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사랑이 내게 남긴 것들
그 여름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마침내 절정에 다다르자, 아이들은 귀가 따갑도록 소리를 질러대며 발을 동동 구른다. 옆 반 수업에 피해가 갈까 싶어 아이들에게 싹싹 빌다시피 하며 조용히 하라고 손짓 발짓을 다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첫사랑 이야기에 과하게 흥분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들의 감정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듯하여 안심이 된다.
오랜만에 보는 생기 넘치는 얼굴로 한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분이 지금 남편분이에요?”
나도 저 나이에는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고 생각했을까. 웃는 얼굴로 슬며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네? 아니에요? 그분이 고백을 안 받아줬어요?”
다들 눈이 동그래져서는 내 대답을 기다린다.
“고백을 받아주셨지. 그리고 우린 연인이 됐어.”
또다시 비명이다. 얘들아, 제발...
‘연인’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요동치는 이 나이는 순수한 감정들이 차고 넘치는 얼마나 아름다운 때인가.
“근데 왜 그분과 결혼 안 했어요?”
“그런 운명과는 결혼해야 되는 거 아녜요?”
수업 시간에는 늘 조용하던 몇몇 아이들이 질문을 서로 하느라 바쁘다.
“음... 그 이유는 여러분이 성인이 되고 나서 찾아오면 맥주 한잔 하면서 들려줄게요. 덧붙이자면 선생님은 그 첫사랑보다 더 운명적인 사랑을 한 사람과 결혼을 했어요. 자, 2부를 기대해 보며 다음 단원을 만나러 가 볼까요?”
“대박, 이 얘기보다 더한 얘기가 있어요? 선생님 삶은 진짜 영화 같아요.”
학습지를 나눠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사람들 개개인의 삶은 때로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고 아름답죠.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일에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때론 사소한 일상에서 여러분이 만들어나갈 영화 같은 장면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멈추지 말고 힘닿는 데까지 부지런히 앞을 향해 걸어 나가 봐야겠죠?”
몇몇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펜을 쥐었다. 식곤증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눈꺼풀은 이제 제법 가볍게 움직였다. 계속 이야기를 조르지 않고 순순히 수업받을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 대견스러워 나는 또 웃음이 나온다.
나는 유독 잘 웃는 선생님이다.
내가 웃을 때면 언제나 그가 함께 웃고 있다.
눈가에 잔주름이 좀 생기는 것이 대수겠는가. 아이들이 내 웃음에 전염되어 같이 웃고, 잠시라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만 있다면.
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쓰고, 한마디의 안부라도 묻고 지나가는 선생님이 되었다. 그분이 그랬던 것처럼….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 그가 내 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종종 곁을 맴돈다. 내 기억이 모두 지워지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오롯이 감정에 충실했던 순수한 내 첫사랑이니까. 어두웠던 사춘기 시절을 눈부시도록 빛나게 해 준 사람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내가, 나는 그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오랜 시간 서로 지켜본 사이니까.
선생님의 편지를 아직 모두 가지고 있다. 연례행사처럼 간혹 편지를 뒤적거리다 손에 잡히는 낡은 봉투 속에서 조심스럽게 편지를 꺼내 읽는다. 그러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문득문득 내 얼굴에는 미소가 어린다.
한 문장에서 시선이 멈춘다.
‘사는 동안 행복과 불행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그 속에서 너는 답을 찾게 될 거다.’
먼지 앉은 봉투를 손끝으로 쓸어보며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나는 당신의 말을 믿고 불행에 무릎 꿇지 않았어요. 그리고 여전히 답을 찾아 나가고 있어요. 나를 거쳐 가는 아이들 또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길에 잘 들어설 수 있도록 안내할게요. 그런 선생님이 되기 위해 더욱 애써 볼게요. 고마워요.’
그 여름날 베란다, 나는 아직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