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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Oct 22. 2022

카카오 대란 속에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카톡방들이 하도 조용하길래


조금 이상하다 싶었지만, 한편으론 세상 조용해서 좋았다. 세상 조용하니 글 쓰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평상시에는 정보 폭탄이다 할 정도로 종일 진동이 울렸다. 그럴 때면, "이노무 핸드폰 없애 버릴까!"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예전에 작품 시작하면 짐 싸서 섬으로 들어간다는 문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머리가 시끄러워 가끔은 나도 혼자 조용한 데 가서 글이나 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

핸드폰 없이 자연 속에서 살다 보면 또 삶이 달라지겠지.

핸드폰 없이 어떻게 살겠냐고?

핸드폰 없이 잘 살던 시절도 있었고, 카카오 대란이 일어나도 나 같은 사람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약 2년간 핸드폰 없이 살았던 적이 있다.

문자, 연락, 이런 게 너무 스트레스라 없애버리고는 은둔형으로 살았더니 세상 신경 쓸 게 없어 좋았다. 그땐 인생이 우울할 때여서 사람들이 관심을 주는 것도 피곤하고, 내가 관심을 가질 마음의 여유도 없던 때였다.

연락해야 하는 사람은 답답해했는데, 메일도 있었고 매주 교회에서 만날  수도 있어 나에게는 마냥 편했다. 북적대는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나 비로소 해방감 비슷한 걸 느꼈달까.

그때 나의 해방일지를 썼어야 했는데….


그 후로 종종 핸드폰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카카오 먹통은 일부이기는 하나, 잠시 동안 디지털 세계를 일부 떠나 있는 기분이었다. 이 정도 만으로도 해소가 되다니, 그동안 나를 너무 디지털 세계에 노출시키고도 무심히 살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브런치가 왜 안 되지?


브런치 접속이 안 되기에 몇 번 해보다가 앱을 지우고 다시 깔았다. 그런데도 접속 불가.

카톡도 잠잠하고 브런치도 안 되기에 그제야 뭔 일인가 싶어 기사를 읽어봤다.

‘불났구나.’

그걸로 끝.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글에 집중했다.

브런치가 안 된다고 큰 지장이 없는 나를 보면서, 브런치에 그다지 애정이 없나 보다 했다.


사실 브런치란 공간은 내게 단골 카페 같은 느낌이라, 없으면 아쉬울지 몰라도 연연해 하진 않는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과는 좀 다르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가끔 브런치 글들을 읽곤 하는데, 브런치가 안 돼서 화가 났다는 분도 계셔서 놀랐다. 내가 너무 무심한가 싶었다. 그간에도 브런치에 진심인 분이 많아 놀란 적이 여러 번이다. 나에겐 단순히 글쓰기 앱에 지나지 않던 이곳이 엄청 커 보였다.

“그렇지. 여긴 카카오지.”

웹소설 시장에서 카카오와 네이버가 가장 큰 시장이듯, 에세이로는 브런치가 가장 큰 시장인 셈이니까.

끄덕끄덕. 그제야 공감이 간다.

그분들은 브런치에 진심이 아니라 에세이에 진심인 거다. 나는 아직 에세이라는 장르에 무심한 거고.


연재하는 중간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어도 ‘언젠간 복구되겠지.’ 하면서 무심하게 지나갈 확률이 크지만, 브런치가 복구되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에세이도 써야 하잖아.’였다.

에세이 쓰려면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는지. 내가 재미없으니 글도 재미없는 거겠지?


카카오 왕국이라는 함정


기사를 보니 주말 영업을 망친 자영업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나처럼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는 사람이 있나 하면, 영업과 직결된 분들은 꽤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카카오 대란에 국가가 나서는 걸 보고 헉 했는데, 그만큼 우리의 일상이 카카오에 지배받으며 살았구나 싶어 소름이 끼쳤다.


개인정보 노출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재의 우리. 보이스피싱은 점점 지능화되어가고, 내 연락처를 어찌 알았는지 뜬금없이 걸려오는 광고 전화에 대응하기도 지친다.


예전에 농협이 해킹당했을 때도 불안했고, 앞으로의 미래는 이보다 더하겠구나 싶어 답답했다.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기업이 문어발처럼 사업을 확장하는 바람에, 이곳을 통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업구조가 된 지 오래다. 웹소설만 하더라도 이 두 곳이 제일 큰 시장이 되어버렸다. 브런치 작가로서도 같은 상황이고.


일전에 카카오 택시를 탔더니 기사님이 가는 내내 카카오 욕을 하셨다. 카카오 택시를 안 하면 되지 않겠냐는 간단한 문제와는 다르다. 거대기업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가 문제인 거다.

이번 카카오 대란을 보면서, 마치 큰아들이 친 사고를 부모가 나서서 해결하려는 모습 같아 실소가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주말 사이 카톡 유저들이 네이버 라인으로 갈아탔다는 소식을 접한 뒤에도 씁쓸했다. 카카오에서 네이버로 옮겨간 것뿐이라 근원적인 해결은 아니었다.

어쨌든, 집단소송까지 이어진 이번 사태에 카카오 대표가 사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카카오 페이지에서는 주말 이용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무료캐시를 주겠다는 공지가 떴다.


뭘 해도 민심을 달래긴 어려워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거대기업이란 왕국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고, 거기서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이 서글플 뿐이다.


물론, 부정적인 단면만으로 단정 짓긴 어렵다. 디지털이 주는 편리와 혜택은 분명히 있을 테니.

그러나 카카오 대란과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는 평소에 우리가 누렸던 그 편리와 혜택이 서서히 스며들어 인지하지 못한 독이 될 수도 있다.


도시에도 아날로그로 사는 마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마 아날로그를 체험하려면 시골에나 가야 할까, 도시에서는 하루도 디지털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쌍문동처럼 그런 동네가 도시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고, 애가 잘못했을 때 야단쳐 주는 이웃집 어른도 없고, 부모가 없을 때 불러다가 밥 먹여주는 이웃도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그 삭막함을 견디고 있는 우리의 정서가 안타깝다.


도시에 디지털이 금지된 마을이 생겼으면 좋겠다.

청학동은 아니더라도 쌍문동처럼 정겨운 골목이 살아났으면 좋겠다.

돈이 있다면 골목 하나를 사서 드라마 세팅장처럼 꾸며놓고, 방문객들에게 방도 제공하고 밥도 먹여줄 텐데.


아! 돈을 벌려면 디지털을 버릴 수 없겠구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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