세대가 살던 집.

나는 주인집 거실 창문 너머로 TV를 몰래 훔쳐봤다.

등에 업은 동생이 낑낑거리는 걸 달래가며,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1시간가량 창밖에서 고개를 빼고 보던 TV.

자존심이 뭔지도 모르던 나이였으니 오로지 TV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주인집 창을 기웃댔다.

창문을 닫아 소리도 안 들리는데 작은 상자에서 연신 움직이는 화면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거실에서는 중학생이던 주인집 외동아들이 혼자 다리를 길게 뻗고 벽에 기대앉아 TV를 봤다.

이따금 창밖의 시선을 느낀 오빠가 고개를 홱 돌려 쳐다볼 때면, 빼꼼 고개만 내밀어 훔쳐보던 나는 마주친 눈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오빠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모른 척 다시 TV를 봤다.

보지 말라고 안 하는 게 어딘지.

나는 안도하며 거실에서 편히 TV를 보는 주인집 아들을 너무너무 부러워했다.


'우리 집은 언제 TV 생기노?'


언감생심 TV뿐만 아니라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부잣집에나 있는 것들이었다.

재래식 부엌에 냉장고 대신 찬장을 쓰고 세탁기 없이 집 근처 냇가에 가서 빨래를 하던 시절이었다.

곤로를 처음 집에 들였을 때 엄마가 좋아하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연탄불에 밥을 해 먹었으니 곤로만 있어도 엄청난 발전이었다.

연탄불 하나에 밥 하고 찌개나 국을 끓이려면 시간도 많이 걸렸다.

곤로가 생긴 뒤로 불이 두 개나 되어 엄마는 무척 편하다 했다.

그랬으니 우리 형편에 TV 사자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었다.


"거기서 TV 보지 말라 캤재. 내일부턴 보지 마라."


엄마는 1시간 내내 동생을 업고 TV를 훔쳐보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밥상 앞에서 핀잔했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시며 묵묵히 얘기만 듣고 계셨다.

아버지마저 보지 말라고 불호령을 내리면 큰일이기에 얼른 대답했다.


"안 보께요."


대답은 철석같이 해놓고 다음날이면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어느 틈엔가 주인집 거실 창 안으로 넋 놓고 TV를 보고 있는 나.

TV는 어린 나를 유혹하는 마법의 상자였다.





일요일이면 주인집 아저씨는 아버지들만 불러모아 점심을 먹으며 함께 TV를 봤다.

다세대라 마당을 같이 쓴다는 이유로 친했던 이웃들이었다.

나는 그때도 창 밖에 서서 아버지들이 보고 있는 TV에 정신이 팔렸다.

편히 앉아 가까이에서 TV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창문이 닫혀 제대로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거리가 멀어 그림이 선명하지도 않은 게 정말 답답했다.

주인집 아저씨가 내게도 집안에 들어와 TV를 보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싶어 야속한 마음만 울컥울컥.

동네에 부자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가난해도 서럽진 않았다. 그런데 TV가 없는 것 하나만큼은 너무나 속상했다.




아버지에게 들키면 혼이 날까봐 몰래몰래 훔쳐보던 어느 일요일.

아버지들이 TV를 보고 계신데 주인집 아들이 예의 없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게 아닌가.

주인집 아저씨가 몇 번 주의를 주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채널은 계속 돌아갔다.

창밖에서 보기에도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점점 얼음장처럼 변해가는 게 느껴졌고, 아버지들 중 그 누구도 말을 못 하는 그때.

호랑이 같던 아버지가 주인집 아들을 야단쳤다.

주인집 아들이 맹랑하게 대드는 게 보였다.

아버지가 그 오빠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고, 몇 마디 더 대드는 바람에 뺨을 때린 것까지 순식간에 벌어졌다.

다들 놀란 상황에 그걸 보고 있던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에휴. 다신 TV 못 보겠네.'


TV 때문에 주인집 아들 뺨을 때려버렸으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내게로 돌아올 것 같았다.

아버지 말도 안 듣고 어른한테도 대드는 주인집 아들이 뺨 때린 아저씨 딸을 곱게 봐줄 턱이 없었다.

어깨에 힘이 쭉 빠진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집에 오신 아버지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그래도 주인집 아들인데 뺨을 때리면 우짜노?'


나는 아버지의 불같은 성질에 TV를 못 보게 된 게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다.


"여보, 와 그랍니꺼? 뭔 일이에요?"


주인집에서 있었던 일을 알 리 없는 엄마는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린 노무 자슥이 감히 어른들 보는데 채널을 지멋대로 돌린다 아이가. 지 아부지가 몇 번이나 하지 말라 캤는데 말을 안 듣는기라."

"갸가 외동이 되나가 싸가지가 읎어예. 지 아부지한테 맨날 혼나도 말 안 듣는다꼬 지 엄마가 그라드마는."

"버르장머리 고칠라꼬 델꼬 나올라 캤는데 계속 반항인기라, 나도 모르게 욱해가 뺨따구 때맀다."

"에!! 뺨을요?"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아버지는 결연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우리도 TV 사자."

"아이고, 그라입시더. 영아가 창밖에서 TV 보는 거 알면서도 한 번을 들어오란 소리도 안 하드라. 그노무 자슥, 언젠가 한번 혼쭐 날 줄 알았다. 근데 갸 아부지가 암말도 안 합디꺼?"

"잘했다 카드라."

"그 양반은 사람도 좋고 인심이 됐는데 아들 하나 있는 기 와 그라는지. 쯧쯧."


하지만 나는 주인집 아들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덕분에 우리 집에도 최신식 TV가 생겼으니 말이다.

브라운 색 박스에 문이 달려 고급스러운 디자인.

문을 열면 TV가 보이는데 주인집 것보다 훨씬 좋은 제품이었다.

무너진 자존심에 TV를 질러버린 부모님이 너무나 멋졌다.





골목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도 5시쯤 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온다.


"엄마, 애들이 우리 집에서 TV 봐도 되나 묻는데요. 오라 캐도 돼요?"

"다들 오라 캐라."


골목에서 같이 놀던 오빠, 언니, 동생들까지 포함이라, 방안은 금세 아이들로 가득 찼다.

다들 키순으로 줄 맞춰 앉아 TV에 흠뻑 빠져들던 그 시간.

엄마는 우리에게 설탕 뿌린 누룽지를 간식으로 내주었고, 우리는 누룽지를 하나씩 입에 물고 아드득 아드득 씹어 먹으면서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앞자리의 누군가가 자세가 불편해 무릎이라도 펼 때면 뒷자리의 언니, 오빠들이 득달같이 나무라곤 했다.

지지리 말 안 듣던 아이들도 TV 앞에선 얌전해졌다.

그리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주인집 아들도 아버지만 보면 순한 양이 되었다.





세입자가 주인집 아들의 뺨을 때려도 잘했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철 모르는 아들과 너그러운 주인집 아저씨를 생각하니, 점점 각박해지는 요즘 세대가 안타깝다.

싸가지 없던 주인집 아들 덕에 TV가 생겼고, TV를 뛰어넘어 IT 세상으로 바뀐 지도 오래.

그리고 코로나 덕에 또다시 새로운 언택트 시대를 맞고 있다.

사람 간의 거리에 따라 세상도 변해가는 듯하다.

어른이 어른 노릇을 할 수 없게 된 시대.

내 아이만 귀한 시대가 된 것도 사람 간의 거리감이 예전 같지 않아서일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거리 유지를 하고 만남도 자제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또 얼마나 사람들과 멀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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