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내 글이 생선 뼈다귀 같다고 했다
머리에서 김이 나요!
2004년 12월 로맨스 소설 첫 책이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떻게 컨택이 됐는지 의아할 정도로 형편없는 글이었다.
편집자를 폄훼하는 건 아니다. 수정하는 동안 내가 그의 기대에 못 미쳤을 터다.
첫 책의 뼈저린 자책은 그 후 글쓰기에 좀 더 매진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첫 책은 얼결에 컨택이 돼서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부랴부랴 출간했다면, 두 번째부터는 제대로 한 번 해보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
2005년 1년 간 두 번의 무료 연재와(이때만 해도 유료 연재가 없었다), 봄가을로 두 권의 책을 내면서 정말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로설의 세계도 알게 되었고, 연재 재미도 느꼈고, 출판업계도 보였고.
어느 출판사를 통해야 로설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2010년도에 방송되었던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정은궐 작가님)'을 출간했던 출판사.
로설 작가들 사이에서도 꽤나 까다로운 컨택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유명한 로설 작가들은 그 출판사를 거쳤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나도 그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게 목표였다. 그래야 글 좀 쓰는구나, 하는 작가가 될 것 같았으니까.
용감하게 원고를 보낸 뒤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로설계에 입문한 지 1년이 조금 더 된 햇병아리 작가가 넘사벽인 출판사에 원고를 넣은 것이다.
그곳에서 출간한 유명 작가님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글솜씨로 과연 컨택이 될까?
실력 부족, 능력 부족을 절감하면서도 내게는 꼭 넘어야 할 고지였다.
1, 2년쯤 더 실력을 쌓아 도전할까?
아니! 나는 그 출판사의 편집자에게 내 글에 대해 솔직한 비평을 듣고 싶었다.
나는 정말 글을 배우고 싶었다.
내 목적은 당장 그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것보다 편집자의 평을 듣는 것이었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편집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통 컨택이 안 되면 메일로 보낸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작가님, 직접 뵙고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요. 출판사로 오시겠어요?"
편집자의 말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 글이 마음에 들었으니 보자고 하겠지? 드디어 나도 거기서 책 내는 거야?'
시간 약속을 잡고 출판사로 찾아갔다. 대표이신 편집자는 남자분이었다.
로설과는 안 어울리는 '곰' 이미지. 약간의 무서운 인상과 그동안 들었던 편집자의 무시무시한 아우라에 주눅이 들었다.
투고한 원고를 A4 용지에 출력한 그와 마주 앉았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뭐라고 하려고 뜸을 들이나?'
로설계 최고 편집자라고 불리는 그를 대면하고 앉은 나는, 무슨 잘못이라도 해서 담임선생님 앞에 불려 온 학생처럼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면전에 대고 신랄해 봐야 얼마나 신랄하겠어.'
혼자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내게 편집자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작가님 글은 생선 뼈다귀 같아요."
'헉! 새, 생선 뼈다귀?'
당황, 창피, 불쾌, 분노…….
온갖 감정이 하나로 뭉쳐져 가슴속을 꽉 메웠다. 답답했다.
생선 뼈다귀면 먹을 게 없단 뜻 아닌가.
책으로 치면 내용은 없고 목차만 있는 글.
'내 글이 그렇게 허술하단 말이야?'
묵직하게 한 방 얻어맞은 나는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편집자 평을 듣겠다는 목적은 온데간데없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던 건 따로 있었다는 걸 깨닫자 더욱 비참했다.
"작가님, 글 너무 좋아요. 글을 잘 쓰시네요."
내가 정녕 원했던 말은 로설계 최고 편집자라고 불리는 그에게 듣는 칭찬이었다.
편집자의 평은 계속되었다. 노트를 펴고 그의 말을 한 자도 빼먹지 않으려 열심히 적었다. 마치 공부하는 학생처럼.
들으면 들을수록 얼굴이 화끈거려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컨택이 되든 안 되든 빨리 결정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난 역시 안 되는구나. 아직 멀었구나.'
글공부 좀 하고서 쓸걸. 무턱대고 연재부터 해서는 이 무슨 창피인지.
첫 책에서 무난히 출간했고, 두 번째와 세 번째도 무사히 출간했던 나였다.
그게 나의 오만을 키웠던 걸까.
너무 무리한 도전이었나 싶은 자괴감에 시달리며 꾸중 듣는 아이처럼 편집자의 평을 들어야 했다.
점점 기대감은 사라지고 글 쓰지 말까, 하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갔다.
"제가 작가님을 뵙자고 한 건요. 생선 뼈다귀에 살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아서예요."
편집자의 애매한 표정. 멋 모르고 덜컥 작가가 되어버린 어정쩡한 햇병아리에게 투자자나 다름없는 표정이었다. 이걸 한 번 키워봐? 그런 심정이 고스란히 보였다.
"당연하죠. 그게 제 일인걸요."
자포자기 심정이던 건 또 금세 날려버리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호언장담했다.
'까짓 거,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탱탱하게 살 붙이면 되지 뭐.'
그것이 고지를 넘어야 할 과제라면 얼마든지!
인생을 바닥 친 후에 글로 자신감을 얻었던 나는 이 고지를 넘지 못하면 진짜 작가는 못 될 거라는 확신이 섰다. 턱걸이를 하든 기어 올라가든 그 고지는 내가 반드시 넘어야 할, 나와의 싸움이었다.
"좋아요. 한 번 해봅시다."
편집자는 비로소 웃음을 비췄다.
날이 선 평가가 끝난 뒤 갑자기 반전된 분위기는 계약서를 쓰기 위해 준비를 하는 동안 더욱 편안해졌다.
"편집자님, 이 작품 말고 또 하나 있는데 그것도 봐주실래요?"
"아. 이 작품 본 거 같은데."
나는 연재 중이던 작품을 무작정 들이밀었고, 다행히 편집자는 관심을 보였다. 시놉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해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편집자의 얼굴도 한층 밝아졌다.
"음. 이것도 같이 계약하시면 어때요?"
"어! 진짜요? 저야 좋죠!"
까다롭기로 유명한 편집자가 한 작품도 아니고 두 작품을 계약하자고 한다.
사실, 원래 계약하려던 작품보다 연재 중인 작품이 더 호응이 좋았기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봄가을에 두 작품을 내기로 하고, 일사천리로 계약을 마쳤다.
그리고 그해 두 번째 작품이던(타 출판사) '적과의 만찬'이 1년 만에 드라마 계약을 하게 되면서 나의 경력에도 점차 빛을 보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수정'이란 이름만 들어도 이가 갈린다는 원고 수정.
같은 글을 끝도 없이 봐야 하는 지긋지긋한 수정 싸움.
노트북과 씨름하느라 굶기가 예사였다. 배가 고파 못 견딜 정도가 되어야 밥그릇에 대충 밥과 반찬을 얹어 노트북 앞에 앉아 먹었다.
수정을 하나 안 하나 글쓰기 습관은, 나중에 병이 날 지경으로 내 몸을 혹사하는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수정 기간에는 밤샘은 기본이요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된다. 살이 쭉쭉 빠지고 몰골은 점점 폐인화 되어간다.
그렇게 잠자는 몇 시간을 제외하곤 노트북과 물아일체가 된 채로 몇 달이 지나갔다.
봄, 그 출판사에서 첫 작품이 나왔을 때 독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실망스럽다는 평이었다.
'출판사 퀄리티에 비해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
'너무 무난하다.'
'재미없다.'
'여기 작가님들 중 제일 별로다.'
내가 제일 뒤떨어지는 작가가 맞기에 담담히 평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두 번째 작품마저 같은 혹평을 받을 순 없었다. 내게 과감히 투자해준 편집자에게도 미안했고, 나 자신에게도 미안했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프로의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면 적어도 글을 '잘' 써서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게 당연하다.
이제 턱걸이는 하였으니 두 번째 작품은 펄쩍 뛰어넘어야 한다.
여름을 지나는 동안 또다시 원고 수정과의 전쟁이 벌어졌다. 말 그대로 싸움이 아닌 전쟁이었다.
나는 총을 든 군인처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미친 듯이 수정에 매달렸다.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즈음, 머리에서 김이 펄펄 올랐다.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더 이상은 못 하겠어요. 머리에서 김이 나요!"
"하하하. 이제 그만 보내주시죠. 고생 많으셨어요."
나의 실력과 능력 부족에 한탄하면서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졌던 원고를 마침내 출판사에 넘겼다.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수정이었다.
출판사 퀄리티에 쫓아가느라 내 실력과 능력 그 이상으로 노력했기에 독자들에게 어떤 평을 받아도 '수정 더할걸.' 하는 후회는 없을 터였다.
얼마 후 편집자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작가님, 한 번만 더 수정하죠. 큰 건 아니고요. 몇 군데만요. 진짜 수정 열심히 하셨네요. 재밌게 잘 봤어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첫 번째 작품을 할 때는 여러 번 수정을 거쳤고, 그때마다 실력이 못 따라가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두 번째 작품은 편집자도 만족스러워했다.
작가가 만족스러우면 편집자도 만족스럽다는 걸 그때 온몸으로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만족스러운 글을 쓰지 못했다. 편집자의 요구에 맞추느라 급급했을 뿐.
다시 수정을 거친 작품은 그해 가을 출간되었고, 이전과 달리 독자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물론, 100퍼센트 호평은 아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로설계에서 호평 글만 올라와도 만족할 정도였다.
두 번째 작품 이후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글쓰기가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머리에 김이 나고 병이 날 정도로 혹사하면서까지 매달렸던 원고 수정은, 햇병아리에 불과했던 내게 글쓰기의 맛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만큼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걸 느꼈다.
두 번째 작품은 출간 이후에 드라마 계약 얘기가 오가다가 무산되었는데, 그게 제일 아깝다.
올해로 17년째 로설 작가로 살면서 나는 아직도 2006년도의 그 뜨거웠던 한해를 잊지 못한다.
그 무섭고 두려웠던 고지를 넘었기에 계속 글을 쓸 수 있었고, 어떤 일에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인생을 바닥 쳤을 때 치유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치유의 글쓰기는 곧 소원이었던 작가의 꿈을 이루어주었으며, 최고의 편집자를 만나 진짜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 나를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내가 아직도 로설 작가로서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나를 살려준 글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글은 나를 살려준 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