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가 뭔데?
17년 전 출간을 준비할 때만 해도 나는 로맨스란 장르가 따로 있는지도 몰랐다. 무려 연재를 하면서도 로맨스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 계속 장르물을 쓸 생각도 없었다.
학창시절에 할리퀸이 엄청 유행했어도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순수문학에 빠져 있던 내게 할리퀸은 삼류소설에 불과했다.
그런데 연재를 할 수 있는 사이트에 글을 올리려면 선택할 수 있는 장르가 로맨스뿐이었다. 무협과 판타지가 있었지만 내가 쓸 수 있는 장르는 아니었다.
로맨스 장르에 대한 이해도 없이 연재에 재미 들려 무작정 글을 썼다. 그리고 운이 좋게 첫 출간을 했다.
그때부터 연재에 탄력이 붙었는데 새로 쓴 연재작의 마지막 편에서 난리가 났다. 독자들의 원성 높은 댓글이 줄을 이은 것이었다.
남주를 죽이는 법이 어디 있어?(황당형)
내가 이 꼴 보자고 지금까지 꼬박꼬박 챙겨본 줄 알아?(분노형)
작가는 로맨스가 뭔지나 알고 쓰는 건가?(비난형)
다시 살려달라. (애원형)
다시는 네 거 안 본다. (협박형)
독자들의 반응에 나야말로 황당무계!
남주를 죽이든 말든 쓰는 사람 마음 아닌가?기획한 대로 쓴 건데, 왜?
꼬박꼬박 챙겨봐달라고 사정한 적 없는데 왜 나한테 화를 내나?
로맨스가 뭔데? 소설은 소설이지 뭐.
이미 죽은 걸 어떻게 살리나. 너무 억지다.
보고 안 보는 건 독자 소관, 쓰고 안 쓰는 건 작가 소관. 각자 알아서 하는 거지.
남주가 죽어야 소설이 완성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수많은 독자 중에서 역시나 특이한 분은 존재했다.
로맨스에서 남주가 죽다니 신선한데?
그게 왜 신선한지 1도 몰랐다. 사실 다른 작가들 글을 거의 보질 않았다. 인기작조차도!
나에게 로맨스란, 드라마처럼 남녀 사랑도 들어가고 가족 얘기도 들어가고 추리도 들어가고 서스펜스도 들어가고...
휴머니즘을 표방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그만인 것이었다.
독자들의 원성을 한몸에 받았던 연재작은 얼마 후 투고한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것 봐. 로맨스에서 남주가 죽으면 안 되는 법은 없다구!'
그랬다면 계약도 안 하겠지. 리뷰할 때 그 부분을 얘기했거나.
드라마에선 되고 로맨스에선 안 되는 것
"작가님, 엔딩을 이렇게 쓰시면 안 돼요."
죽어라 몇 개월을 퇴고한 원고를 보냈더니 담당자가 전화로 난감해했다. 이제 와서 웬 날벼락!
"왜요?"
"로맨스잖아요. 연재 땐 몰라도 출간은 다르게 가야죠. 살릴 방도를 생각해 보세요."
"스토리 상 남주가 죽는 게 맞는데요?"
"남조도 죽었잖아요. 근데 남주까지 죽으면 어떡해요?"
그, 그렇구나. 남조가 죽었을 때도 욕 엄청 들었지...
남주를 죽이느냐 살리느냐에 정신이 팔려서 남조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남조에 이어 남주도 죽인 내가 인정사정없는 살인마가 된 기분이었다.
"다시 수정해서 보내 주세요."
야무진 담당자와 통화를 마치고 크나큰 고민에 빠졌다.
"아니, 죽은 사람을 어떻게 살리라는 거야?미치겠네."
아무리 작가의 소관이라지만 반전도 정도가 있었다. 결말이 슬프긴 해도 남주가 죽어야 여운이 클 텐데. 드라마는 되는 게 왜 로맨스에선 안 되냐고!
햇볕 쨍쨍한 날 마른 빨래 쥐어짜듯 머리를 쥐어짜 억지로 남주를 살렸다. 그때 이후로 드라마에서 시청자 반응에 의해 말도 안 되는 전개도 이해가 되었다.
"쯧쯧. 오죽했으면."
그렇게 죽었던 남주는 살아 돌아왔고, 이듬해 처음으로 드라마 계약까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내키지 않는 억지 결말에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비록 제작과정에서 무산이 되는 아픔은 있었지만, 로맨스라는 장르가 뭔지 알게 해 준 작품이었다.
로맨스와 멜로의 차이
로맨스와 멜로의 차이를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로맨스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리며 해피엔딩을 지향한다. '캔디는 안소니를 만나 시련은 있었으되, 마지막엔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이때 테리우스처럼 남주에 버금가는 남조와 삼각관계라면 더욱 흥미진진. 남주파, 남조파. 심지어 남조애착형이 등장한다.(남조가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재벌 남주와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주의 만남은 여성 판타지임에 틀림없다. 재벌은 서민에게 관심이 없을 테니까.
대리만족. 주변에 남주나 남조 같은 사람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드라마에서 못생긴 남주와 남조가 없듯이 로맨스에서도 얼굴, 능력, 하다못해 깡이라도 있어야 한다. (로맨스에 빠지면 1일 7깡 보다 더한 깡도 가능한 이유)
멜로
사랑에 빠지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멜로 필 나는 로맨스도 있지만, 멜로의 결말은 비극적인 경우가 많다.
로맨스는 가볍고 코믹한 것도 다루지만, 멜로는 무겁고 진지한 경향이 짙다.
불륜, 치정 등의 소재도 다룬다. 로맨스에선 용납되지 않는 소재다. (바람 피우는 남주, 성적으로 문란한 남주, 우유부단하여 여주와 여조 사이에서 양다리인 남주 등. 설사 그렇다 해도 여주에 의한 개과천선과 여주를 사랑하게 된 후 후회남으로 변신)
멜로에선 심한 나이 차도 가능하지만, 로맨스에선 거부 반응이 나타난다. (멜로는 남의 이야기, 로맨스는 내 이야기가 되는 심리. 대리만족은 로맨스)
로맨스든 멜로든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좀 더 편한 접근은 로맨스인 듯.
초보의 시행착오는 프로가 되는 필수 과정
독자가 요구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걸 고집하던 초보 시절. 퇴고를 하다 보면 몸 고생, 마음 고생 하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지나 보면 내 글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또는 지나친 자신없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이 공들여 쓴 글을 편집자가 죄다 잘라내야 한다고 해서 격분하는 작가도 보았다.
너무 자신이 없어서 글을 쓰는 시간보다 실력을 한탄하는 시간이 더 많은 작가도 보았다.
독자와 싸우는 작가도 있고, 댓글에 상처 받아 절필하는 작가도 있고.
한마디로 천태만상이다.
그러나 초보의 시행착오는 프로가 되는 필수 과정이다. 내 글이 제일 재밌고 내가 만든 주인공들이 제일 예쁘고 몰라주는 독자들이 야속하고. 그걸 콕 집어 지적하는 편집자가 동지가 아닌 적으로 느껴진다면 프로의 길은 더욱 멀고도 길어진다.
글을 쓸 땐 몰입하되 쓰고 나면 관조할 줄 알아야, 독자와 편집자의 반응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연재란 독자들과 발맞추어 가는 것이다. 작가가 못 보는 것을 날카롭게 모니터해주고, 때로는 함께 웃고 울며 따뜻하게 호응해주는 독자님들이 있었기에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다.
구멍이 숭숭 뚫리거나 뒤죽박죽인 글을 보완하여 새 것처럼 반짝이게 해주는 사람은 편집자다.
내 글에 있어서 작가, 독자, 편집자는 동지인 셈이다. 굳이 원수를 만들 필요가 없다.
그들은 또 다른 나의 눈이고 귀다.
로맨스 작가로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피드백을 수용하는 여유가 생긴 덕분이었다.
편집자나 독자가 아니라고 하는 글은 과감히 버리고 과감히 자르고 과감히 바꾼다. 그러다 보면 완전히 새롭고 더 재밌는 글이 된다.
나는 왜 로맨스에 빠지게 되었나.
로맨스를 쓰고 보면서 느낀 건 사랑의 판타지뿐 아니라 인생의 판타지도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로맨스에 대해 알아갈수록 나처럼 이혼하고 바닥을 쳐본 사람이 로맨스를 쓸 자격이 있는지 죄책감이 들었다. 우울한 인생을 써야 나와 맞는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해피엔딩은 불확실하였기에 로맨스를 쓰고 있는 게 가식처럼 느껴졌다.
'난 로맨스와 맞지 않아.'
스스로 더께를 씌워 이상한 자격을 부여하던 어느 날.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ㅡ 작가님, 드라마 계약하재요.
늘 차분하던 담당자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어! 정말요?"
ㅡ 네. 실은 출간하고 1년 동안 계속 얘기 중이었거든요. 드디어 결정됐어요.
"왜 얘기 안 했어요?"
ㅡ 혹시 안 되면 작가님이 실망하실까봐요. 후후후.
"너무너무 고마워요. 고생 많으셨어요."
ㅡ 작가님이 글 쓰시느라 고생하셨죠. 계약하러 출판사로 오세요. 그때 만나서 얘기해요~
나는 로맨스를 쓰면 안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할리퀸도 삼류소설이라고 무시하던 내가 말이다.
"나도 가능성이 있구나."
그때부터 언젠가 때려치우겠다고 했던 로맨스는 내게 희망이었고 글을 계속 써야 할 이유가 되었다.
주인공에게 시련은 있어도 죽음은 없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내 인생에서 주인공인 나도 시련은 있으나, 그 시련으로 인해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로맨스를 통해 배운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