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선생님이 아니라고 말했다
존 레넌의 <imagine>은 주변 소음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들렸다. 전화를 끊지 못하고 듣고만 있는데, 곡이 끝나자 전화도 함께 끊겨 버렸다. 정말 그분이었을까?
얼굴에 열이 오르는 듯해 베란다로 나갔다. 주변 동네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인공 빛이 밤의 대기를 꽉 채우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의 그 밤들처럼 하늘이 새까맣지 않았다. 인공위성인 듯 유난히 선명하게 반짝이는 빛이 몇 개 보일 뿐 별도 엉성했다. 그렇지만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던 그 노래를 듣던 그날 밤처럼 내 가슴은 벅차오르고 있었다.
다음번 만남에서 나는 그 전화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분이 전화한 것이 아니라면?
집으로 가기 위해 주차장에서 차를 빼며 그분이 슬쩍 나를 곁눈질하는 것이 느껴졌다.
“며칠 전에 내 전화 못 받았어?”
“네? 무슨…?”
‘서, 설마?’
“요새 그 곡 좋아한다며?”
“아…, 선생님이셨어요?”
“어. 친구들하고 카페에 갔는데 그 곡이 나오길래 네가 들으면 좋겠다 싶어서.”
우린 앞만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차 안에 꽉 찬 침묵을 깨고 그가 말했다.
“그 카페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학 동창들인데, 모두 선생들이야. 한 녀석이 그러더라. 자기가 좋다면서 매달리는 사회생활을 하는 제자가 있는데, 아무리 해도 제자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잠시 말을 쉬던 그가 앞만 보며 다시 입을 뗐다.
“나는 그렇지 않던데.”
문득 핸들을 잡은 손등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늘 나를 보며 밝게 웃던 얼굴에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해야 할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쳐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간의 정적을 깨고, 그는 최근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색한 공기는 서서히 물러나고 다시 서로를 보고 웃었다.
낮부터 잔뜩 흐리더니 밤이 되자 제법 무게감 있는 빗방울이 세차게 쏟아졌다. 긴 가뭄 끝에 찾아온 반가운 폭우는 풍경을 빼곡히 채우며 시원하게 쏟아져 내렸다.
베란다까지 튀어 들어오는 빗방울을 얼굴로 느끼며 창가에 기대앉았다. 오늘 만난 그가 그리웠다. 나에게 베란다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비에 취해 문자를 보냈다.
‘비가 시원하게 내려요. 참 아름답네요.’
손을 뻗어 손바닥에 빗물을 담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아가야, 나와라. 비 맞으러 가자.”
아가…. 심박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볼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찬 손을 갖다 대야만 했다. 얼굴이 붉어진 채 옷을 입으며 실없이 웃는 나를 언니가 빤히 쳐다봤다.
“너 내가 딱 보니까, 남자 생겼구나?”
“어? 아니! 아니야. 남자는 무슨.”
정색을 하고 가방을 메는데 계속 마음이 간질거렸다. 왠지 그 밤이 우리 관계를 바꿔놓을 것만 같았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멈출 생각은 없었다.