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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Mar 11. 2022

나는 지구를 여행 중입니다

참 독특한 여행입니다.


지구를 여행하려면 지구인, 그것도 여자의 아기로 태어나야 한다네요.

이런 여행 프로그램을 만든 분, 기발하십니다.

처음엔 고민이 되더라구요.

여행 기간이 몇십 년은 되어야 하거든요.

영원한 시간 속에서는 아주 짧은 찰나겠지만요.


아, 물론 중간에 여행을 멈출 수도 있어요.

근데 누군가의 가족, 친구, 동료가 되다 보니 무작정 여행을 멈추기도 난감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나야 여행을 멈추는 것뿐이지만, 지구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여행은 재미로만 신청할 수 없는 것이에요.

굉장히 신중해야 하고, 어쩌면 여행이란 걸 망각할 수도 있어요.

해병대 캠프인 줄 알고 신청했다가 후회한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럼에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 중에는 여행이 나쁘지 않았다는 반응이 많아요.

이런 여행을 뭐하러 시작했을까 후회했다가, 여행을 마치는 순간엔 또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고 후회하죠.

후회만 남는 여행 아니냐구요?

그래도 끝나고 나니  스릴 있었다는 얘기가 많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시간만 허비했다고 합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고 말이에요.

사실 그것도 이해가 가요.

누구의 자녀로 태어날지는 순전히 운에 맡기는 거라서요.

여행을 신청하고, 여행을 떠나기 직전 추첨을 하는데요.

내 손이 금손이면 금수저로 태어나는 거고, 똥손이면 최악의 선택이 되는 거예요.

하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여행도 별 거 없느냐?

그건 아니에요.

이 여행은 내가 어떻게 느냐에 달려 있어요.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기도 하고, 금수저가 흙수저보다 못하게 전락하기도 하죠.

금수저든 흙수저든 아무 상관 없이 자유여행을 만끽하는 사람도 많구요.

그래서 이 여행이 놀랍다는 겁니다.

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거든요.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을지는 결국 본인 하기 나름이라는 거죠.



추첨 잘못하면 다시 할 수는 없냐구요?


추첨은 단 한 번뿐이에요.

내 앞에 빨간색 버튼을 누르면 전광판에 글자가 어지럽게 돌아가요.

그때의 긴장감과 설렘이란!

국적과 아빠, 엄마 이름이 뜨죠.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나의 캠프였어요.

처음부터 지구 땅을 밟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엄마의 뱃속에서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보통은 열 달, 성질 급한 사람은 조금 더 일찍 세상 밖으로 나오긴 해요.

절대 서두르지 마세요. 후유증이 있으니까요.


드디어 세상에 태어난 나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는 사느라 정신이 없어서 여행이란 것도 까맣게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너무 힘들 땐 여행을 그만 끝내고 싶기도 해요.

사람들에게 지칠 땐 여행 온 걸 후회했구요.

가족, 친구, 동료, 이웃으로 만난 사람들이지만, 우리 모두는 그저 지구 여행 중에 만났을 뿐이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들 피곤하게 구는 걸까요?

어차피 여행객일  뿐인데, 좀 즐겁게 살다가 돌아가면 안 되는 걸까요?



이 여행이 잔인하게 느껴질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여행이 끝나는 날을 모른다는 거예요.

대개 몸을 더 이상 쓸 수 없어지면 여행이 끝나거든.

또 하나는 여행 중임을 자꾸 까먹는다는 거예요.

이곳에서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아등바등거리고 있더라구요.

오늘도 문득 '아, 나 지금 여행 중이었지.' 깨닫고는 피식 웃었어요.

오래 살든 조금 살든 언젠간 여행이 끝나는 날이 올 텐데 그냥 즐기자 하면서요.

영원이란 시간 속에서 다시없을 특별한 여행이잖아요.


우리 모두는 여행객일 뿐이에요.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 말자구요.

여행 잘 왔다고 격려를 해줘도 모자라니까요.

그렇다고 너무 혼자만 평안하고 행복하단 착각도 하지 마세요.

금수저로 태어났든 흙수저로 태어났든 이 여행이 끝나면 우린 동등한 사람일 뿐이니까요.

사실 인간의 본질은 하나죠.

유형이 아니라 무형이라는 것.

그래서 그렇게들 자신이 누군지 찾아 헤매는 거 아니겠어?

그럼에도 이 여행을 즐기시길 바라요.

인생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스로가 선택한 여행이니까요.

모두에게 건투를 빌어요!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냅니다.
이번 달 주제는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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