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킬링 디어 (2018)

자비롭지 않은 현대의 신, 그리고 그가 불러일으킨 인간의 욕망 투쟁

by 예은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전작들로 이미 명성이 높던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때문일까, 아니면 항상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 니콜 키드먼과 콜린 파렐에 대한 기대감이었을까. 어쩌면 고작 1분 남짓한 시간에 충분한 긴장감을 주던 트레일러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유가 어쨌든 나는 이 영화에 끌렸고, 당연하게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끌렸던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내 머리 속은 복잡, 미묘 그 자체였다. 찝찝하면서도 매끄럽고, 아리송하면서도 이해되는. 감정과 이성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달까. 하지만 간추려보자면, 고전적인 이야기를 잘 현대화시킨, 그래서 신화에 담겼던, 이제는 바뀌어 버린 여러 메시지들을 곱씹어보게 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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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Deer)에 얽힌 신화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영화의 원제인 이 영어를 번역해보자면, "신성한 사슴 죽이기"가 된다. 사슴과 죽음, 더하여 '신성함'까지. 여기서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르테미스와 아가멤논의 "이야기" 말이다. 신화에 따르면, 그리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죽여 여신의 분노를 샀고, 그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했다. 왕은 결국 딸을 제물로 바쳤고, 여신은 그녀를 가엽게 여겨 제물을 사슴으로 바꾸고 살려준다.


영화에서 감독은 이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주인공 '스티븐(콜린 파렐)'은 심장전문의로, 몇 년 전 그의 과오로 수술 중 '마틴(배리 케오간)'의 아버지가 죽게 된다. 이는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죽인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뒤이어 신의 분노가 나타난다. 마틴은 스티븐에게 그가 가족 중 누구 하나를 '선택'하여 죽이지 않는다면, 모든 가족이 다 앓다 죽을 것이라고 저주를 내린다. 그리고 순간 바로 가족들에게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계속되는 병의 진행에도 스티븐은 섣불리 선택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가족 사이의 불만과 투쟁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 영화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스티븐이 무작위로 가족 중 한 명을 죽여 신의 분노를 푸는 것으로 끝난다.


이전까지 신화의 구조를 따라가던 영화의 스토리는 이곳, 결말에서 다른 방향을 향한다. 신화에서 제물로 바쳐진 이피게네이아는 여신의 아량으로 살아남았지만, 영화는 결국 누군가의 죽음으로 마무리를 지어진다. 달라진 결말을 통해 신화는 영화에서 현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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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두 가지였다. 우선 신화 속 아가멤논의 딸은 살았지만, 영화 속 스티븐의 아들이 죽은 이유는 신화가 해피엔딩이 더 많은, 이상에 가까운 스토리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현실성이 반영되어있다 하더라도 신화는 어디까지나 승리한 자들, 다시 말해 소위 '신에 의해 선택받은 자들'이 자신의 스토리를 극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주목받는 이유는, 현실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신이 아량을 베풀어 모두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이상에 가까운 희망이다. 흔히 생각되는 것처럼 신은 마냥 모두를 굽어살피는 우리의 수호천사 같은 존재는 아닌 셈이다. 그리고 그것이 스티븐의 아들 '밥'이 죽은 이유다. 모두가 생각하다시피 신이 모든 인간에게 아량을 베푸는, 자상한 존재라면 '밥'의 죽음이 이 영화의 엔딩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신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모두를 굽어살피는, 배려심 깊고 전체를 포용하는 존재는 아닐 수 있지만, 여전히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신화로 돌아가 볼까. 아가멤논이 받은 여신의 분노는 '사슴'을 죽인 대가였고, 여신은 '사람'인 제물을 '사슴'으로 바꾸면서 분노를 거둬들였다. 어찌 보면 간단하다. 사슴이 죽었으니 다른 사슴을 죽여서 그 목숨을 갚은 셈이니까. 이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료사고로 '사람'이 죽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었다. 이렇게 보면 신은 생각해왔던 것처럼 넓은 아량을 가진 것은 아닐지언정 처절하게 '공평하게' 모두를 대한다는 것은 맞다. 그리고 이러한 신의 행동은 마틴이 얘기한 '정의(Justice)' 그 자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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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God)'에 대하여


영화에서 '스티븐'이 신의 분노를 산 인간으로 그려진다면, 그 '신'에 빗대어지는 존재는 바로 '마틴'이다. 신화 속 아르테미스 여신은 사슴을 잃었고, 마틴은 아버지를 잃었다. 이후 그는 '신'의 힘을 이용해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앗아간 스티븐에게 분노를 표한다. 그의 분노로 인한 저주로 스티븐의 아들과 딸은 원인 모를 병에 시달리게 된다. 병의 '과학적' 해결에 정점에 있다고 여겨지는 의사들 조차 병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들의 병은 신의 분노로 인한 것, 즉 과학적이기보다는 초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마틴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던 스티븐과 아내 '애나(니콜 키드먼)'는 점점 불가항력을 느끼고 좌절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선택지는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몰리게 된다. 마틴의 아버지 '한 사람' 몫의 희생으로.


마틴이라는 영화 속 신은 공명정대함이라는 정의를 실현하는 존재다. 한 사람을 죽였다면, 한 사람 분의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 이것이 신, 마틴이 내세우는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점은, 신이 그저 '한 사람 분의 생명'을 원한 것을 뿐, 거기에 누군가를 특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로서 신은 더욱더 공평함을 주지하는 존재가 되었다. 말 그대로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억울하게 죽은 '한 사람'의 복수일 뿐, 거기에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마틴은 모든 순간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그려진다. 그는 항상 모노톤으로 말을 하고, 표정의 변화도 그리 많지 않다. 마치 감정이 없는 신처럼, 그저 모든 것을 관망한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은 그를 모두에게 공평한 '신'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신의 공평함 하에 누가 희생양이 될지 선택할 때, 인간은 최고의 본능, 생존에 대한 욕망의 투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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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본적인 욕망의 이름으로


지나치게 공평한 신은 인간에게 희생될 사람을 고르는 선택권을 부여하였고, 누가 희생양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스티븐의 가족은 처절한 생존욕에 기반한 투쟁을 시작한다. 인간은 욕망하는 동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통해, 인류는 문명을 이룩하였지만, 동시에 욕망으로 인해 인류가 파멸의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그 인간의 끝없는 욕망, 그중에서도 제일 앞에 서는 것이 바로 생존에 대한 욕망이다. 생존욕은 가장 근본적이고 욕망이고, 그 어떤 욕망보다 우선시 되어진다. 스티븐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이다. 희생양을 정하는 순간이 닥치자 그들은 자신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을 기반으로 한 투쟁을 시작한다. 서로를 사랑하고 위해주던 가족은 더 이상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면서, 위해주는 척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된 것이다.


우선 이 모든 일의 시작이자 원인이 되는 스티븐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실수로 가족이 죽게 되는 상황에 처했지만, 자신이 대신 희생하겠다는 생각은 그에게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닌 것만 같다. 그는 마틴을 저주하고 폭력을 행사할지언정 그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자신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자만함과, 절대 자신은 죽지 않는다는 생존에 대한 욕망이 그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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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뿐만이 아니다. 마틴의 타겟이 된 나머지 가족들 역시,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한다. 스티븐의 아내인 애나는 남편의 잘못을 비난하는 동시에, 남편을 유혹하고 자신이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있음을, 즉 아이들은 대체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음을 어필한다. 킴과 밥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희생되지 않을 것이라며 서로에게 희생을 떠밀고 선택권을 가진 스티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완벽한 가족,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두려움 앞에서 그들은 모두 단 하나의 욕망만을 피력한다. 생존에 대한 욕망,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절실한 욕망을. 그리고 각자의 생존에 대한 투쟁 끝은 결국 다시 '공평성'을 주지한 랜덤 게임이다. 애초에 명백하게 공평함을 추구하던 신의 의지를 반영하듯, 그들은 끝에 누가 죽을지 모르는 러시안룰렛 게임을 시작한다. 신의 분노, 이어지는 저주, 그리고 저주를 피하기 위한 인간끼리의 투쟁, 그 끝에 하나의 생명이 운명을 다하면서, 한 생명의 죽음으로 시작된 이 영화는 끝은 맺는다.




흡입력이 뛰어나지만 보는 내내 내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잘 만든 영화지만 동시에 복잡한 영화이다. 신화에 기반을 두고, 현대적으로 신화를 해석하여 감독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감독의 시선에 그려진 현대의 신화는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자비 없는 신의 저주와 욕망에 의거한 끝없는 인간의 투쟁이 이 영화의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드 엔딩을 통해 이 영화는 현실감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현실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찝찝하고 복잡한 일 투성이니까. 담고 있는 내용이 난해하지만, 그럼에도 흡입력을 잃지 않는 연출이 괜찮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대단한 영화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영화가 좋다! 하면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나의 별점 : 4.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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