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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Jul 20. 2022

내 안의 질서를 깨는 순간

습관


질서와 무질서 사이


무언가에 골몰할 때가 있다. 강박처럼,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일이 그랬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그랬고, 장을 보는 요일이 그랬다.

매주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하는 수업이나 잠시 식사하는 시간과 휴식 때 보던 넷플릭스 시청이 그랬다.

밤이면 잠자리에 들어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이 그랬다.

그런 일상의 반복이 지속될 때면 문득 무질서가 그리워지곤 한다. 마음 안에서 악동 하나가 슬그머니 일어나 정돈된 장난감들을 마구 흩어놓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예전 같았으면 그럴 때의 나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며 끝내 말렸을 거다. 그렇게 하느라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따져가며.


그러나 이젠 흩어놓고 싶은 마음을 따른다. 규칙을 불규칙으로 만드는 게 아주 쉬워졌다.

매일 쓰던 글을 쓰지 않는다. 그 시간에 훌쩍 일어나 밖으로 나가 하릴없이 돌아다니거나 쇼핑을 하거나.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불규칙해진다. 6시에도 일어났다가 8시에도 일어났다가. 어느 날은 10시까지 자버린다.

월요일엔 꼭 장을 보기로 했던 약속도 어긴다. 화요일에도 갔다가 수요일에도 갔다가 내가 가고 싶을 때 가든지 아예 안 가든지.

식사 때나 휴식 때 보던 넷플릭스를, 종일 볼 때도 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은 미뤄둔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도저히 견디지 못할 때까지 미뤄둔다.


속박과 자유


마감에 쫓기는 게 싫어 마감 한 달 전에 원고를 넘기던 때가 떠오른다. 갖은 핑계를 대며 원고를 미루는 작가들을 많이 봐온 탓에 편집자는 원고를 미리 보내주는 작가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건 순전히 나의 강박적인 습관이었기에 편집자의 칭찬이 멋쩍었다.

나는 여전히 미루는 걸 꽤 싫어하는 편이다. 미루고 있을 때의 그 불안감이 끔찍하게 싫다. 그 불안감은 나에게 비난으로 돌아온다.

게으르고, 무능하고, 나태하고...

그런 불쾌한 느낌이 반복될수록 자신감 하락과 함께 자존감도 낮아진다.

날마다 나를 재촉하면서 사는 동안 만성피로감에 찌들어갔다. 일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지만, 나의 마음은 점점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런 나를 발견하고 무척이나 가엾었다. 인간미는 사라지고 결과를 위해 기계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 모습이 처연했다.

그때부터였다. 나를 그냥 던져버린 것이.

때때로 되든 말든, 나를 세상에 던져놓고 어떻게 될지 지켜보는 게 취미가 되어버렸다. 공들여 탑을 쌓았다가 심술이 나서 와르르 무너뜨리는 악동처럼 변했다.

미친 듯이 무언가를 하다가도 불쑥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고, 갑자기 엉뚱한 데 꽂히기도 하고. 나를 꽁꽁 묶었던 제약에서 자유롭게 놓아줬다.


처음엔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에 불안하던 게 지금은 케세라 세라.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나는 가끔 무책임한 인간이 된다. 시간이나 약속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주의였지만, 이젠 그것마저도 싫어지는 지경에 왔다.

그렇다 해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는다. 순전히 ‘나’와 ‘나’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 때문인지 나는 오히려 나와의 관계가 자유롭고 편해졌다. 나 스스로 묶었던 속박을 풀어줌으로써 지나친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행복도 습관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어떤 결과물을 낳았을 때 성취를 느끼거나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가 가장 불행했다. 성취한 뒤에 오는 허탈감과 그다음을 향해 가야 하는 심적 부담감이 너무나 컸던 탓이다.

더 이상 내게 과중한 짐을 얹지 않는 것.

가벼운 걸음으로 걷든 달리든 멈추든 땅에 뒹굴든 아무 상관없는 삶이 내겐 가장 큰 행복이다.


내 삶은 어떤 순간이든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미루기만 계속한다거나 미루지 못하는 것만 계속한다거나. 그 어느 쪽으로 치중된 삶은 불행하다.

‘빨리빨리’에 익숙하고 특화된 대한민국인일수록 강박에 찌들어 있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내 삶의 규칙을 망가뜨려 보자. 아이가 장난감을 수도 없이 만들었다 부수었다 하는 것처럼.

어쩌면 인생은 그 과정인지 모른다. 거창한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수고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만나는 희열 같은 것.

그렇기에 행복은 지속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 행복을 어떻게 반복하느냐는 스스로에게 달렸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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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주제는 <습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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