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통닭 심부름을 갔던 날

내가 먹을 닭은 내가 고른다

by 날자 이조영
치킨 프랜차이즈가 없던 시절,
우리에겐 시장 표 통닭뿐이었다.


부산 동래에서 살던 78년도, 국민학교 4학년쯤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엄마가 처음으로 통닭을 튀겨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시장 한 구석에 자리한 허름한 닭집은 부부가 함께 영업을 했다.


“아저씨, 통닭 한 마리 튀가 주이소.”

“따라 온나.”


가게 뒤편으로 아저씨를 쫄래쫄래 따라가자 철망이 쳐진 나무 닭장이 보인다.


대략 요 정도?


‘뭐꼬? 통닭 달라카이 여긴 뭐 한다꼬 데불고 오노?’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내게 아저씨는 무심한 투로 툭 말을 던진다.


“골라봐라.”


"저 말입니까?"


내가 튀길 닭을 직접 고르는,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꼬꼬꼬, 꼬꼬꼬.”


철망 사이로 뾰족한 부리를 쉴 새 없이 내미는 닭들을 매의 눈으로 훑는다.


‘어느 놈이 좀 더 클라나?’


상단부터 하단까지 쭉 살피다가, 결국 눈앞에 있는 놈을 검지로 콕 가리킨다.


“요걸로 주이소.”


아저씨는 익숙한 손으로 닭장 안에서 -내가 고른 그놈이 확실한지 모르겠지만- 닭 날개를 잡고 꺼낸다.


“가게 드가가 기다리래이.”


아저씨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게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간다.

아까 들어올 때 보니 가게 앞쪽에 은색의 둥그런 통 하나가 있는데 그게 뭔지 몹시 궁금하다.


초기 모델은 아닌 듯



‘뭐 하는 통이고?’


요리 보고 조리 보아도 도통 알 수가 없다.

잠시 후 아저씨가 뜨거운 물에 씻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은 닭을 거꾸로 덜렁덜렁 들고 온다.

내가 보고 있던 통 안에 닭을 넣자 ‘위이잉!’ 소리와 함께 ‘푸덕 푸덕’ 둔탁한 소리도 들린다.

그러더니 통 아래쪽에서 털이 몽땅 빠진 닭을 꺼낸다.

닭털 뽑는 기계를 처음 본 나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와!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대통령 표창장 주야 된데이.’


내게는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아저씨는 생닭을 커다란 나무 도마에 턱 올려놓는다.

도마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줌마는 네모 난 칼을 들어 탁탁, 정확하게 토막을 낸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쓰고 또 써서 밀가루 반죽이 덕지덕지 붙은 양은그릇에다 밀가루 툭, 소금 툭, 후추 툭.

쳐다보지도 않고 손대중으로 넣어 물과 함께 휘휘 젓는 전문가의 포스에 나는 압도당해 버린다.


‘억수로 멋있데이! 내도 아줌마처럼 낸중에 멋있는 어른이 될 끼다.’


그때부터 나의 롤 모델은 닭집 아줌마처럼 포스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거대한 기름 가마솥이 있었다.

반죽 닭을 넣자마자 ‘촤아아아!’ 기름 끓는 소리가 가게 안에 울려 퍼진다.

곧이어 닭 익는 냄새도 고소하게 후각을 자극한다. 절로 군침이 돈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닭을 커다란 채에 건져 몇 번 툭툭 쳐서 기름을 뺀다.

누런 봉투 안에 통닭을 넣고 두꺼운 종이를 접어 만든 소금을 챙겨 까만 비닐봉지 안에 담아준다.


“뚜껑 닫으마 눅눅해지가 맛 없데이.”

“예~ 잘 먹을께예!”


통닭이 눅눅해지거나 식을까 봐 전속력으로 집으로 달려간다.

집에 가면 상에다 누런 봉투를 북북 찢어서 가족들이 둘러앉는다.

다리는 아버지와 큰 남동생에게 하나씩 돌아간다. 엄마와 나는 날개 하나씩. 막내 남동생은 통닭만으로도 신이 나서 뭘 줘도 맛있어한다.

맏이라고 모가지는 내 몫이다. 닭 모가지 하나에 맏이 대접 받는 기분이 꽤 우쭐하다.

가난했던 우리 가족은 가끔 그렇게 통닭의 호사를 누리곤 했다.




나의 첫 통닭 체험기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의 시장 풍경, 닭장의 당황스러움, 신중했던 닭 고르기, 진귀한 구경거리였던 닭털 뽑는 기계, 아줌마의 멋진 포스, 기름 가마솥에서 닭 튀겨지는 소리, 빨리 먹고 싶어 안달 나게 하던 고소한 냄새...

어느 날 치킨 프랜차이즈가 등장하더니 시장 표 통닭은 자연스럽게 잊혀져 갔다.

프랜차이즈가 성황하고 생닭 전문회사가 나오자 직접 닭을 고르는 일도 사라졌다.

배달문화의 발달로 사러 가는 수고로움도 덜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치킨 문화도 바뀌었지만, 가끔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처음 만나고 경험한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걸 볼 때 나의 삶도 듬성듬성 잡초처럼 뽑히는 느낌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내 삶도 죄다 뽑혀서 나중엔 털 하나 남지 않는 볼품없는 생닭 신세가 될까 봐 끔찍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전부 경험해본 나로서는 이제 글로밖에 그 시절을 남길 방법이 없다.

장롱 위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내 인생의 낡은 상자를 꺼낸다. 먼지가 쌓인 뚜껑을 열고 상자 안을 들여다보면 반짝거리던 무수한 순간들이 담겨 있다.

세 살 때 처음 바나나를 먹고 온몸에 짜릿함을 느꼈던 순간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살해당한 남자를 봤던 날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던 순간

아버지에게 처음 맞았던 날

처음 TV가 생겼을 때

그렇게 많은 별들과 별똥별을 처음 봤을 때

내가 쓴 시가 뽑혀서 처음으로 반 복도에 걸렸을 때

운동회 때 4등만 해서 속상해하던 내가 처음 1등을 했던 날

첫 생리를 했을 때

처음 러브레터를 받았을 때

첫 키스를 했을 때

처음 최루탄을 맞았을 때

처음 연극무대에 섰을 때

처음 혼자 여행 갔을 때

첫 프러포즈의 순간

첫 직장에 들어갔던 날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처음으로 쫄딱 망했을 때

첫 책이 나왔을 때

처음 방송국에 갔을 때

처음 성형외과를 갔을 때

처음 외국여행을 갔을 때

아들을 두 번 군대에 보낸 엄마가 됐을 때

처음 집안에서 강아지를 키웠던 날


살면서 처음 경험했던 일이 너무나 많다는 걸 깨닫는 순간, 더 이상은 상자를 장롱 위에 처박아두기 싫었다.

생각해 보면 매순간이 내겐 첫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첫 경험의 순간들은 끊임없이 찾아올 터.

닭장 속 닭을 고르듯, 자, 이제는 꺼내서 맛있게 튀겨보자!

닭집 아줌마처럼 포스 있게, 툭툭 반죽 만들어 휘휘 저어서 기름 가마솥에 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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