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초에 삼겹살 싸 먹기

진시황이 부럽지 않아!

by 날자 이조영

여름이면 생각나는 불로초.

고등학교 때 우리 집은 마당이 꽤 넓은 1층 단독주택이었다.

대문에서 보면 오른쪽이 마당이었는데, 평소 텃밭 가꾸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마당에 무언가를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텃밭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던 나는 마당 쪽에는 무심했다.

가끔 거실 창에서 내다보면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열심인 엄마가 보였다.


'힘들게 뭘 저래 하노?'


내 걱정과 달리 마당에 나갔다 온 엄마의 얼굴은 활짝 피어 있었다.

소소한 행복이란 엄마의 얼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난히 밝았던 엄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마당은 파릇파릇한 풀밭을 이루었다.

비라도 내리고 나면 아이 키처럼 쑥쑥 자라 있는 풀이 어느새 마당을 가득 메웠다.

바람이 불면 하늘하늘 물결치는 게 무척 아름다웠다.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자연친화적인 집이었다.

가끔 기타를 친답시고 마당에 나와 딩가딩가 기타 줄을 튕겼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여름 저녁.

석양이 물들어갈 때 마당 가득한 초록빛 물결을 바라보며 나는 어설픈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렸다.

길가를 따라 같은 모양의 집들이 쭉 늘어선 주택.

그 어느 집도 우리 집처럼 마당을 텃밭으로 만든 곳은 없었다.


"이게 뭔지 아나? 불로초라 하는 기다."

"불로초?"

"진시황이 먹었다는 불로초 알재?"

"와, 불로초가 이래 생깄나?"


불로초를 말로만 들었지 처음 봤기에 무척 신기했다.

자고로 불로초라 함은 재배도 어렵고 구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품종인 줄 알았다.

진시황의 불로초가 우리 집 마당에 널려 있는 게 신기했다.


"약 해 먹을라꼬 심었나?"

"약은 약이지. 호호."




"영아 아빠, 마당에서 삼겹살 구워 먹으입시더."


토요일 저녁이 되자 엄마는 별안간 분주해졌다.

마당으로 나간 아버지는 동생들과 함께 어디선가 회색 벽돌을 주워 오셨다.

구멍 두 개가 쑹쑹 뚫린 벽돌을 둥글게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그 사이에 불을 피운다.

땔감도 나무들이 심겨 있는 화단에서 주워온 거다.

적당히 자른 신문지에 불을 붙여 땔감에 살살 옮겨 붙이면, 처음엔 잘 붙지 않던 불도 어느새 활활 타오른다.

철물점에서 사 온 망을 불 위에 올린 뒤 잔뜩 열이 오른 망 위에다 길게 잘라 놓은 삼겹살을 척척 올린다.

치지지직, 치지직.

삼겹살 익는 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진다.

치이이, 칙칙.

연기는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이따금 기름이 떨어지며 화르르 빨간 불꽃이 튄다.

불 주위에 회색 벽돌을 하나씩 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있던 나와 동생들은 고소한 냄새에 견디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빨리 먹고 싶어 몸이 배배 꼬이고, 침은 꼴깍꼴깍.


"아휴, 배고파."


여름이라 해가 길어 마당은 아직 환하다.

엄마는 불로초를 뚝뚝 뜯어다 물에 씻어 소쿠리에 가득 담아온다.

물기를 머금은 불로초는 싱싱하기 그지없다.


"다 됐다. 무라."


적당히 자른 삼겹살을 우리들 앞으로 놓아주는 아버지.

노릇노릇 잘 익은 고기를 보자 참았던 식욕이 폭발한다.


https://blog.naver.com/arario1853/220397427280


엄마는 불로초를 손바닥에 척 올려 마늘, 고추, 쌈장 놓고 뜨거운 삼겹살 한 점을 살포시 포갠 뒤 꽁꽁 싸서 아버지 입에 먼저 넣어준다.

아버지가 드신 후에야 우리도 허겁지겁 불로초 쌈을 싸서 입안이 미어터지도록 욱여넣는다.

우적우적.

이파리는 연한데도 살짝 두께가 있어서 씹을 때 아삭거린다.

신선함을 먹는 듯 머릿속까지 개운한 맛!

불로초의 쌉싸름한 맛과 향이 고소한 삼겹살과 어우러져 상추나 깻잎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다.

약재로만 쓰는 줄 알았던 불로초로 고기를 싸 먹을 줄이야!

삼겹살은 구워지기가 무섭게 사라지고, 가족 모두 처음 맛보는 불로초에 경탄하는 소리가 기타처럼 통통거린다.


"맛이 어떻노?"

"괘안네. 느끼하지도 않고. 마냥 먹겠는데. 후후."

"우리 가족 건강해지라고 심은 거다. 마당에서 구워 먹으니까 더 좋네. 외식할 거 없이 앞으로는 자주 삼겹살 구워 먹자."

"엄마가 이거 심느라 애 많이 썼다. 엄마한테 고마워해라."


아버지는 엄마의 수고를 그냥 넘기지 않는다.

엄마도 싫지 않은 듯 쑥스럽게 웃는다.


"아이고, 뭐. 그냥 재미 삼아 심은 기지. 호호호."

"엄마 덕분에 진시황이 안 부럽다."

"진시황도 불로초에 삼겹살은 안 싸 먹어 봤을 기다. 헤헤."


동생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마당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었다.

다른 반찬 없이 마당에서 바로 딴 불로초와 삼겹살만 있으면 외식보다 더 맛있는 주말 저녁을 보냈던 그 시절.

고등학교와 대학 1년까지 살았던 그 집은,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넉넉하고 편안하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의 추억을 고스란히 안고 사는 사람은 아마도 내가 아니라 엄마일 터다. 아직도 텃밭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걸 보면.

식물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나는, 이제야 엄마의 텃밭 사랑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손으로 심어 쑥쑥 잘 자란 불로초를 가족들 건강을 위해 먹이는 엄마의 마음.

종일 쭈그려 앉아 호미로 텃밭을 일구던 엄마의 등이 오늘따라 선명히 눈에 박힌다.

그 시절이 나도 그립다.





https://blog.naver.com/moadrim99/221877661713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