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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 Dec 22. 2018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

Feat. 통통한 새우살


 스물 두살이 되던 해 2월,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번 돈을 탈탈 털어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마 꽃보다 할배 대만편이 막 유행하던 쯤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대만을 가겠다는 결심은 그보다 더 이전이였다. 대만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나와 친했던 교수님이 노후는 꼭 대만에서 보낼 것이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셔서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하고 궁금한 마음이 들었기도 하고,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에서 여자주인공 임의신의 대만 말투가 너무 귀엽고 신기해서 꼭 실제로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내겐 대만이 중요했다기보다는, 혼자서 낯선 곳을 여행해보고 싶다는 기대가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이국 땅에 홀로 떨어져야 한다면 말도 통하고, 치안도 좋은 곳이 합리적이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대만을 선택했다.


 내 생애 가장 계획 없이 보냈던 2주였다. 남들은 무슨 대만을 2박3일도 아니고 2주를 가냐고 했지만, 난 타이베이를 찍고 타이중, 타이난, 타이동, 녹도(+이후에 추가된)까지 돌고 올 생각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기간을 길게 잡았다. 또 나는 쫓기듯이 여행하는 걸 싫어한다. 마음 가는대로, 발 닿는 대로 다니다 보면 머물고 싶은 곳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매일 아침 느즈막히 눈을 뜨고 나갈 채비를 하면서 오늘은 무얼 할까 생각했다. 어느 때는 지하철 역에 도착할 때까지도 어디 갈지 정하지를 못해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창밖의 풍경이 특별히 아름다워 보이는 곳에서 내려서 정처없이 걷기도 했다. 그러다가 만난 강아지랑 인사도 하고, 꽃이 만개한 공원에서 과자도 까먹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가진동 포스터 옆에서 브이 하고 사진도 찍고... 특별히 하는 것이 없어도 2월의 따뜻한 겨울 햇살과 버블티 한 잔으로도 나는 금방 또 행복해지곤 했다.



 그 날은 이상하게 산에 오르고 싶었다. 대만의 오를만한 산을 검색해봤지만 이미 저녁이 다 되어가던 시간이여서 마땅한 등산로를 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산 중턱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가서 야경을 보기로 했다. 혼자서 택시를 타고 한 20분쯤 갔을까, 정말로 산 중턱에 레스토랑이 있었다. 


"몇 분이세요?"

"한 명이요."


이런 패.밀.리.레.스.토.랑에 혼자서 오는 닝겐은 당신이 처음이야! 라는 눈빛으로 잠시 놀라더니 우리가 지금 남은 좌석이 이것 뿐이여서 그런데... 여기도 괜찮겠니 하면서 약 20명 정도가 앉는 거의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크기의 테이블을 보여주었다. 


"아..하하.. 좀 더 기다릴게요"

(지금 생각하면 후회된다! 그냥 20인테이블에서 맘껏 즐길껄!!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있겠나?)


그렇게 한 눈에 그림같이 황홀한 풍경이 보이는 야외 커.플.석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테이블도 하트모양이었다). 돈이 없는 배낭여행자였던 나는 최소 주문금액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도록 칵테일 새우와 밀크티를 시켰다. 그것은 크림새우파인애플이라 읽고, 鳳梨蝦球라 쓰며, my favorite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새우살이 어찌나 통통한지 아껴서 녹여 먹었다. (너무 빨리 먹으면 눈치 보일 것 같았기 때문에 일부러 느리게 먹은 것도 있다)



오롯이 1시간 넘게 나와 내 눈앞에 보이는 풍경만이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새우살은 플러스고 왁자지껄한 대만식 말소리들은 내가 <장난스런 키스> 드라마 안에 들어온 것처럼 낯설고 설렜다.  그 곳에서는 모든 것이 빛났다. 평화롭게 어우러져 그림을 완성하는 자동차와 건물 불빛들 그리고 가로등까지... 문득 저 아래에서 너무나 치열하게 살았던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고민하면서, 치열하게, 때로는 행복하지 않게, 괴로워하면서 살았던 날들이. 나를 힘들게만 한다고 느껴졌던 그 현실이 여기 이 곳에선 이렇게나 아름답게 보이다니.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을까?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다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겠지. 하지만 이 우주에서는 모든 것이 티끌만큼도 못 한 하찮은 고민인걸.


밤이 되고 날씨가 쌀쌀해져 담요를 달라고 부탁했다. 즐비한 커플들 사이에 나만 혼자인 것도 잊은 채 초코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시니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 날 밤 야경 앞에서 내게 말했다.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야경의 일부분이야. 지금처럼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거야!

누군가 내게 가장 행복했던 적이 언제냐고 물으면 난 주저않고 그 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사소한 경험이지만 내게는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그 때의 느낌은 4년이 흐른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아름다움 속에 살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는 나는 훨씬 강해졌다. 그리고 감사하게 되었다. 그 날 후로 마음이 약해질 때면 항상 그 날의 야경을 떠올린다.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아름답게 빛난다.

그 야경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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