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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예원 Oct 19. 2023

'땅 사기'에서 '땅 사기(詐欺)'로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만나는 詐欺

 독일의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두 형제는 독일의 옛이야기를 모아 '아이들과 가정의 동화'를 펴냈다. 그 그림형제의 동화 중에서 "함께 사는 고양이와 생쥐"라는 이야기가 있다. 제목부터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아닌가? 고양이와 생쥐가 어떻게 함께 산단 말인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예상대로 고양이와 생쥐는 마지막까지 평화롭게 함께 살지는 못했다. 고양이의 입에 발린 말에 생쥐가 함께 사는 것을 허락했지만, 고양이는 생쥐를 속이고 기만하고 마지막에는 잡아먹기까지 했다. 교활한 고양이에게 생쥐가 온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를 당한 것이다.

 나도 살면서 여러 번의 사기를 당했다. 사기를 치려는 사람 앞에서 제 아무리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속수무책일 때가 더러 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건 첫째 아이의 성장앨범 사기이다. 주변에 성장앨범 사기를 당했다는 소식은 결혼 전에도 많이 들어와서 알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거지? 때로 사기당하는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 한심한 인간이 내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으니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지만 생각조차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성장앨범은 사기당하기가 딱 좋다. 아기가 돌잔치하는 시간까지 대장정의 시간이다. 아니, 만삭사진부터 시작하면 보통 만삭사진은 임신 7개월쯤에 찍어야 예쁘대서 임신 7개월부터 아이가 태어나면 신생아 사진, 그다음은 태어난 지 50일 사진, 100일 사진, 200일 사진, 돌 사진 촬영까지 쭉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사기당하지 않으려고 무척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을 찾았다. 강남에서 무려 같은 자리에서 15년을 했다는 스튜디오였다. 사장님의 인상도 좋고, 서비스도 너무 좋았고, 게다가 가격은 너무 착했다. 만삭사진을 마치고 계약서를 내밀었다. 나와 남편은 만삭사진만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만삭사진 서비스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가격이 저렴한데 아기가 네 돌이 될 때까지 크리스마스에 무료 촬영도 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현금 일시불로 하면 더 저렴하게 해 준다고 했다. 그것이 함정이었다는 것은 그때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담실장님께 물었다. 

"어떻게 믿어요? 돌까지, 그것도 네 돌까지요."

"어머, 저희 스튜디오는 이곳에서 15년째 해왔고요, 우리 사장님은 요 앞 성당에서 15년 동안 봉사하시면서 이 동네 자율방범대 봉사도 하세요."

이 말에 속았다. 그리고 일시불을 계좌이체로 보냈다. 만삭사진과 50일 사진까지 좋았다. 100일 사진까지도 찍었다. 그런데 200일 사진을 앞두고 사달이 난 것이다. 사장님이 자금 압박으로 잠적하시고 스튜디오는 다른 업체로 넘어가고 내 손에는 앨범하나 액자하나 남지 않고 모두 사라졌다. 피해자들이 단톡방을 열었다. 무려 300명이 성장앨범 사기 피해자 모임 카톡방에 들어왔다. 다들 아기 키우느라 바쁜 와중에 강남경찰서와 변호사들을 만나느라 바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피해에 비하면 약소해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지만, 금전적인 피해보다 사기를 당했다는 자체가 조금씩 후회와 자괴감을 들게 했다. 

"함께 사는 고양이와 생쥐" 이야기 속의 순진한 생쥐처럼 믿었던 내가 바보구나. 법은 우리를 디테일하게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는 사기를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살면서 어찌 그리 경계태세만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는 것이니 잠시잠깐 반성을 하고 일상은 다시 나답게 맘 편히 지내고 있었다.


 땅 사기로 결심하고 땅을 사기당하지는 않으리는 마음가짐으로 사전 조사를 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선택한 곳, 경기도의 끝자락, 집에서 1시간 거리라는 우리의 마지노선. 그곳은 바로 경기도 여주였다. 내 고향 강원도가 코 앞인 여주의 가니 모든 것이 좋았다.

 집에서의 거리도, 산과 물도, 풍경도, 바람도, 나무도, 공기까지 모두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땅값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모든 것이 우리의 마지노선이었다. 

가격도 착하고, 위치도 좋고, 평수도 생각보다 넓은 땅이 하나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가로채 갈까 봐 남편과 함께 아이를 태우고 여주 북내면으로 떠났다. 매물을 올려놓은 부동산에 연락하니, 먼저 땅을 보고 마음에 들면 전화하라고 했다. 시골 땅들은 이동 동선이 멀어서 부동산 중개업자가 하나씩 다 보여주지 못한다. 도시의 아파트나 일반 주택과는 다르다. 땅을 사려는 매수자가 직접 가서 보고 마음에 들면 계약하자고 중개업자 사무실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 

 당시 우리 통장에 여기저기 끌어 모으니 6천만 원 정도가 있었다. 근데, 생산관리지역의 논이 200평과 구거가 합해서 약 300평 정도의 땅이 6천만 원에 나온 것이다. 직접 가 보니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전화해서 당장 계약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친구 아버지 소유의 땅이라 가능하다고 했다. 아들과 나는 그 땅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을 향하는 1년 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고, 만물이 푸르르고 벼는 무르익고, 낙엽도 지지 않은 너무나도 예쁜 시절이었다. 근데, 그게 바로 함정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땅은 땅 모양이 가지 예쁘지 않은 겨울에 보러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다. 녹음이 우거지고, 땅이 가장 기름지고 예쁜 여름과 가을에 보러 다니면 예쁘지 않은 땅이 없다는 것이다. 아,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 뭐 이리 많다니?

 우리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 땅 가까이에 있는 삼겹살 전문점에 들어갔다. 손님이 많은 시간인지 삼겹살은 안나오고 어린 남매는 배고프다고 울고 불고 하는 와중에 전화 한 통이 왔다. 부동산 중개업자다.

"사모님, 그 땅 주인이 땅을 안 팔겠다네요. 아, 죄송합니다. 다른 땅을 보여드릴게요."

"네? 왜요? 이유가 뭐예요? 우리가 바로 산다고 해서 그런 거예요?"

"그건 아니고요, 그 옆에 있는 땅이랑 같이 파실 거래요."

"그 옆에 있는 땅은 얼만데요?"

"자, 보자. 그 땅은 1억 9천이니, 두 땅을 합하면 2억 5천이 되겠네요."

"네? 저흰 못 사요. 6천만 원 이상의 땅은 안 보고 있어요."

"그럼, 제가 문자로 땅 몇 개 보내드릴 테니 둘러보시고 다시 전화 주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밥맛이 딱 떨어졌다. 거의 한 달 동안 땅을 보러 다니면서 두 번째로 마음에 들었던 땅인데, 첫 번째로 마음에 들었던 땅도 이런 이유로 매입하지 못했는데 또 같은 이유로 땅 주인이 매물을 거두어들였단다. 남편은 우리가 허위매물에 속았다고 했다. 돈만 안 줬지 사기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속은 거라고 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문자로 3개의 땅 주소를 알려 주었다. 랜디아이로 검색해 보니 맹지였다. 더 화가 났다. 어디까지 사람을 속일 것인가. 우리는 삼겹살집에서 삼겹살을 먹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신나게 남의 땅에서 좋다고 찍은 사진들을 차 안에서 보고 있자니 속이 쓰렸다. 땅이 없는 설움인가? 완전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이 허탈함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은 무얼까? 우리는 땅을 살 수 있을까? 이대로 그만두어야 하나? 두 아이가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어린애 둘을 데리고 주말마다 이게 무슨 고생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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