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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Feb 13. 2022

에필로그 : 삶과 조금 더 가까워졌습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솔루션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

나도 예전엔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에 온통 마음이 갔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고, 그러려면 유명해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성공의 척도란 이 세상에 이름 석 자 정도는 알리고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공기처럼 살다 가는 게 꿈이 되었다.

무형, 무취, 무색의 공기.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으나, 어디에든 있고 누구에게든 꼭 필요한 존재.

사람이 발 디디고 사는 이 땅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공기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기에 공기는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내가 내쉬는 호흡, 숨소리, 따뜻하거나 시원한 공기.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나를 느낄 때의 기분.

나를 어루만질 때의 부드러운 감촉,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매만질 때의 뜨거워지는 감정.

눈부신 햇살에 저절로 감기는 눈꺼풀, 감미롭게 부르는 무명가수의 노랫소리, 힘차게 발을 내디딜 때의 에너지. 그 모든 것은 나를 에워싼 공기가 있기에 받는 삶의 특혜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는 유형의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애쓰고 또는 강요받는다. 인간은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무와 무 사이의 유를 창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느낄 때 가장 힘겹고,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열심히 삶의 의미를 찾는다.


어느 날 문득, 내 어깨에 잔뜩 짊어진 의미의 무게를 느꼈다. 모든 것에 의미를 두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삶이 너무나 덧없어졌다. 삶의 의미부여는 스스로 과도한 목표를 주고 해내야 한다고 억압하는 것이었다. 사람을 만나도 재미있거나 유익하거나 나만의 뚜렷한 의미가 있어야 하고, 산책을 해도 건강을 위해서인지 기분전환을 위해서인지 갖가지 의미가 붙여야 움직인다. 밥을 먹어도 ‘먹어야 사니까.’ 등의 이유를 붙여서 억지로 한 끼 때우거나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라며 건강식을 정성껏 차린다.


우리는 어렸을 땐 착하게, 또는 예의 바르게 자라기를 강요받았고,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해서 대학 가는 게 인생의 성공인 양 세뇌 당했다. 직장에서는 월급충이 되지 않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나름의 이유를 붙여 스트레스를 받아도 견디며 살아간다.

모든 삶의 의미가 나의 정체성이냐. 그건 아니다.

삶의 의미를 덕지덕지 붙여서라도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은 몸부림이다. 나에게 삶의 의미를 찾는 행위는 그런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둔치로 머리를   맞은  같은 충격을 받은 나는  이상 의미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날 이후 공기처럼 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죽고 싶어졌다.


세상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후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기를 쓰고 삶의 의미를 못 찾아 안달이었던 걸까.

무의미한 짓을 일삼으면서 의미 있게 산다고 착각했다.


어깨에 잔뜩 짊어졌던 삶의 의미들을 내던져버렸다. 삶의 무게를 던져버리자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저 오늘 하루, 내가 딛는 땅의 에너지를 느끼고, 뺨에 와 닿는 차가운 공기를 느끼고, 꼬르륵거리는 배고픔을 느끼면 먹는다. 심리코칭이나 글쓰기코칭도 내가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웠기에 나누는 것이다. 목적과 목표는 있으나, 예전처럼 과도하게 힘을 싣지는 않는다. 늘 진지하고 심각하던 삶에서 가볍고 경쾌한 삶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사유할 줄 아는 존재이다. 그러나 깊은 사유가 삶을 대변해주진 않는다. 삶은 훨씬 더 원초적이다. 그 원초적인 것을 무시한 채 머릿속에 생각만 가득차서는 나의 실체를 느끼기가 어렵다.

살아 있다는 건 문장 하나로 귀결되는 의미에 있지 않다. 내가 하는 경험에 있다. 살아 있는 경험 속에서 통찰도 생겨난다. 진한 경험 속에서 생겨난 가치와 통찰이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린다.

그러니 우리 제대로 살아보자.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고, 내 몸 안에 도는 에너지를 느끼고, 웃고 싶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깔깔 웃고, 울고 싶을 때 눈치 보지 말고 엉엉 울자.

갖은 이유와 변명으로 나를 포장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느끼는 것. 그것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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