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라는 환상에 우리는 무엇을 감춰두었던가
'플로리다'를 떠올려 보면 미국 남부의 따뜻한 도시라는 것, 오렌지와 디즈니월드 같은 따뜻하면서도 환상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쨍한 햇살과 그 안에서 여유를 부리며 삶을 즐기는 사람들. 이것이 그동안의 '플로리다'라는 공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었다면, '플로리다 프로젝트', 이 영화는 그런 이미지 안에 숨겨진 '진짜' 플로리다를 보여준다. 꾸며지고, 환상으로 포장된 이상적인 이미지가 아닌, 진짜 플로리다의 모습을. 그중에서도 특히나 환상의 이상향의 이면에 가려져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환상과 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대해
영화의 제목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사실 60년대에 플로리다에 디즈니월드를 만들겠다는 디즈니의 계획을 의미했었다. 플로리다, 그중에서도 올랜도 지역을 중심으로 환상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다짐의 플랜이었달까. 디즈니월드의 영향으로, 그 건너편에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매직 캐슬', '퓨처 랜드' 등과 같은 '디즈니스러움'을 표방한 모텔들이 많아졌다. 아마 디즈니월드에 더불어 이익을 보고자 하는 움직임이었겠지.
보라색, 하늘색, 핑크색 등 알록달록한 파스텔 톤으로 꾸며진 이 모텔들의 실상은, 홈리스(homeless)들이 장기 거주를 하고 있는 3류 모텔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디즈니의 환상을 만든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더 이상 환상의 세상을 그리지 않는다. 그저 플로리다의 모텔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설명할 뿐이다. 제목인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이러한 양면성은 이 영화를 지배하는 가장 큰 요소이다. 디즈니의 환상을 쫓아 만들어졌고, 알록달록하고 몽환적이지만, 사실 마냥 예쁘지만은 않은. 디즈니라는 거대한 환상에 가려져, 누구도 보려 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다.
이 영화의 메인 배경인 '매직 캐슬'도 이러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이름부터 어마어마한다. 뭐랄까, 디즈니의 마법을 마구마구 보여줄 것 같은 이름이랄까. 하지만 현실은 3류 모텔이다. 디즈니월드의 일부로 착각하고 온 신혼부부가 화낼 만큼이나 말이다. 이 모텔에 머무는 사람들 역시, 디즈니월드의 환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주 단위로 내야 하는 모텔비에 허덕이는, 디즈니월드를 꿈꿀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엄마 헬리(브리아 비나이트)도 이러한 사람들 중 하나이다. 플로리다의 이상적인 공간에서 놀고, 먹고, 여유를 즐기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공간과 가장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정말 눈이 아플 만큼이나 아름다운 그 공간에서의 이상향적인 듯 아슬아슬한 그들의 삶은, 내게 아이러니로, 그러면서도 머리가 뎅 할 정도로 깊게 다가왔다. '디즈니'라는 환상의 세상에 잠식돼, 보아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잊어버린 바보가 된 것만 같았다.
'무니'가 바라보는 플로리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주로 무니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그래서 플로리다의 그 환상도, 참상도 우리는 무니의 눈을 통해 본 것만으로 이해하고, 유추하는 게 다일뿐이다. 하지만 왜 무니라는 마냥 해맑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의 입장에서 본 플로리다의 현실은 이렇게도 아프고 참담할까.
무니는 절대 플로리다에서의 아픔을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친구들과 정도가 심한 장난을 치며 놀고, 구걸을 통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툭하고 나쁜 말을 내뱉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무니의 모든 모습이야말로 나는 플로리다 사람들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니는 주변 어른들이 욕을 밥먹듯이 하기 때문에, 그 나쁜 말을 배워버렸고, 아이스크림을 제 돈 주고 사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구걸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러면서도 무니는 절대 슬퍼하거나, 창피해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무니한테는 그게 일상일 뿐이다. 주변이 그렇기 때문에, 그냥 배워버린 것뿐이다. 사실 무니는 낯선 남자가 집에 찾아온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어갈 만큼이나 순수한 아이이다. 다만 태어날 때부터 봐왔던, 그렇게 몸에 배여 버린 일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들이 어딘가 어긋난 행동이라는 것에 무딘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무니의 이런 안쓰러운 행동들이, 그러면서도 해맑고 순수한 무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우면서도 너무 서글펐다. 무니가 쓰러진 나무를 보고 " 난 이 나무가 좋아. 쓰러져서도 자라거든."이라는 말을 한다. 나는 이 나무가 무니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세상의 바람에 쓰러져 버렸지만, 그러면서도 꿋꿋이 자라는. 그래서 만약 무니가 내 옆에 있다면 "무니야 부디 이 나무처럼 쓰러져도 잘 자라주렴" 이라고 말하며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면서 토닥여주고 싶다.
'무니' 보다도 '헬리'
사실 무니만큼이나 안쓰러운 사람은 무니의 엄마인 헬리였다. 내가 느낀 헬리는 사실 무니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돼서 자라야만 했지만, 아직 채 자라지 못한. 그래서 무니만큼이나 순수하고도 해맑으면서도, 무니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에 억지로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무니를 위해 어른이 되려고 하고, 노력하지만, 세상은 헬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공간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 헬리는 파티나 클럽을 통해 이 무게로부터 해방될려고도 하고, 책임감에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헬리는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무니의 친구가 생일이었을 때, 헬리는 무니와 무니의 친구를 데리고 디즈니월드의 불꽃을 보여준다. 비록 디즈니월드 안에서가 아니라, 건너편에서 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헬리의 모습을 보면서, 헬리야말로 플로리다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함을 갖고 있고, 환상을 쫓으며 살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그래서 자꾸만 좌절하게 되고 그 끝에 결국 참담한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플로리다'의 모습을 말이다.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운 플로리다
무엇보다 이 참담한, 그러나 지극히 사실적인 현실을 한순간에 와 닿게 만드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아름다운 색감, 그리고 영상이었다. 영화가 다소 어두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색감은 정말 눈이 부시다. 총천연색과 파스텔톤. 어둡거나 우울한 색은 하나도 없다. 쨍한 햇살과 더 쨍한 색깔들만이 이 영화를 도배하고 있다.
이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색들은 현실을 더 비극으로 만든다. 영화의 색은 감각적이면서도 따뜻하고 환상적이어서, 우울하고 무채색투성이일 때보다 이 슬픈 현실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마치 실제 디즈니 알록달록함에 꽁꽁 숨겨져 버린 현실처럼 말이다. 이 아름다움 속에 우리는 너무 많은 아픔을 숨겨버렸고, 그 아픔은 알록달록한 색깔 속에서, 유난히 어두워서 눈에 띄어버렸다. 그래서 더 내 마음에 꼭 박혀버렸나 보다.
색감이 미친 듯이 예쁘다. 영화의 영상만 보자면 누가 뭐래도 아름답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에 숨겨진 이야기는 그렇게 아름답지가 않다. 디즈니라는 환상 속에 우리가 무엇을 놓쳐버렸는지 보여준다. 아이의 시각에서 본 플로리다는 마냥 환상만이 가득 찬 공간은 아니다. 모든 실제가 그렇듯 말이다. 또 이 영상의 아름다움은 이 이야기를 더 아프게 만들어버린다. 갭이 너무 심해서 더 절절하게 느끼게 한달까. 이 환상과 현실의 갭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무니와 헬리들에게 위로를 던져주고 싶은 영화였다
나의 별점 : 4.0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