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레이디 버드(2018)

특별하지 않았기에 더 특별했던, 보통의 어린 날

by 예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10대 시절은 어떻게 기억될까. 누군가에게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 또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흑역사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내 10대 시절을 묻는다면, 글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까마득하게 멀어져 버린 듯 한. 어렸고, 그만큼이나 어리숙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중심이 마냥 나 인 것만 같았던. 그래서 많은 실수도 했지만 그 실수마저 좋은 기억으로 남은, 그런 시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이 나이 때의 우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누구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특별하지 않았던. 그래서 더 특별해져 버린 지극히 평범한 어린 시절의 시간들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movie_images.jpg


다 자란 척, 채 자라지 못했던


10대 후반, 거기다 곧 대학 입학을 앞둔 나이가 되면 괜스레 다 자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른을 한발 앞두고 있기에 그런 걸까. 괜히 그 한 발작을 때지 못해 안달 나서 한번, 두 번 몰래 금을 넘으려고 아등바등하게 되고, 난 다 컸다는 그 우쭐함에 부모님의 말도 마냥 잔소리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레이디 버드-크리스틴(시얼샤 로넌)'도 똑같다. 성인이 코앞인 그 시점에서, 그녀는 부모님이 지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부모님의 말을 다 잔소리로 흘려듣기도 하며, 가끔은 집안 사정을 창피해하면서 거짓말도 하는 아주 보통의 10대 소녀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모님이 지어주신 '크리스틴'이라는 평범한 이름 대신, '레이디 버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스스로에게 지어주고, 누구나 상상하는 이상적인 로맨스를 꿈꾼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끔찍이 싫어하며, 학교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기도 한다.


ee.jpg


그렇게 마침내 '레이디 버드'는 학교를, 고향을, 그리고 부모님 품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다. 하지만 갓 어미새의 품을 벗어난 새끼 새가 위태롭듯, 그녀도 아슬아슬하다. 그녀가 그렇게나 되고 싶었던 어른의 현실은 생각만큼 달콤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플 때 옆을 지켜줄 사람 하나 없는 타지 생활에 마냥 서럽기만 했을 수도 있다. 가진 것이 없어지고 난 후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그녀는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녀는 특별했던 '레이디 버드'가 아닌 보통의 '크리스틴'이 된다. 이것은 어쩌면 그녀가 이상 속 특별함을 포기하는 과정, 아니면 그 '특별함'에 취해 버려두었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녀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겠지.


movie_imageEQA4NVU9.jpg


사실 우리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레이디 버드'처럼 자기 자신의 이름을 새로 지어서 선포하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상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인 것만 같고,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의 실망감에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18,19이라는 나이는 가장 다이나믹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중심이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이고, 내가 꿈꾸던 이상과 현실 속에서 타협해야만 하는 나이이다.


아마 우리도 '레이디 버드'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방향에 반항하기도 하고, 짜증도 내고, 눈물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의 많은 기대감을 내려놓고, 어른들의 보호막에서 벗어나야 하며, 이상과는 먼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세워야 하는. 이렇게 많은 시련과 타협 끝에 특별했던 소년, 소녀는 보통의 어른이 되어간다.



gdg.jpg
엄마와 딸, 그 미묘함


이 영화는 크게 두 개의 공간에서 그려지는데, 하나는 '학교'고 다른 하나는 '집'이다. 사실 이 두 공간은 누가 뭐래도 학창 시절의 가장 큰 지분을 자랑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레이디 버드'에게 학교가 자신이 꿈꾸는 특별함을 표출하고 실현시키는 공간이었다면, 집은 그 '특별함'을 사수하기 위해 투쟁하는 공간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엄마'와의 투쟁이 펼쳐지는 공간이었다.


모든 딸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미 현실을 살고 있는 엄마와 이상을 꿈꾸는 딸의 투쟁은 국경도, 시대도 따지지 않을 테니까. '레이디 버드' 역시 그런 보통의 딸이다. 자신의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는 어떻게 보면 구시대적인 사람이고 현실에 안주해 자신의 특별함을 알아봐 주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불만을 마구마구 표출한다. '레이디 버드'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모른 채 이상을 꿈꾸는 딸이 답답하기도, 철없어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은 계속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운다. 마치 태초에서부터 그래 온 것만 같다.


eee.jpg


나도 지극히 평범한 딸이기 때문에, '레이디 버드'와 비슷한 이유로 엄마와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곤 했다. 사실 엄마와 딸은 가장 친한 동시에 가장 많이 싸우는 관계다. 어쩌면 가장 친하다는 이유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이해해줄 거라는 근자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곤 이해해주지 않을 때 상대를 향해 마구 날을 세워 상처를 준다. 그렇게 서로를 상처 입히고, 후회하며, 상처가 없던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따금 그 상처는 쌓이고 싸여 터지기도 한다. 마치 '레이디 버드'의 엄마가 '레이디 버드'에게 크게 실망해 그녀와 말도 섞지 않은 그 장면처럼.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그만큼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멀리 떨어져 살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가 '엄마'이기 때문에 다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엄마도 내가 '딸'이기 때문에 엄마를 온전히 이해해줬으면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멀리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 모녀에게는 서로와의 사이가 그런 것이었고, 어쩌면 '레이디 버드' 모녀에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레이디 버드'가 대학 진학을 위해 떠날 때가 돼서야 비로소 서로를 이해했으니 말이다.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면서 약간은 달라졌겠지만, 큰 변화는 없을 듯하다. 아마 우리는 또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화해하며 이 미묘한 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모녀가 그렇듯 말이다. 다만 조금은 서로를 덜 아프게 하며 싸우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을 뿐이다. 상처주기엔 나는 엄마를,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하니까. 아마 '레이디 버드' 모녀도 서로를 덜 할퀴며 싸우는 법을 배워나가는 중이리라.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특별하지 않았던. 그래서 더 특별해진 그 시절을 그리고 있다. '레이디 버드'의 모습 속에서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다. 패기 넘치던 10대가 어떻게 평범한 어른이 되어가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딸'과 '엄마'의 그 미묘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담담하게 그려내는 일상 이야기라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더 공감하면서 볼 수 있었다. 나의 10대를 그립게 만들어준, 그래서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어준, 평범해서 특별했던 영화였다.


나의 별점 : 4.0 / 5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