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끝에 해냄.
<구복여행>이라는 책이 있다.
서천서역에 가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애기를 듣고서 복을 찾아 무작정 서쪽으로 떠난 총각에 관한 이야기다. 이 총각은 행동파 중에 행동파다. 그는 생각보다 행동이 더 빠르다. 이리저리 생각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고 보는 쪽이다. 전형적이 민담형 인간이다. 종국에는 총각은 필연적으로 복을 얻을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저 사람, 복을 찾을 때까지 계속 움직일 것이므로, 그런 그를 어찌 복이 끝가지 피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렇다.
나는 이리저리 생각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고 보는 쪽이다. 전형적인 민담형 인간이다. (어려서는 이런 나를 탓했다. 소설형 인간이 부러웠다. 나이들수록 그냥 나대로 나답게 살기로 했다.)
땅을 보러 다니다가 포기할 때, 절망의 끝에서 땅을 결국엔 샀다.
돌이켜 보면, 절망 끝에 결국 땅을 샀다기 보다 땅을 살 때까지 땅을 보러 다녔을 것 같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집념의 여인이었다.
그런데, 혼자라면 끝없이 집요한 근성을 발휘하겠지만, 당시로서는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편과 다섯살 먹은 아들과 세 살배기 딸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워킹맘이고 우리는 맞벌이 부부다. 또 주변에 아이를 단 1분이라도 맡길만한 사람이 없었던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알아? 난 민담형 인간이다. 조금 엉뚱한 오뚜기다.
코로나펜데믹이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남편은 갈 곳없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캠핑을 다니자고 했다. 난 둘째 임신 6개월에 첫째를 데리고 집근처 광교 캠핑장에서 두 번 캠핑한 적이 있다. 그것도 한 여름에. 정말이지 무슨 재미로 캠핑하는 지 의문이 들었다. 남편의 '캠핑하러 다니자'라는 말을 들으니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캠핑은 무슨. 캠핑장도 요즘 싸지도 않고 캠핑장비도 비싼데 그냥 땅 사서 농막이나 짓고 매주 거기에 가는 게 낫지. 캠핑장에 내는 돈은 없어지지만, 땅은 없어지지 않잖아. 게다가 물가가 오르면 땅값은 오르기 마련이니 그냥 시골에 작은 땅 하나 사서 거기서 캠핑해."
그 즈음, 나는 육아에 지쳐서 오롯이 혼자만 머물 수 있는 세 평짜리 컨테이너 박스를 하나 사서 그 속에 들어 가고 싶다는 로망을 가졌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처럼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나 혼자 들어가서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남편한데 넌지시 말했더니 남편은 그러자 했다.
그 길로 주중에는 네이버 부동산에 있는 매물을 찾아 보고, '땅야'와 '랜디아이'라는 앱을 이용해서 땅의 용도와 가격에 대해 연구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아이들을 차에 태워 땅 투어를 나갔다.
당시 집은 광교신도시였다. 가장 가까운 시골인 용인 처인구부터 알아보았다. 마침 그때 대기업에서 처인구에 반도체회사가 최대규모의 클러스터를 짓는다는 소문이 돌아 처인구의 땅이 몇배가 올랐다. 도저히 우리가 살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 다음으로 광주시 곤지암 근처의 땅을 알아보았다. 그 곳도 전철이 뚫린 이후로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렇다면 조금 더 가보자. 이천을 알아 보았다. 직접 땅을 보러 갔고, 가격도 저렴한 곳을 찾았다. 거리도 처음에는 집에서 30분 이내의 땅을 알아보려 했던 것이었는데 점점 멀어지다가 이천은 40분이라서 그 정도는 딱 좋다고 했다.
이천 부발읍의 땅을 가 보니, 우리가 원하던 자연을 즐기며 캠핑을 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도시도, 시골도 아닌 어중간 느낌이었고, 땅의 크기도 백 평이 되지 않아서 고민끝에 선택하지 않았다.
지도 보기로 땅을 볼 때, 우리가 살 수 있는 땅은 점점 멀어졌다. 그러다 경기도 안성과 여주를 후보지에 올렸다. 안성땅도 당시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르기 시작했다. 내 고향 강원도와 가까운 여주로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경기도의 끝자락에 있는 여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